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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 Here Live Here Mar 28. 2016

마음의 병 치유를 위한 공간 디자인

정신병원의 이상적인 인테리어 디자인 그리고 미니멀리즘의 연관성 고찰

요즘 틈틈이 읽고 있는 <서울건축만담>.


두 명의 건축가 차현호와 최준석이 서울에서 살펴볼 수 있는 옛 건축물과 현대 건축물에 대해 자신의 마음속 이야기를 편하게 내어놓고 들려주는 책이다. 책을 읽던 중 차현호 건축가가 겪은 에피소드를 보고 웃음이 터졌다.


그의 계획안에 대해 문화재 사전 협의회 자문위원들이 던진 수많은 언어적 구타에 대한 에피소드였는데, 이 중 하나인 "편집증 있느냐(정신병자가 디자인한 것 같다)"는 피드백을 보고 웃음이 터졌다. 흰색을 주색으로 사용하고 장식을 최소화한 디자인은 어디 가나 이런 이야기를 듣나 보다는 생각에 남일 같지 않은 묘한 동질감이 느껴져 코믹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내가 (지금까지 기준) 가장 선호하는 디자인은 '흰색을 주색으로 사용하고 장식을 최소화한 디자인'이다.


일전에 나의 인테리어 디자인이 매거진에 실리고 이것이 다시 포탈 라이프 섹션 메인 화면에 실렸을 때 '정신병자가 만든 집'과 같은 악의성이 있는 댓글들이 두어 개 달렸었다. 나는 어떠한 정신 상태를 가진 사람들이 달았을지 모를 그러한 댓글에 신경 쓰지 않는 편으로, 다만 궁금증을 자극한 것은 사람들이 정신병원의 인테리어 디자인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알고 이런 말들을 하는 것일까 하는 것이었다.


나 역시 정신병원의 인테리어를 직접 본 적이 없다. 내가 본 유일한 정신병원은 감명 깊게 본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 1975)> 속의 정신병원이다. 영화 세트장의 디자인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 구글에서 스틸컷을 찾아보니 영화 속 병원의 주색이 흰색(아이보리)이다.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한 장면 (image by ildisoccupatoillustre)




나는 정신병원의 디자인, 좀 더 정확하게는 정신병원의 이상적인 디자인이 궁금해졌다. 그 디자인의 모티브에 대해서는 더 궁금해졌고. 그래서 관련 자료들을 찾아 읽어보았고, 나의 궁금증에 대한 답을 가장 정리를 잘 해놓은 자료 <Future Direction in Design for Mental Health Facilities(정신병원의 디자인 방향)>을 찾아내었다.


이 연구자료는 "Design can make a difference(디자인이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하며 정신병원의 디자인이 환자들 뿐만 아니라 스태프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친다고 말한다. 또한 육체적인 병과 달리 심각한 정신병은 대부분의 우리가 직접 경험하지 못했기에 디자인 계획이 병의 회복이나 완화에 미치는 영향을 (경험이 아닌) 의학 증거에 기초해 만들어진다고 설명한다.


이 연구자료가 말하는 정신병원의 핵심 디자인 고려 사항은 다음과 같다.



1. 빛


밝은 빛은 우울, 불안, 계절성 정서장애, 치매를 완화시키고 수면과 체내시계의 리듬 조절을 돕는다. 자연빛이든 인공빛이든 효과는 동일하다. 그리고 아침 시간의 빛을 받는 것이 저녁 시간의 빛을 받는 것보다 우울증 완화에 효과적이다. 침실에 동쪽 창이 있어 아침햇살을 받는 우울증 환자는 주목할만한 회복력을 보였다.


(*참고: 인공빛은 적절한 조색과 조도로 설계되어야 하며, 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이전 글 <The Right Lighting:: 사람의 심리를 좌우하는 조명 - 그 올바른 선택에 대한 조언>에서 확인할 수 있다.)



2. 환경적 스트레스 요인의 제거


연구에 따르면 마음의 병을 가진 사람들이 잠을 못 이루는 가장 큰 원인은 소음이다. 소음은 스트레스를 증가시키고 혈압과 심장박동수를 늘린다.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병실일 경우 소음이 커지므로 소음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디자인해야 한다.   


한편 방 안에 빛이 넘칠 정도로 가득해 지나치게 환한 것은 사람의 마음을 조급하게 만든다. 이 역시 스트레스 요인이 된다.


또한 실내공기의 질도 중요하다. 좋은 공기는 천식, 호흡기 알레르기, 우울증을 줄여준다.



3. 안전&보안


환자들이 이동의 자유를 누리되 환자 자신과 다른 환자들, 스태프들, 방문객들에게 육체적으로 해를 끼치지 않는 디자인 설계를 해야 한다.


무언가를 결박할 수 없는 디자인, 미끄러지지 않는 디자인, 누구나 공간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보편적 디자인, 인체공학적 디자인을 고려해야 한다.



4. 관찰


수동적 감시 개념로서의 관찰은 안전, 보안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건물로 감싸인 안뜰, 중간중간 모일 수 있는 장소들을 갖추고 있는 넓은 폭의 복도는 스태프들의 환자에 대한 관찰을 극대화할 수 있는 디자인 설계다.

   


5. 시각적 방해물 제거


컬러, 빛, 가구, 예술품 - 이 모든 것들의 조화를 통해 구현된 넓어 보이는 공간과 최소한의 잡동사니로 이루어진 조용한 환경을 설계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환자들을 기계 사용으로부터 떨어뜨려 놓으면 환자들이 시간과 공간을 인식하는 여유를 가지게 된다.


한편 자연의 모습을 담은 그림은 환자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준 반면, 혼돈스러운 느낌을 가진 추상화는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6. 컬러


사람을 가장 차분하게 만드는 컬러는 '블루'다.


연구에 따르면 화이트, 라이트 그레이와 같은 밝은 컬러들은 그레이, 블랙과 같은 어두운 컬러에 비해 덜 자극적이며 사람을 덜 압도한다고 한다.



7. 환자들 간의 상호 작용


두 명 이상의 환자가 침실을 공유할 경우 상호 지지를 해주는 긍정적인 면도 있으나 스트레스가 더 크게 작용한다. 개인 침실을 갖는 것이 오히려 환자들 간의 상호 작용을 활발하게 하며 스트레스 지수를 낮춘다.


상호작용은 침실이 아닌, 소규모 그룹으로 모일 수 있는 편안한 가구를 갖춘 라운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더 낫다.



8. 자연으로의 접근성


자연을 바라보거나 실제 접촉하는 것은 감정적, 생리적으로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키며 부정적인 감정을 없앤다. 이러한 변화는 혈압과 심장 활동을 통해 입증된다.


안뜰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환자의 폭력성이 감소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또한 스태프들 역시 정원이 있을 경우 스트레스가 줄고 사회적 관계를 발전시키면서 한층 개선된 결과물을 내놓는다.



 

위 자료를 읽다 보니 최근 한국에 불고 있는 버림과 비움의 미학, 미니멀리즘 열풍이 지향하는 바와 정신병원 디자인의 핵심 고려 사항이 많이 중첩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스: 버렸다, 비웠다 그리고 삶이 밝아졌다. - 홀가분한 삶 추구 '미니멀 라이프' 열풍 (2016.3.3/한국일보)


다각적으로 불안을 조성하는 현대 사회에서 누가 마음의 병으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마음의 병을 조금씩은 앓고 있을 수 있다. 우울증과 공황장애 등은 이제 낯설지 않은 이름이 되었고 나의 주변에도 알고 보니 이런 증상을 겪었거나 겪고 있는 사람들이 몇몇 있다.


개인적으로 마음의 병의 가장 큰 원인이 삶의 중심을 '자아 찾기, 스스로에게 솔직하기'가 아닌 'just to be nice to others(남들에게 괜찮아 보이기 위한 것)'에 두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복잡다단한 현대사회에서 타인의 잣대에 의해 매겨지는 '불안'과 '불행'은 지금 이 순간에도 미디어 등 여러 루트를 통해 '이 모든 것이 당신을 위한 것'이라는 달콤한 말로 사람들 안을 파고들어 오고 있다. 이것들을 모두 갖추어야만 우리가 상대적 우위를 점해 안정되고 행복해질 수 있다고 끊임없이 유혹한다.  


어쩌면 정신병원의 디자인의 핵심 고려 사항, 미니멀리즘의 핵심 철학이 지향하는 목적은 사람의 에너지를 쓸데없이 분산시키는 잡다한 요소들을 제거함으로써 내면의 자아를 찾고 스스로의 욕구와 감정에 솔직해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에 있는 것은 아닐까?!!


삶을 살아가며 정신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 삶에 부정적이고 소모적인 에너지가 끼어들어 오지 않도록. 그럼으로써 내가 원하는 본질에 집중하고 거기서 나의 소박한 행복을 찾아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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