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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 Here Live Here Mar 21. 2016

의자의 보편적 사용을 가능하게 한 야누스의 등장

의자 역사 탐방기(2편)

어떤 일이 발생했다. 그리고 그 일과 연관된 두 사람이 있다.


두 사람 모두 같은 일을 마주했지만, A라는 사람은 그 상황에서 최고의 것을 이끌어내었고, B라는 사람은 최악의 것을 이끌어내었다. 이러한 차이는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 스스로를 바라보는 관점,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배려와 관용 의식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최고의 것을 이끌어낸 A는 당장은 힘겹더라도 결과적으로 본인 자신에게도 좋은 에너지를 가져다주게 된다. 반면 최악의 것을 이끌어낸 B는 당장은 본인이 원하는대로 되는 듯 보여 좋지만 결과적으로는 본인 자신에게도 좋지 않은 에너지를 주게 된다.

  



'플라스틱(Plastic)' 소재는 위의 A와 B처럼 최선의 결과물을 뽑아낼 수도 있고, 최악의 결과물을 뽑아낼 수도 있는 소재다. 그리고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냈느냐에 따라 그 창조자에게 끼치는 영향 또한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다.


과학 저널리스트 수전 프라인켈은 자신의 저서 <플라스틱 사회>에서 플라스틱의 이러한 특성을 아래와 같이 표현한다.


"나는..... 루이고스트와 백개먼을 자세히 살펴봤다. 하나는 눈부신 가능성의 세계를, 다른 하나를 싼 효용성의 영역을 떠올려 주었다. 


루이고스트와 백개먼을 나란히 놓고 보니, 플라스틱이라는 애인을 묘사하는 공정한 표현이 떠올랐다. 우리의 가장 깊은 찬탄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우리의 가장 강한 혐오를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야누스적 인물."

Kartell사의 루이고스트 의자 (image by Kartell)



Home Depot사의 백개먼 의자(image by homedepot)





아무나 앉을 수 없던 그곳, '의자'- 의자 역사 탐방기 (1편)에서  설명했듯 의자는 그 태생부터 '권위'를 상징하기 위해 탄생한 가구였다. 그러기에 인류 역사의 대부분 기간 동안 의자 위에는 아무나 앉을 수 없었다.


의자에 누구나 앉을 수 있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불과 약 100여 년 전의 일이다. 그리고 이 역사의 서막을 가능하게 한 주인공은 바로 찬탄과 혐오를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소재 '플라스틱(plastic)'이었다. 플라스틱은 나무, 금속, 돌과 같은 자연소재에 비해 재료비(=생산비가) 저렴했고 무게가 가벼웠으며 가소성(plasticity)이 뛰어나 제조가 용이했다.  


*가소성: 고체가 외부에서 탄성 한계 이상의 힘을 받아 형태가 바뀐 뒤 그 힘이 없어져도 본래의 모양으로 돌아가지 않는 성질 (네이버 사전)



Vitra사의 베르너 판톤 체어 (Image via Pinterest)

플라스틱의 가소성은 무한대의 가능성을 열었으며 책 <플라스틱 사회>에 말하듯 '유일한 제약이라면 디자이너의 상상력뿐'이었다.


마침 덴마크의 젊은 디자이너 베르너 판톤이 제조사를 찾기 위한 각고의 노력 끝에 가소성이 가진 능력이 무엇인지를 보여줄, 놀라운 상상력을 발휘한 작품을 1960년대에 세상에 내놓았다. 나무와 돌이라는 재료에 인간의 손길을 거쳐 만들어지는 의자가 아니라 공장에서 일체의 형태로 뽑아져 나오는 의자, 위 사진 속의 '베르너 판톤 체어'가 그것이다.


베르너 판톤을 포함한 수많은 디자이너들이 플라스틱 소재의 저렴한 가격과 가소성에 흥미를 느껴 여러 의자들을 제작해 세상에 내놓았다. 그러나 이러한 의미 있는 시도와는 반대로 어떤 형태로든 만들어질 수 있는 가소성과 저렴한 가격은 플라스틱을 그 가치가 떨어지도록 하는 방향으 향하도록 만들기도 했다.


나무, 금속, 돌과 달리 소재 특유의 까다로움이나 고유한 가치를 드러낼 무언가가 없었고 어떤 형태로든 손쉽게 만들어낼 수 있었기에 플라스틱은 '모방하는 소재'라는 인식이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저렴한 가격에 대한 호소로 치열한 가격 경쟁까지 벌어지면서 오늘날 우리의 머릿속에는 '플라스틱= 싸구려 소재'로 자리 잡게 되었다. (포탈 검색창에 '플라스틱 의자'라고 치면 10,000원대의 의자들이 수두룩하게 뜬다.)

 



그러나 사실 플라스틱은 그 자체로는 최고도 최악의 것도 아니다. 다만 서로 다른 선택을 한 A와 B 중 누구를 만났느냐에 따라 그 운명이 갈릴뿐이다.


Kartell사는 최고의 선택을 한 A라는 인물에 해당한다.


이 회사의 창업자는 처음부터 플라스틱을 플라스틱으로만 바라보았다. 플라스틱으로 다른 소재를 흉내 내는 것을  않았고, 플라스틱의 특성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발현하는 것을 지향했다. 그 인공적인 맛과 냄새를 그대로 소비자에게 전달하기를 선택한 것이다.





Kartell사의 제품- 데스크 램프, 의자, 오픈책장 (images via pinterest)



이러한 관점을 반영한 Kartell사의 제품들, 획기적이고 아름다운 디자인과 더불어 비싼 가격에 판매되는 플라스틱 가구와 램프들은 '플라스틱= 싸구려'라는 일반인들의 굳어버린 인식과 플라스틱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을 무장해제시켜 버린다. 고급스럽고 아름다워 소유하고 싶은 욕구가 저절로 드는 플라스틱 제품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플라스틱에 대한 편견을 떨쳐버릴 수 있다는 점에서 Kartell사에게 감사한 일이다.




이 글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바는 인류 역사의 대부분 기간 동안 상층 계급만 앉을 수 있던 의자가 플라스틱 소재의 발명으로 모든 이가 평등하게 앉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 그리고 플라스틱의 사용이 보편화되는 과정에서 플라스틱 제품이 수명이 짧고 품질이 떨어지는 싸구려 제품이라는 인식이 펴져버렸는데 이것은 오해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플라스틱을 활용해 싸구려 품질에 금방 버리는 제품을 만들 것이냐, 아니면 고급스럽고 튼튼한 품질에 오랜 기간 쓸 제품을 만들 것이냐(혹은 구매를 할 것이냐)- 야누스의 어느 쪽 얼굴을 볼 것인지는 전적으로 우리의 선택이다.


플라스틱 의자의 역사를 비롯하여 플라스틱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이 글을 쓰며 참고한 책 수전 프라인켈 <플라스틱 사회>를 읽어보기 바란다.


p.s. 사실 플라스틱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 있어서 우리는 그 일의 가능성에서 최고를 끌어낼지 최악을 끌어낼지 매 순간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그래, B(Birth)와 D(Death) 사이에 끊임없는 C(Choice)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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