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의 욕구

- 황폐화 되는 자아를 회피하고 싶을 때 일렁이는 욕구

by 라그리마스

전에는 한번도

내가 내 목소를 들어보지 못했다

내 것이 아닌 언어로 이렇게 울부짖는 목소리

세계가 잘못되었다고

밤이 먼저 왔고 그다음에는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고

새들은 날아가서 그저 죽을 뿐이라고

얼음이 변화의 의미라고

나는 한번도 아이인 적 없었다고

1980년 가을 [뉴요커]에 실린 필립러빈의 시 "전에는 한번도"


이 시가 내게 말을 걸었을 때, 나는 아직 아이나 다름없었다. 우리가 황폐해졌을 때, 가끔은 위안이 아니라 내 상태를 비추는 거울 혹은 그런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님을 일깨우는 무엇이 필요하다. 또 어떤 때는 위기를 직시하도록 돕는 프로파간다나 정치적 예술이 아니라 위기로부터 한숨돌리게 해주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 p 135 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


장성길을 걸으며 소멸의 욕구와 한참을 씨름했다. 매일밤 떠올려지는 과거의 실수의 순간앞에 단잠도 단꿈도 생각치 못할 황폐함으로 점점 장악당하고 있는 현실을 단숨에 회피할 방법은 소멸이었다. 소멸이란 죽음을 의미하는게 아니라, 현재의 존재하는 나를 없애는 것이었다. 누구의 인정도 사랑도 책임도 없이 그저 생명만 유지하고 시간만을 보내고 있는 소멸된 나.


기나긴 장성길을 걸어내고 나면, 나를 나로 존재하게 하는 모든 욕구들이 소멸될 수 있을거 같았다. 등산화에 찍혀서 계속 걸음을 괴롭히는 오른쪽 엄지발가락의 통증보다 소멸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 우월했다. 바람소리만 들리는 이 고요하고 긴 길이, 나의 소멸을 한층 수월하게 만들어줄 줄 알았다.


소멸의 프로파간다로 아무리 나를 몰아넣어도 걸어도 끝이 없는 긴 장성길 앞에서,

몰아치는 바람앞에 잠시 앉아 위기를 피하는 순간에,

엄지 발가락의 통증이 무릎으로 올라오고, 허벅지 엉덩이로 올라와 도저히 걸을 수 없다 싶을 때,

소멸의 시간차를 깨달았다.


끝났으면 좋겠다는 욕구, 바람이 안 불었으면 좋겠다는 욕구, 발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욕구가

모두 내가 원하는 순간에 달성되는 게 아니듯

그 욕구만의 시간이 걸리듯


나의 소멸의 욕구는 지금이 아닐 수 있다는 시간차

소멸이 아니라 존재가 되어보자는 욕구만이

지금 누군가의 사랑하는 사람으로 기댈 수 있는 사람으로 시간차 없이 달성될 수 있다는 사실이

굽이굽이 와호산 장성길에 비추어 졌다

장성길의 바람 냄새 시야가 나의 황폐함에 한숨을 불어넣어주었다


나의 황폐함이 더이상 진전되지 않도록

진시황때부터 벽돌을 구워 짓고, 복원하고 자랑했던

지금은 아무도 돌보지 않는 것 같은 그 장성길의 무너진 돌들이

오히려 내게 와서 숨을 불어넣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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