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그녀의 욕실 인테리어 디자인이 달라야 하는 이유
피터 잭슨 감독의 영화 <킹콩>. 원시적인 마초인 동시에 로맨티시스트인 킹콩이 지켜주는 여인으로 분했던 배우 나오미 와츠(Naomi Watts)의 순수한 모습이 뇌리에 남았던 영화다.
인테리어 매거진 <Architectural Digest> 2월호에 그녀가 등장했다. 정확히는 그녀의 집이 등장했다.
그녀, 남편인 배우 리브 슈라이버(Liev Schreiber), 두 명의 어린 아들이 거주하는 이 집의 인테리어 디자인은 과감한 컬러, 빈티지 가구, 자연 소재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1920년대에 준공한 뉴욕시 건물의 꼭대기층 두 개 호수를 10개월간의 리모델링을 거쳐 하나의 공간으로 만든 이 집의 사이즈는 4,315제곱미터(약 1,305평)에 달한다.
그녀의 집 인테리어 디자인을 찬찬히 살펴보던 중 욕실 컬러에 눈길이 머문다.
잡지에 등장한 세 개의 욕실은 공통적으로 화이트(천장과 벽)와 블랙(바닥)을 주색으로 사용했다. 또한 수전, 세면대, 거울 프레임, 욕실 카운터, 샤워부스 안 샤워의자, 라디에이터, 수건걸이를 모두 블랙으로 선택했다. 여기에 포인트 컬러로 들어간 골드가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위 욕실 사진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아~나도 이렇게 욕실을 꾸며보고 싶다'라는 욕구를 품도록 할 것이다. 특히 한국 사람들 중에는 검은색 육각형의 바닥 타일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당신의 욕실 디자인 선택이 나오미 와츠의 선택과는 달라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잠깐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조인성, 전지현이 드라마에 입고 나온 옷이 멋져 보여 입어 보고 싶은 욕구가 일어났다고 가정하자. 이럴 때 당신은 그 혹은 그녀가 입은 옷을 (사이즈 포함) 아무 필터링 없이 그대로 구매하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와 그 혹은 그녀가 '서로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바탕 위에 구매 결정을 내린다. 옷의 컬러가 내 피부톤과 맞는지, 전체적인 라인이 내 체형과 맞는지, 옷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내 분위기와 잘 맞는지, 세탁 등 관리법은 수월한지를 살펴본다. 설사 까다롭게 따지지 않는다고 해도 최소한 사이즈의 차이는 인식하고 구매를 결정한다.
그렇다면 인테리어 디자인은?
의외로 인테리어 디자인 선택 과정에서는 사진 속 집의 주인과 내가 '서로 다른 사람'이라는 인식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사진 속 인테리어 디자인이 자신의 특성이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지를 고려하기보다는 '국내외 잡지에 등장했다', '유행이다', '호텔 디자인 같은 디자인이다.'라는 이유로 특정 디자인을 자신의 집에 그대로 적용하고 싶어하는 인테리어 디자인 잠재 소비자들을 자주 본다.
세수를 하면 의식하지 않은 사이 기울어진 팔의 각도를 타고 손으로부터 흘러간 물이 팔꿈치에서 바닥으로 떨어진다. 손만 씻는다고 해도 세면대와 거울 프레임, 벽면에 물이 튄다.
세안제 성분이 섞인 물은 마르면서 불투명한 흰색의 자국을 남기는데, 이 자국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 주는 바탕색이 바로 '검은색'이다. 나오미 와츠의 욕실처럼 바닥 색을 비롯하여 세면대, 수전 등 손과 몸에 닿는 많은 부분이 검은색이라면, 하루에도 몇 번씩 욕실을 사용할 때마다 얼룩덜룩한 자국을 곳곳에 남기게 된다.
즐거운 마음으로 욕실을 매일 청소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 자국을 지워내는 일은 상당히 귀찮고 짜증 나는 일이다.
그럼 나오미 와츠는 왜 자신의 욕실에 검은색을 적용했을까? 이런 문제를 미처 알지 못해서?
아니, 그녀는 우리와는 다른 살아가는 방식(코드)을 가지고 있기에 블랙 컬러가 주를 이루는 욕실 디자인을 아주 쉽게 선택할 수 있었다.
그 코드는 바로 '청소의 아웃소싱(Outsourcing)'이다.
과연 나오미 와츠와 리브 슈라이버가 자신들의 집을 직접 청소할까? 그것도 1,300평이 넘는 집을? 분명 청소 전문가를 고용하여 이들에게 청소를 맡길 것이다(아웃소싱).
청소는 외주를 주므로 집의 일상적인 관리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그녀의 가족에게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자신이 좋아하는 컬러이거나 시각적으로 아름답기만 하면 선택한다. (이는 호텔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청소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인력이 따로 있으므로 관리하기 힘든 디자인을 집보다 쉽게 적용한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코드(살아가는 방식)는 그녀의 코드와 다르다. 대부분의 우리는 집 청소를 직접 하며, 외주를 준다고 해도 그 횟수가 매일이 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인테리어 디자인을 할 때 그럴 듯 해 보이는 것, 차별적으로 보이는 것을 지나치게 추구하지 않기를 바란다. 집은 일상을 살아가는 공간이며 누군가에 의한 관리가 끊임없이 요구되는 공간이다. 될 수 있는 대로 독특하게 꾸며 SNS로 남들에게 자랑하기 위한 대상이 아니다.
이태원 District(Prost, Glam Lounge), 이태원 B-ONE Club&Lounge, 분당 Namus, 부산 Paradise Hotel 레스토랑 등 상업 공간을 화려하고 글래머러스하게 디자인하는 것으로 유명한 김치호 디자이너의 집 인테리어 디자인은 놀랄만큼 단순하다. 그는 2015년 <Elle>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집에 산 지 벌써 10년째예요. 사는 내내 거의 그대로였고, 한쪽 벽에 페인트칠만 직접 다시 했어요. 일은 일이고 집은 사는 데라, 막 대단하게 고치고 싶지 않기도 했고요. 요즘은 온갖 게 너무 차고 넘치는 세상이라, 뭐든지 가만히 놔두는 게 더 좋아요.”
부디 잊지 말기를.
우리집에는 나오미 와츠가 아니라, 우리가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