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선배의 기괴한 침묵
두 번의 이직을 경험한 이후에도, 나는 여전히 '사람' 때문에 고뇌한다. 이번 이야기는 악인전 시리즈의 외전 격으로, 직장 생활 중 마주친 상식 밖의 한 선배에 대한 기록이다.
지방공기업에서는 일정 근무기간을 채울 때마다 정기적으로 부서를 옮기는 제도가 시행 중이다. 그 선배와는 이 전보 제도로 인해 이전 부서에서 1년간 같은 부서에서 근무했다.
1년 동안 표면적으로 드러난 마찰은 없었지만, 난 그 선배를 인간적으로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부서생활을 오래 한 나보다 오래 한 만큼 부서의 업무특성과 업무에 능숙했다.
새로운 부서 업무에 적응하는 시기에 모르는 것이 있어 그 선배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질문을 하면 "이것도 몰라?"라는 식의 눈빛과 함께 날카롭고 까칠한 태도로 대답을 해주었고, 나는 자연스럽게 그 선배보다 친절하게 대해주는 다른 부서 동료들과 더 가까이 지냈다.
내가 그와 가깝게 지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 역시 나를 좋게 보진 않았을 것이다.
그가 다른 부서로 떠난 뒤에도 질긴 인연은 이어졌고 사건은 3년이란 시간이 흐른 뒤에 일어났다.
우리 회사에서는 경조사가 있으면 게시판에 공지를 하고, 조사의 경우는 모바일로 알림 문자를 발송하고 있다. 평소 알림 문자를 챙겨보면서 알고 지내는 직장동료들의 조사는 직접 조문을 가거나 조의금을 보내는 식으로 챙겼는데, 그 선배의 부친상 소식을 놓쳐버렸다.
주변에서 누군가가 이야기해 주었다면 좋았으련만, 다른 부서로 떠나가기 하면서 그 선배와 친하게 지내는 동료도 주변에 많지 않아 소식을 접하지 못한 것이다.
부친상으로부터 3주 정도 지난 시점에 오랜만에 만난 직장동료들과의 술자리에서 그 소식을 알게 되었고,
고민 끝에 늦게라도 조의를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술자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장문의 메시지와 함께 조의금을 보냈다.
뒤늦게 조의금을 전달한다는 이유로 죄송한 마음에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 작성한 장문의 메시지였다.
문제는 그 이후에 발생했다. 다음 날 오전 카톡에서 '1'이 없어졌지만, 답장이 없었고 조의금도 받아가지 않았다.
'내가 이 사람에게 무언가 잘못한 게 있었나?'
'조의를 표하는 사람에게 침묵하는 게 말이 되나?'
그렇게 이틀이 흘렀다. 시간이 흐르면서 오만가지 생각을 했다.
'대체 무슨 생각인 걸까?'
'내가 그렇게 큰 잘못을 저질렀던가?'
'아니, 아무리 잘못한 게 있더라도, 심지어 원수일지언정 조의를 표하는데 답장조차 안 하는 게 사람이 할 짓인가?'
이틀 뒤 카카오톡 자동 환불 예정 메시지가 떴을 때, 나는 오히려 안도했다.
'정말 경황이 없어서 확인을 못 한 거라면, 차라리 환불되는 편이 낫겠다.'
그러면 적어도 그 선배가 경우 없이 무례한 사람은 아니게 되니까. 그 정도로 나쁜 사람이 아니길 바랐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틀렸다.
내가 보낸 조의금이 환불되기 전인 오후 3시 1분, 그는 내 조의금만 '쏙' 받았다.
그 이후에도 여전히 아무런 답장도 없었다.
살면서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내 진심이 모욕당하던 그 이틀의 시간, 그리고 자동환불을 앞두고 돈만 챙긴 치밀함.
이 사람이 날 싫어한다고 밖에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왜? 나랑 싸운 적도 없지 않나?
의심이 가는 것은 내가 그 새끼와 친한 차장과 반목했다는 사실 정도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경우가 아니지 않나?
같은 부서에 있는 그 새끼와 동기인 선배가 지나가며 하는 얘기를 들었다.
'OOO형 아까 연락했는데 요새 ~하고 있다더라.'
동기랑 한담할 시간은 있는 새끼가 나의 진정성 담긴 조의에는 답장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사람을 손절하게 되는 계기는 여러 가지가 있다.
나는 이런 인간은 선배는커녕 사람 새끼로도 보지 않는다.
깐족대기를 즐겨하며 까칠한 성격 탓에 좋아하는 후배들이 없는 것으로 아는데, 그 새끼는 이번 일을 계기로 나 역시 등 돌리게 만들었다.
조의금은 숫자 이전에 마음입니다. 그 마음을 짓밟고 챙긴 몇만 원으로 당신의 살림살이는 좀 나아졌을지 모르겠네요. 직장이라는 이름의 울타리 안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며 살고 있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