음… 여기 보이시죠? 아들이네요.
딸의 입꼬리가 내려간다. 분위기상 차마 울지는 못할 것 같고, 그렇다고 아직 감정을 숨기기에는 우리 딸은 고작 6살.
아이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에겐 똘망똘망 너무 예쁜 딸이 있었다. 아침에 단정하게 유치원 원복을 입고, 알록달록 머리를 묶고, 마지막으로 예쁜 꽃구두를 신으면 준비완료다. 그러면 나에게 환하게 인사하며 유치원 버스를 타고 떠난다. 돌아온 후에는 친구들과 있었던 얘기도 조잘조잘 잘해준다. 가끔은 카페에 가서 커피와 딸기 아이스크림을 주문하고는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곤 했다. 처음부터 쉬운 육아는 아니었지만 이만하면 애 키울만하다.
그럼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또 있으면 어떨까? 아이랑 둘이 노는 것보다 셋이 놀면 더 재밌지 않을까? 회사에서 늦는 남편을 떼놓고 아이와 셋이 놀 궁리를 했다. 그렇게 둘째가 갖고 싶어졌다. 그것이 자만이고 착각이었지.
그렇게 그 해 겨울을 코앞에 두고 둘째가 태어났다. 너무 못생겼다. 이래도 되나… 차마 남이면 대놓고 못생겼다고 못할 것 같은데 어미라서 대놓고 할 수 있다. 찌그러진 찐빵 같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앞으로 얘 어떡하나.. 걱정도 되고… 다행인 건 우리 둘째는 커가면서 차츰 잘생겨졌다. (잘생겼다는 게 아니라 나아지고 있었다. ㅋㅋ)
좀 더디긴 했지만 온 집을 기어 다니고, 걸어 다녔다. 아… 이제 어린이집에 보내야지. 그러던 찰나 전무후무할 코로나 시대가 터졌다. 어쩔 수 없이 우리 가족은 또 붙어있었다. 가족은 함께 할수록 정이 든다는 것은 거짓말!
아이들은 커가고,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 목소리도 커져갔다. 다행히 어린이집에 등원할 수 있게 되어 만세를 부르려는 찰나… 사고가 터졌다. 가족들이 잠시 한 눈을 판 사이 가구에 손이 끼어 뼈가 부러졌던 것. 그렇게 깁스를 하고 한 달을 집에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서 50일이 갓 넘었을 때 요로감염으로 입원을 한 이후 두 번째 대학병원행이다. 태아보험 들기를 잘했지. 보험금을 받게 되다니… 아이가 다치고 받은 돈이라니.
병 주고, 약 주고
아니
병 주고, 돈 주고
한 달 후 등원이 시작되자, 아이는 떼를 쓴다. 두 번째 육아임에도 처음과 다름없다. 어린이집에 가는 게 세상 좋았던 첫째와 달리 둘째는 코앞 어린이집 등원이 한세월이다. 가끔은 어린이집 앞 벤치에 앉아 정확하지도 않은 발음으로
‘어마, 안자따 가자…쉬어따 가자.’
기다림에는 끝이 있어 다행인가. 유치원도 1년을 울면서 등원한 아이는 드디어 6살이 되면서 웃으면서 등원하기 시작했다. 등원전쟁이 끝이다. 눈물이 날 지경이다.
하지만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게 되는 법. 등원전쟁이 끝나자 아이의 발에는 바퀴가 달리기 시작했다. 왜 하나같이 남아들은 걷지를 못하는 것일까. 늦게 걷기 시작해서 걱정했는데 걱정을 하자마자 뛴다. 이리 뛰고 저리 뛴다. 초원의 망아지도 이렇게 뛰어다닐까 싶다. 망아지가 뛰어다닐 저 들판엔 자동차는 없지 않은가… 또 다른 걱정 시작이다.
옆에 차가 오는 게 안 보이나? 고개를 조금 돌리면 되는데.
”나는 몰랐지이!!!“
적반하장이다. 몰랐으면 된 건가?
걸어 다녀도 문제. 주위를 안 본다. 엄마와 하나로 같이 쓰고 걷던 우산을 굳이 자기가 들겠다며 이리 휙.. 저리 휙.. 하더니 넘어졌다. 이제는 좀 컸다고 울지는 않는다. 부끄럽기는 한가 보네, 아빠와 누나에게 비밀이란다.
등원길에 여자아이들은 반짝거리는 공주 구두를 신고 엄마손을 꼭 잡고 다정하게 이야기하며 등원한다. 내가 예전에 큰 아이와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남아 엄마들의 복장은 다르다. 킥보드를 타고 씽씽 달리는 녀석을 잡으러 갈 수도, 앞 뒤 안 보고 냅다 전력질주 하는 아이를 저지시켜야 할 수도 있으니. 운동복이 딱이다. 아들 엄마에게 꾸미기는 사치다. 지금 내가 그러는 것처럼.
곧 있으면 12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다. 동시에 이제 둘째의 입학 준비를 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지 유치원에서 내주는 과제도 꽤 된다. 뭐 어렵지는 않다. 동화책 읽고 좋아하는 장면을 그리거나, 단어를 골라 끝말잇기를 하거나…10분, 아니 5분이면 끝날 것 같다. 하지만 7세 남아가 연필을 잡고 글씨를 쓰는 게 이렇게나 어려운 일인지 이제야 알았다. 아이의 글씨는 자유분방하게 사방으로 흩어지고 내 인내심도 영혼과 함께 사방으로 흩어진다. 난 지우개를 들고 대기한다. 흩어진 글씨와 내 정신은 다시 모아야지. 지우고, 또 지운다.
그러다 다시 엄마가 지웠다며 운다… 늘 레퍼토리는
“엄마 때문이야!”
그러다 울음이 그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나를 향해 배시시 웃어버린다.
하.. 이 녀석.. 어쩌란 것이냐.
덕분에 식도염을 얻었다. 병원에서는 스트레스 때문이라는데 내 생각에 유력한 범인은 바로 요 녀석이다. 식도염만 얻었을까? 편의점에 가도 1+1이고, 시장에 가도 덤을 주는 민족 아닌가. 식도염에 더불어 이석증이 추가다. 이런 건 덤으로 안 줘도 된단 말이에요!
예전에 아들을 키운 선배맘이 본인은 아이를 키우다 대상포진을 얻었다고 했다. 그때는 애 하나 키우는데 얼마나 힘들다고 대상포진까지 얻을 일인가.. 싶었는데 역시 경험자의 말은 함부로 흘려들을게 아니다.
초코파이를 하나 먹어도 온 집을 휘잡아 놓고 먹는 녀석. 물 한 모금 마셔도 컵 엎어뜨리기 일쑤. 샤워시간은 물놀이인 이 녀석. 키우는데 뭐 하나 쉬운 게 없다.
눈물과 한숨과 웃음을 한꺼번에 주는 이 녀석을 앞으로 어떻게 키워야 할까. 육아의 최종 목적지는 독립이라던데 어서 커서 독립하는 그날을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