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하는 사소하지 않지만, 사소한 부탁
사명을 바꾸기로 했다.
내 업무 메일에 마지막 문구
'끊임없이 질문한다. 쉬지않고 대답한다'
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Keep Inquiring Consulting
덕분에 공모 지원금을 받았다.
사실은 업무메일에 마지막 문구를 볼때마다
피곤함을 느끼곤했다.
그래도 경계를 넘는 노력을 해야 겠다고 생각해 지우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아무리 질문해도, 루틴이 더 좋고
시키는대로 움직이는 게 더 좋고 아니 편하고
알려주는대로 외우는게 더 편하다.
정인아 미안해... 이 사건으로 하루에 한번이상씩 불편한 사고의 시간이 찾아온다.
불편한 이유는 그 양부모가 동문이어서도, 무엇을 바꿀까 고민해서도 아니다.
내 대학시절의 순결서약식이 자꾸 떠오른다. 인간사이의 폭력성은 눈감고, 선교와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믿어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하던 우리, 그리고 교수들 그 공동체의 존재가 자꾸 떠올라서 불편하다. 총동문회 게시판은 조용하다. 아니 우리가 뭘 잘 못했냐며 개인의 문제가 아니냐고 하는 몇몇의 동문이 있다. 결국 총동문회는 언팔로우 해 버렸다. 나도 여전히 비겁한 사람이다. 책임감 없는 사람이다. 나도 자주 눈을 감아버렸다. 생각을 멈추고, 행동도 멈추어 버렸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쉽게 '우리가 바꿀께'라고 못한다. 자주 생각을 멈추어버리는 내가 부끄럽기에....
사실 2021년이 두렵다.
회사일도, 초등학교에 가는 둘째도 걱정이고
이제 사춘기에 접어들어가는 첫째도 걱정이다.
나는 한해를 무엇을 꿈꾸며 시간을 쌓아야할까
그것도 생각이 멈추어버렸다.
황현산 선생님의 사소한 부탁을 짬짬이 읽는다.
뭔가 대단한 꿈이지 않아도 사소한 생각들을 엿보다 보면 이 멈춘 생각들을 다시 움직이게 하지 않을까 싶어서...
-내가 아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라는 뜻의 '크세주'는 널리 알려진 것처럼 서양에서 에세이란 장르를 창시한 르네상스 시대의 사상가 몽테뉴의 수상록에서 가져온 말이다. 몽테뉴는 이 말을 통해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서는 항상 의심하는 상태에 남아 있어야 한다는 자신의 주장을 담았다. 오늘날의 학자들은 그 주장을 방법적 회의주의라고 부르는데, 지식을 탐구하기 위한 방법으로 모든 지식을, 특히 자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먼저 의심해본다는 뜻이다. 한 개인이 이 세상에서 일아나는 모든 일을 다 알 수도 없거니와 어떤 사안이나 현상에 대해 일정한 지식을 지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그 앎의 끝일 수 없다. 그 지식은 그의 지적 조건과 근면성과 주어진 자료에 따른 현재 상태의 지식일 뿐이니 모든 지식에 관한 담론은 그 탐구 과정의 중간보고라고 말해야 옳다. (이런... 중간보고을 앞두고 있는데....)
.......... 한 지식 체계의 변두리에서는 지식이 낡은 경험을 식민화하지만, 오히려 중심부에서는 지식이 늘 겸손한 태도로 세상을 본다. 제가 무지 앞에 서 있을 뿐만 아니라 무지에 둘러싸여 있을을 자각하는 것이 공부하는 사람의 태도다.(2017.8.25)
공부와 생각의 경계를 넘어... 회색지대의 경계인이라고 루틴에 기대어 합리화 하기보다,
조금씩 생각을 하게 되기를...
새해에 두려움을 앞에 두고
조그맣게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