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작위에 의한 살인. 혹은 악의 평범성
지점장이 아침부터 굳은 얼굴로 노심초사했다. 중범죄인을 우리 항공기로 송환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 일이 잘못되면 자신은 물론 우리의 일자리까지 보장하지 못할 정도로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본국에서는 범죄인의 안전한 송환을 위해 보안 요원(여전히 구소련 국가에서는 KGB라고 불린다) 이 급파됐으며, 한국 외교부 역시 협조 공문을 받은 터라 많은 기관이 분주했다.
공항에서 일하면서 그렇게 삼엄한 경계는 처음 보았다. 흔히 'Deportee'라고 불리는 강제 출국- 퇴거자를 항공기에 탑승시키는 업무는 보통 출입국 관리 직원 두 명 정도가 따라붙는데, 이 날은 탑승 게이트에 서 있는 사람들이 족히 열댓 명은 되어 보였다. 각 기관의 최고 책임자들이 출동할 정도로 긴장된 시간.
나는 대체 그가 어떤 범죄를 저질렀기에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하며 덩달아 긴장했다. 아마도 연쇄 살인 용의자, 국가 전복을 계획했거나 전쟁 범죄에 연루된 사람이 아닐까 하고 상상해 보았다. 동시에 뭐 문제가 생긴다고 해도 나는 한국 노동법을 적용받으니까 해고당하지는 않겠지 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도.
우락부락하고 살벌한 얼굴을 한 괴수를 생각했으나, 호송차에서 내린 것은 뜻밖에도 선량한 눈빛을 한 잿빛 얼굴의 청년이었다. 모든 것을 체념한 듯했지만 공포에 질려 보였던 그는 무슨 짓을 저지른 걸까.
끝까지 아무도 내게 그가 어떤 범죄혐의로 본국으로 송환되는지 말하지 않았다. 아니 그 사람을 언급하는 것조차 꺼렸다. 의구심이 가득한 그날 이후 보름 정도 지났을까. 나는 어떤 인터넷 기사를 접하고 망연자실했다.
여느 NGO 단체에서 진행한 그의 한국인 여자친구의 인터뷰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그는 반체제 인사로 본국의 제재를 피해 한국에 불법 체류했다. 절대 테러나 살인에 연루된 사람이 아니며, 독재정권에 비판적인 의견을 냈거나 아마도 현 정권을 지속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어떤 단체의 일원인 듯했다. (여전히 대통령 선출이 공개투표 방식으로 진행되고 90%를 훨씬 상회하는 찬성률로 당선되는 국가가 있다는 사실이 경악스러웠다. 아, 그 나라도 야당이 있긴 하지만 형식적이다.)
그녀는 남자친구가 본국으로 송환된다면 무조건 사형을 당할 것이기에 인도적 차원에서라도 우리나라 정부가 그를 보호하고 본국으로 송환하는 일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결국 본국으로 송환된 그는 예상한 대로 연락이 두절되었고, 해당 국가에 그의 소재를 알려달라는 여자친구의 요청은 당연하게 거절되었다- 참고로 이 기사를 다룬 인터넷 신문사는 단 한 곳이다
위의 내용은 당연히 허구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완벽한 민주주의 국가이며 세대 갈등과 젠더 갈등 그리고 부익부 빈익빈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또한 보수와 진보가 하나로 어우러져 협치를 이뤄내지 않았는가. 미국, 러시아, 일본, 중국 등 오랫동안 우리를 쥐락펴락 하고 싶었던 주변 열강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자랑스러운 성과를 이뤄낸 요즘 세상에, 저런 곤란한 일이 일어났을 리 만무하다. 그러니까 모든 내용은 허구다.
아, 난 10년 전에 사람을 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