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에 대한 고찰 없는 복제품의 양산 - 그 허상에 대한 비판
나는 누군가를 집에 초대하고, 또 누군가의 집에 초대받는 것을 즐긴다. 횟수는 많지 않을지라도 그 순간의 경험을 무척 소중하게 여긴다.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집'은 그 사람의 진짜 모습, 즉 무엇에 가치를 두고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인가를 숨김없이 드러내 보여주는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누군가의 집에 함께 있었다는 것은 서로의 내면에 다가갈 수 있는 관계의 진정한 시발점이 될 수 있다.
지인 두 사람이 나를 초대했다. 한 명은 평소 명품 옷과 가방, 구두를 입고 다니는 사람인데 막상 집에 가보니 집주인만의 특색과 온기를 느낄 수 없는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집이다. 다른 한 명은 평소 수수한 차림으로 사람으로 다니는 사람인데 초대를 받아 가보니 자신의 개성이 드러나게 꾸민 집에서 하나하나 양질의 물품을 소비하며 살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의 개성을 정확히 파악해 그것을 소중히 가꾸어나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후자의 사람에게 더 큰 호감을 갖고 교류하고 싶어진다.
인테리어가 앞으로 각광받는 분야라는 내용의 기사나 책들이 나오고 있고,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몇몇 방송사에서 인테리어를 주제로 한 프로그램들을 론칭했다.
프로그램들을 관찰해보니 인테리어 디자인의 본질을 다루기보다는 시청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당장 이슈가 되는 인물들과 스타일을 등장시키는 듯한 모습이다. 특히 '북유럽 스타일', 엄연히 말하면 진짜 북유럽 스타일과는 거리가 먼 '한국식 북유럽 스타일'을 대세라는 이유로 보여주고 저렴한 비용으로 완성한다는 것을 내세운다. 소비자가 인테리어 디자인의 본질에 대한 안목을 배울 수 있는 디자인의 가치, 정품의 가치, 자재와 마감 품질 수준 등은 논외다.
이러한 콘텐츠들은 한국의 대중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하나의 트렌드 혹은 스타일이 가진 역사와 본질, 그것이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인지, 나에게 맞는 스타일인지에 대한 고찰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곳에 등장한 대세라고 불리는 스타일을 '쉽고 빠르게 대충 그리고 저렴한 가격을 우선시'하며 복제하고 싶은 심리가 크게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이미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심리와 태도는 한국의 전반적인 인테리어 수준을 낮출 가능성이 크다. 어떤 분야가 장기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본질에 대한 고찰에서 시작된 '올바른 사고', '올바른 투자와 소비'가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이를 충족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중들은 선진국(프랑스, 이탈리아, 스웨덴, 덴마크, 네덜란드, 영국 등)의 인테리어 디자인을 동경한다. 그런데 이들이 왜 앞선 디자인을 만들어나가는 것일까에 대해서는 관심이 크게 없어 보인다. 디자인이 앞선 주요한 이유 중 하나는 이들이 서두르지 않고 '충분한 시간을 가지면서' 자신의 고유한 관점, 취향, 의견을 발견하고 이러한 본질이 디자인으로 표출되도록 전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온 덕분이다.
반면 한국의 대중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기보다는 대세와 언론(해외 인테리어 잡지는 한 권 안에서도 다채로운 스타일을 보여주는 반면 국내 잡지는 거의 일률적인 스타일을 보여준다.), 즉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복제하고 그 안에서 머문다. 그리고 대세를 따랐다는 이유로 서로의 집이 예쁘다고 칭찬해주고 그 칭찬 속에 또다시 복제가 시작된다. "그거 어디서 샀어요?"라는 질문으로.
네덜란드에서 거주하던 짧지 않은 시간에 이들의 일상을 관찰해본 결과 이들은 남과 다른 자신만의 뚜렷한 개성을 자신감 있게 추구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었다. 인테리어 디자인이든 패션이든 남과 다른 차별화된 나를 표현하기 위해 투자하고 소비한다. 나를 표현하기 위한 투자와 소비이므로 가품은 지양한다. (가품을 쓰는 순간 나도 가짜가 된다.) 평범한 중산층도 구입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기간 돈을 모아 정품을 구입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들의 소비는 스스로의 만족을 향해 있다.
한국의 대중은 정품에 대한 지식을 갖추려는 노력을 거의 하지 않는다. 과거 우리나라가 발전을 하기 전에는 물질적&심리적 여유가 없어 그랬겠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음에도 의식 수준은 성장하지 않았다. 그래서 정품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데다 더 큰 가치(디자인의 가치, 자재와 마감의 품질 수준)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당장의 저렴한 가격에 이끌려 가품을 손쉽게 소비한다. 이러한 소비의 목적 중 절반은 마치 짝퉁백처럼 남의 시선을 향해 있다.
올바른 사고와 투자&소비 습관 덕분에 선진국의 인테리어 디자인 수준은 지속적으로 발전한다. 우리 개인의 의식과 태도가 변화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는 선진국의 수준을 영원히 따라잡지 못하게 된다.
나의 관점, 취향, 의견을 파악하기 위해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 피상적인 결과만 추구하는 수준에 머물게 된다. 그럴 듯해 보였던 집의 모방, 남들이 괜찮다고 말하는 집의 모방....복제는 쉽고 빠르지만, 창의력과 안목의 성장을 가로막는다.
개인의 인테리어 수준 나아가 대한민국 전체의 인테리어 수준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소비자들이 디자인의 가치를 파악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시간과 노력을 투입해 내가 어떤 분위기에서 편안함과 활력을 느끼는지 그리고 양질의 물건을 소비하는 것이 왜 자신과 사회에 이득이 되는지를 깨달아야 한다. 작은 소품이나 가구를 고르는 데에서부터 시작하여 올바른 사고와 투자&소비가 반복되다 보면 좋은 습관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좋은 습관이 한국 인테리어 디자인의 발전에 선순환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본질에 대한 고찰에서 시작된 선순환의 예>> 시스템 키친(System Kitchen)의 탄생과 발전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주방의 디자인은 '프랑크푸르트 부엌(Die Frankfurter Kuche)'라고 불린 최초의 시스템 주방에서 시작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을 마치고 돌아온 젊은이들로 인해 심각한 주택난이 발생하자 독일 정부는 택지조성계획을 추진했고 도시계획가 에른스트 마이에게 총 설계를 맡긴다.
그는 '그까이 뭐 기존 것 따라서 대충 쉽게 저렴하게'라는 생각으로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지 않았다. 그는 주방 디자인의 본질에 대해 고찰하는 노력을 들였고, 여기에서부터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주방 디자인의 혁신이 시작되게 된다.
그는 기존 주방을 모방하는 편하고 쉬운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편리하게 생활할 수 있는 주방 디자인의 본질을 고민했고, 함께 일하던 오스트리아 최초의 여성 건축가 마가레테 쉬테 리호츠키(Magarete Schutte-Lihotzsky/1897-2000)에게 좁은 면적에서도 효과적인 동선으로 작업할 수 있는 주방의 디자인을 설계해줄 것을 요청한다. 그 결과 세계 최초의 시스템 키친이 탄생한다.
만약 총 책임자였던 그가 디자인의 본질에 대한 고찰 없이 (한국의 대중처럼) 편한 길을 선택-그때까지 존재했던 주방 디자인을 모방 -했다면, 우리는 어쩌면 지금도 아래와 같은 구식 구조의 주방에서 비효율적인 동선으로 주방일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의 고찰에서 비롯된 올바른 사고와 투자&소비는 현재 지구상 수천만의 소비자들에게 엄청난 혜택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의 의식 수준도 함께 성장시켰다. 그리고 성장한 의식 수준에 맞추어 주방 회사들은 더 높은 시각미와 편의성을 제공하기 위해 새로운 디자인을 연구한다. 이 얼마나 멋지고 감사한 선순환인가!
지금 어떤 집에서 살고 계신가요?
그리고 앞으로 어떤 집에서 살기를 꿈꾸시나요?
허상을 좇기보다는 시간과 노력을 들임으로써 자신의 진짜 내면을 담은 인테리어 디자인을 구현하기를, 그럼으로써 한국의 인테리어 디자인 발전에 기여하는 삶을 사는 것을 꿈꾸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