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역사 탐방기 (1편)
사극 드라마에서 '의자'를 찾아보자.
초가집에 사는 평민, 주막의 주모와 손님은 마당 위 평상이나 방바닥 또는 자리를 깐 땅바닥에 앉아있다. 양반의 기와집에도 딱히 의자라고 부를 만한 가구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렇듯 쉽게 찾아지지 않는 의자는 궁궐이나 관청 내부가 비치면 그제야 모습을 나타낸다. 왕이 정무를 보는 편전과 행정관료들이 논의를 하는 회의실, 사또가 일하는 관아에서 의자는 조용히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의자가 궁궐이나 관청에 있는 이유는 그것이 앉기 위한 수단이기 이전에 '권위'를 보여주는 상징물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의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태생부터 '권위'를 상징하기 위해 탄생한 가구였다. 그러기에 이 위에는 아무나 착석할 수 없었다.
의자는 그 자체로 '고귀한 존재'를 의미했다.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의자는 위 사진 속 이집트의 왕비 헤테페레스1세의 의자이다. 이집트 기자 피라미드에 있는 그녀의 무덤에서 발굴된 이 의자는 기원전 2600년 정도의 것으로 추정되니 의자의 나이가 대략 4,000살 정도다.(이집트 박물관에 전시된 현 모습은 복원의 손길을 거친 것이리라 짐작한다.)
이 의자가 왕비의 무덤에서 발견된 것은 의자가 그 아득한 옛날부터 권위의 상징이었고 상층 계급에게만 허락된 것이었음을 드러낸다. 상상하건대 임금이 어좌에 앉고 신하들은 서있거나 엎드려있던 조선시대의 편전의 풍경은 그보다 몇 천 년 앞선 기원전 이집트의 궁궐 내에서도 동일하게 펼쳐졌을 것이다.
의자의 상징적 의미는 그림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피라미드 내부의 그림이나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을 보면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은 신이나 왕이다. 특히 그리스 로마 신화를 표현한 그림을 보면 신들의 왕인 제우스 혹은 주피터라 불리는 신이 의자에 앉아있는 그림을 자주 볼 수 있다. 또한 고대 그리스의 화병에 그려진 그림만 봐도 귀족은 의자에 앉아있고 주변에 하인이나 하녀들이 서있다. 우리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음에도 직감적으로 의자를 통해 누가 더 윗 계급의 사람인지를 식별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의자가 보편적으로 사용되기 전 서양의 평민들은 어디에 앉아 생활했던 것일까? 동양은 좌식문화였다고 하지만 서양은 입식문화였는데 말이다.
그들은 궤(뚜껑이 달린 상자), 벤치, 스툴에 착석했다. 이것들은 상징적 의미를 덧입지 않은 순수한 착석 용도의 가구였다.
그렇다면 의자가 어떤 이유로 궤, 벤치, 스툴을 제치고 '고귀한 자리'라는 명예를 차지했을까?
건축학을 전공한 의자 디자이너 찰스 임스(Charles Eams)는 'The chair design was simply architecture at the human scale.(의자 디자인은 인간의 사이즈의 건축과 같다)'라는 이야기를 자주 하곤 했다.
의자(chair)는 그 형태와 균형에 있어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야만 사람의 몸을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지탱할 수 있는 고난도의 제작품이기에 의자를 건축에 비유한 그의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과거 오로지 손으로만 제품을 만들었던 시기에 의자를 만든다는 것은 그 어떤 가구의 제작 공정보다도 어려웠을 것이 분명하며, 수많은 실패를 거쳐 하나의 완성품을 겨우 만들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다음 편에는 현대에 이르러 어떻게 '고귀한 자리'였던 의자를 모두들 하나씩 가질 수 있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참고: 위키피디아, 수전 프라인켈 <플라스틱 사회>
p.s.
의자는 소가구이지만 좋은 디자인과 좋은 품질을 갖출 경우 일반인들의 상상 이상으로 가격이 비싸다. 그래서 나는 때로 특정 의자의 소유 여부가 자본주의 계급의 차별성을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스티브 잡스를 보면 그는 검은색 셔츠와 청바지, 운동화라는 수수한 차림으로 프레젠테이션을 했지만, 그가 무대에서 앉던 검은색 가죽 의자는 세계적인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르 꼬르뷔지에(Le Corbusier)가 디자인한 LC3였다. 이 의자의 가격은 유럽 현지 구입가 기준으로 약 700만 원이다.
스티브 잡스는 프레젠테이션 도중 나름 그만의 왕좌- 아무나 앉을 수 없는 그곳-에 앉아있었던 것은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