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e Here Live Here Jan 10. 2016

위로의 공간, '나의 집'

'정신적과잉활동인'을 위한 소울 스페이스(Soul Space)

소울 푸드(Soul Food).


본래 '미국 남부 흑인들의 전통 음식'을 의미했지만, 최근에는 '먹는 이의 영혼을 감싸주는, 그 사람 자신만이 간직하고 있는 아늑한 맛'이라고 정의되기도 하는 단어다. 나는 이것을 '본인만이 평가할 수 있는 따스한 위로의 맛'이라고 간략하게 정의하고 싶다.





음식이 그러하다면 공간은 어떠할까? '소울 푸드(Soul Food)'는 익숙한데, '소울 스페이스(Soul Space)'는? 과거의 공간이든, 현재의 공간이든.... 나에게 따스한 위로를 안겨주는 공간이 존재할까?


익숙한 단어는 아니지만 분명 존재한다. 나의 경우는 현재 살고 있는 집이 나의 '소울 스페이스'다.







우리집은 '정신적과잉활동인'인 나에게 더할 나위 없는 위로를 제공하는 공간, 소울 스페이스다.


'정신적과잉활동인'이란 생각이 많고 복잡하며 오감 또한 일반인의 상상 이상으로 예민하게 발달한 사람을 말한다. 이런 종류의 사람을 프랑스의 심리학자 크리스텔 프티콜랭이 처음으로 정의했는데, 그녀의 저서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je pense trop)>에서 그 성향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이들은 일반인에 비해 생각이 뻗어나가는 방향과 속도가 지나치리만큼 발달되어 있고, 시각/촉각/촉각/후각/미각이 매우 민감해 어느 장소에서든지 이 감각들이 총체적으로 유난하리만큼 발동된다. 예를 들어 저녁 모임을 위해 들어간 식당에서 다른 사람들은 개의치 않는 정도의 수준의 것들을 이들은 식당에 흐르는 큰 음악 소리, 식당 전체의 떠들썩한 소음, 옆자리 손님들의 대화, 종업원들이 오갈 때 나는 식기 부딪히는 소리, 음식 냄새, 들어오고 나가는 손님들의 움직임, 강렬한 조명을 과도하게 지각한다. 그 결과 이들은 자신이 참석한 모임의 대화에 집중하는 것을 매우 어렵게 느끼고 이 모든 것에 금세 피곤함을 느끼게 된다.


나는 나의 이러한 성향을 부정적인 것으로 바라보지 않으며 그저 남과 다른 점이라고 생각한다. 이로 인해 좋은 점(삶을 더 풍부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존재한다는 것도 크리스텔 프티콜랭 덕분에 알게 되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나는 이런 나의 성향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바탕 위에서 내가 살 집의 인테리어 디자인을 시작하였다.


인테리어 목표는 외부에서 받은 수많은 자극들에서 벗어나 나와 내 배우자가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나의 생각의 뻗쳐나감과 오감을 자극할 수 있는 것들을 최소화하는 디자인을 해야 했다.


세부적인 디자인의 방향은 첫째, 천장/벽/바닥/수납가구 등 큰 덩어리들이 자극이 없는 색과 형태를 지니도록 했고, 전체적으로 시원한 여백의 여유를 갖추도록 했다. 둘째, 내가 가진 물건들 대부분이 시야에 노출되지 않으면서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수납 설계를 했다. 셋째, 가구의 색과 형태가 무자극이어야 했다. 넷째, 소품은  최소화했다. 다섯째, 온도, 습도, 먼지, 빛 등에 민감하므로 이에 적합한 마감재, 침구, 블라인드, 조명을 선택했다. 여섯째, 가장 힘을 주는 마감재(바닥재, 원목)는 은근하게 따스한 느낌을 줄 수 있는 것을 선택했다. 일곱 번째, 더러워지기 쉬운 부분은 청소가 쉬운 마감재를 선택했다.     


이에 맞게 구상된 디자인을 바탕으로 6년 차 33평 아파트를 좋은 인연(현재 나의 인테리어 디자인 사업 파트너)인 현장소장님과 함께 새롭게 뼈대를 만들고 마감재를 입혀갔다. '30년 이 분야에서 일하면서 가정집에 통유리 중문은 처음 해본다', '검정 계열의 바닥 타일은 잘 안 깐다'며 이 무뚝뚝한 양반이 두어 번 반대의견을 내셨지만 참고만 할 뿐 최종 판단은 내가 한다. 이 집에 살 사람은 그분이 아닌, 독특한 '정신적과잉활동인' 성향을 가진 나이므로.


 

다용도룸(서재, 손님초대 시 다이닝룸, 게스트룸) - 따뜻한 느낌을 주는 원목 테이블과 숨은 수납을 위한 평상 겸 수납장




거실 - 심플한 라인의 가구, 따뜻한 느낌의 바닥재, 먼지 걱정이 덜한 블라인드 (탁자는 의도적으로 두지 않음)




주방과 다이닝룸 - 시원한 느낌을 주는 키낮은 상부 수납장과 청소가 간편한 유리벽면 마감



중문1 - 밝고 환한 자연빛을 현관까지 닿게 하는 통유리 중문, 시원한 느낌을 위해 프레임 없이 제작





현관과 중문2 - 밝고 트인 느낌의 현관을 위해 기존 신발장의 위치를 옮기고 편의성을 위한 원목 벤치 설치




현관 그림 - 집에 들어오면서 이 추상화(원작)을 보면 기분이 깨끗해진다. 그림 오른쪽이 새롭게 자리잡은 신발장.




복도 -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복도를 만들었다. 복도를 따라 흐르는 간접조명을 제작했다.



침실 - 자극적이지 않은 인공빛 그리고 안정을 주는 컬러의 베드 프레임




욕실 1&2 - 욕실에서 청량한 기분을 느끼기를 바래 민트가 섞인 그린 컬러 적용




거주하는 사람의 고유 특성에 맞도록 디자인한 집은 진정한 위로와 재충전의 공간으로 재탄생한다. 내가 만약 순간적으로 예뻐 보인다는 이유로 또는 유행이라는 이유로 강렬한 컬러를 사용하고 많은 가구와 소품들을 늘어놓았다면 이는 내게 지나친 자극을 불러일으켜 위로와 재충전을 방해했을 것이다.  


<메종>에 실렸던 우리집이 DAUM 라이프 메인에 올라왔던 때 몇몇 댓글들이 참으로 부정적인 어조로 달려있었다. 그 중에는'온통 하얀색이니 정신병원에서 산다.'는 비아냥거림도 있었는데... 그 사람에게는 아마도 그렇게 느껴졌나 보다. (또는 자신의 삶에 불만이 있어 화풀이용 댓글을 별 생각 없이 달았는지도 모른다.)


사실 우리집에 온 사람들 대부분(가스 검침 아주머니조차도)은 우리집이 주는 느낌을 좋아한다. 물론 어떤 지인은 사무실 같은 분위기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나는 그 어떤 피드백을 들어도 개의치 않는다. 그것이 긍적적이든 부정적이든.


소울 스페이스는 남에게 보이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 아니다. 하루를 열심히 살고 귀가한 나와 내 배우자가 매일매일 평화와 위로를 얻는 공간. 소울 푸드와 마찬가지로 나 자신을 제외한 다른 누군가가 평가하는 것이 불가능한 대상이다.


소울 스페이스의 절대적인 가치.

나는 그것을 사랑한다.


 


집의 Before vs. After 비교, 각 부분 디자인의 이유에 대해 궁금하다면...

<두 개의 중문, 두 개의 Zone - 나비 날개 구조의 묘를 십분 살리다.>

<자연빛으로 환한 현관 공간 디자인-빛과 사람을 고려한 현관 공간 디자인 설계>

 

매거진의 이전글 나오미 와츠의 욕실 인테리어 디자인에 숨겨진 코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