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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나 Dec 12. 2024

시터를 구합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이들을 보내고 한숨 돌리고 전쟁통 같은 집 꼴을 외면한 채 믹스커피를 한잔 마신다. 아.. 이게 힐링이지.. 뭐 별거냐.


믹스커피는 다른 분위기 좋은, 인스타그램에서 핫 한 카페에서 마시는 게 아니다. 배경은 맘카페일뿐. 재미있는 소식이 없나 훑어본다. 그런데 어랏. 댓글이 몇 백 개가 달린 글이 있다. 이런 건 그냥 넘어갈 수 없지. 클릭해 본다.


당근마켓에 올라온 이모님을 구하는 글. 아기 엄마가 시터를 구하나 보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핫하지.


뭐 하나하나 읽어보면 화가 날 만하다. 시도 때도 없이 자다 깨다 울다 하는 갓난아기를 돌보기만 해도 힘들 텐데, 아이의 주변 정리도 해야 하고, 같이 지내고 있는 어른들의 식사도 챙겨야 하며 집안 청소도 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아이를 수유를 하고 씻기다 밤이 되면 아이와 함께 잠들어야 한다. 그리고 월급은 한 달에 300만 원 남짓. 그리고 하나 더 추가하자면 밤에 아기와 자고 있을 때 아기의 부모가 궁금하면 언제든지 확인할 수 있다는 것.

맘카페와 뉴스를 떠들썩하게 했던 구인글 by NAVER


몇 백개의 댓글은 다들 분노하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단일의 민족이라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것일까. 반론하는 자 하나 없었다. 댓글을 달지는 않았지만 나 역시 분노하고 있었다. 이렇게 소소하게 일을 시켜놓고 월급은 달랑 300만 원? 대략 시급으로 따져보니 6250원 정도다. 법적으로 정해진 시급이 9800원이 넘는데 아기 보는, 아니 아기도 보고, 살림도 하고, 어른들도 챙겨야 한다. 내용만 보고 열이 받았는데 시급으로 수치화시키고 보니 더 화가 났다. 아기 엄마가 나한테 그렇게 일하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말이지.


음… 화가 나고 있는 도중 눈에 띄는 댓글이 하나 보인다. 여기 나와 있는 대부분 아기 엄마들이 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하나 훑어보니 어랏. 그렇다. 지금은 아이들이 커서 기억에 흐릿해져 버렸던 나의 과거들이 생각났다.


해가 뜨면 아이가 일어난다. 아니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난다. 기저귀를 확인하고 수유를 하고, 아기를 다시 재운다. 아기가 하나라면 나도 그대로 다시 취침. 아기가 일어날 때까지 잠시 휴식이다. 하지만 아이가 또 있다면 말이 달라지지. 큰 아이의 등원, 혹은 등교 준비를 위해 일어나야 한다. 그나마 아이만 챙기면 다행. 남편까지 아침에 챙겨줘야 한다면 거기에 일은 곱절로, 아니 곱곱절로 늘어난다. 가족들이 각자의 일터로, 배움터로 떠나고 나면 집에 남은 아기 엄마는 아기를 또 먹이고 씻기고, 이제는 놀아준다. 아차… 싱크대에 그릇은 가득, 큰 아이가 남기고 간 옷 가지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옷들이 벌떡 일어나 빨래 바구니로 걸어 들어가는 상상을 해본다. 아니 이왕 움직일 거면 ‘주인님, 저 잠시 세탁기 좀 다녀오겠습니다.’ 라며 성큼성큼 들어갔으면 좋겠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힘든 노동 끝에 신데렐라에게는 요정님이 호박마차와 마부를 보내주고, 남은 집안일도 싹 해 주었는데 왜 그런 요정은 없는 것일까. 어릴 때 만화에서 손톱을 깎고 대충 버려서 그 집에 있던 쥐가 손톱을 먹고 그 집 아들로 변신한다는 만화를 본 적이 있다. 당시에는 그게 너무 무서워서 손톱을 깎을 때면 휴지에 꼭꼭 싸서 버리곤 했다. 지금도 뭐 막 여기저기 버리는 건 아니지만, 생각은 좀 달라졌다. 이제는 그 쥐가 그걸 먹고 나로 변해도 괜찮을 것 같다. 한 세명쯤 생기면 한 명은 집안일을 하고 한 명은 아이를 보고 나머지 한 명은 쉰다. 너무 몰아서 하면 각기 다른 ‘나‘ 사이에서 분쟁이 생길 수도 있으니 돌아가면서 해야지. 나 1, 나 2, 나 3, 이 세 명이서 스케줄을 짜서 돌아가면서 하면 좀 나아질까.

말 못 하는 아기와 종일 있어서 그럴까, 잠이 부족해서 그런가 이제는 혼자 엉뚱한 상상까지 해본다. 옛날과는 달리 육아 참여도가 높은 요즘 아빠라는 말이 생겨 날 정도라는데 우리 집은 예외였다. 회사와의 거리가 있어, 업무가 많아 해가 뜨기 전 출근하고, 해가 지고 나서 한참 후가 되어야 퇴근하는 남편을 둔 덕에 육아는 대부분 나의 몫이었다. 그나마 주말에 가족들과 함께 나서는 외출은 고행이었지만 그나마 나의 숨구멍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월급은… 최저 시급보다 못하다는 300만 원은커녕, 제대로 씻지 못한 부스스한 몰골과 목 늘어난 티셔츠, 쭈글쭈글해진 뱃살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나를 보고 한번 웃어주는 것, 투박한 말투로 ‘고생이 많다.‘ 라며 던진 한마디면 그간의 고생이 날아가 버린다. 물론 ‘뭐든지 질러!’ 하며 카드까지 같이 던졌으면 더 좋았겠지만.


몇백 개의 댓글이 달렸던 그 글은 그 카페 외에도 여러 곳의 카페에 올려져서 몇천 개의 댓글을 받다가 사그라들었다. 글을 올렸던 아기엄마는 본인의 그 글이 이렇게 넷 상에서 핫해진 걸 알고 있을까. 그리고 댓글들을 봤다면 급여를 올리고 조건을 조정했을까. 아니면 세상 하나뿐인 내 아기를 위해서 이 정도도 못하는 사람은 들일 수 없다며 분개했을까? 아직 아기를 온전히 아기를 키워보지 않고 여기저기 온라인에서 수집한, 그리고 주변인들에게 들은 정보들로 시터 구인 글을 올렸을 것이다. 적절하지 못하다고 여겨지는 급여는 아직 육아를 제대로 겪어보지 못해서 그렇다고 이해하고 싶다. 만약 일주일이라도 제대로 아기를 키워봤다면 나의 아기를 사랑으로 돌봐준다는 자체가 얼마나 힘들고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알게 될 테니 말이다.


그 이후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기에 어떻게 됐는지, 시터는 구했는지 알 수 없지만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금은 온 마을이 모일 수 없으니 온 마음이라도 모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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