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vid, 죽기로 결심하다.

by 밤호랑이

평생을 악착같이 살아온 D. 그의 영어이름은 데이빗이다. 대학교 때 공대 앞 광장에 다비드 동상이 있었다. 그의 외모 역시 흡사 광장 조각상을 았다고 해서 다비드라 불렸고, 곧 그는 영어이름을 David이라고 정했다. 사실 뭐 외모만 나쁘지 않았지 마음은 텅 빈 그는- 마치 개처럼 타인의 관심을 갈구했다. 섹스중독에 빠져서 모든 세상을 일그러지게 바라보던 어느 날, 돈이 필요하다는 익명의 여성들에게 통장의 모든 잔고를 골고루 송금한 후에,

죽기로 결심했다.

먼저 친한 친구의 실현가능한 계획을 차용하려고 했다. 세상을 떠나는 일에 유독 관심이 많던 그의 친구는 큰 가위를 가지고 일련의 시도 후에 직접 119로 전화를 걸어 응급실을 찾았다. 참을 수 없을 만큼 너무 아팠다고 한다.

겁이 많던 D는 그 얘기를 듣고 계획을 포기했다.


다음은 자유낙하다. 금문교에 자살금지 표지판이 있는 것은 이유가 있다. 높은 성공률과 골든게이트가 가진 상징성. 그런 다리가 우리나라에도 있다. 굳이 한강 말고도- 인천대교. 장장 20킬로에 가까운 대교인데 바다 위에 지어졌다. 굉장히 높아서 폐쇄공포,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은 제일 높은 지점에서 종종 핸들을 꺾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꿈에 그리던 포르쉐 파나메라 GTS를, 아파트를 처분한 돈으로 취득하고 한 달간 미친 듯이 쏘다니던 4월 마지막 날이었다. 인천대교를 찾은 그는 신발과 핸드폰과 겉옷을 가지런히 두고 장렬하게 최후를 맞이해야지 라는 생각을 했다. 갓길에 차를 세우려던 찰나 공항 화물터미널로 항하던 트레일러의 하이빔과 클락션 세례를 받았다. 헐크 같던 기사가 "야이 미친넘아 죽으려고 환장했어? 왜 갑자기 속도를 줄이고 지랄이야 진짜 죽어볼래?"라는 일갈을 쏟아내자 곧 시무룩해졌다. 자기의 계획을 누군가의 일갈로 받아내자마자 겁이 났고, 무엇보다 헐크기사에게서 마치 자신에게 정학처분을 내리던 고등학교 교장 얼굴을 발견하고 트라우마에 주저앉아 버렸다고 했다. 계획 실패.


마지막은 역시 약이다 약.

오랜 벗처럼 가장 긴 관계를 유지한 사람은 동네 정신과 의사다. D는 단골손님이었으므로 접수데스크 직원은 목소리만 들어도 생년월일를 묻는 기본절차의 필요성을 못 느끼는 듯했다. 오랜 정신병력으로 이젠 의사에게 어떤 약물로 변경할지 제안하는 수준에 이르렀고, 의사도 반즈음 포기했는지 마약성 약물만 아니라면 순순히 처방해 주었다. 그가 좋아하는 인데놀과 라믹탈을 고용량으로 3주 치 처방받았는데, 그의 큰 손의 반 줌 채우는 꽤 많은 양이었다. 그는 그것들을 발베니 14년 산 반 병과 같이 원샷으로 삼켰고 유독가스를 내뿜는 무언가 점화했다. 완벽한 계획이었으나 오피스텔의 환기시스템이 하필 최첨단이었다. 게다가 윗집에 거주하는 중년남성은 퇴직한 조향사였으므로 아랫집 연탄냄새에 즉각적으로 반응했다고 한다 트리거에 반응하는 저격총처럼.

소방관과 경찰관의 활약은 대단했다 약 9분 40초 만에 현장에 도착해서 현관문을 박살 냈다 계획실패.


그가 마음을 고쳐먹고 한림대학교 대학원에서 임상심리를 공부하며 발 벗고 자기 같은 사람들을 찾아 나서게 된 것은, 발베니와 번개탄 가스로 의식이 희미하던 그때 꿈에서 만난 전연인이.. 아니다 목숨을 살리려던 천사가 건넨 매우 무서운 목소리였다고 했다.

"살기 싫다고 그렇게 여러 수단으로 애쓰는 건 네가 목이 마르다고 네 몸을 칼로 찔러 거기서 나오는 피로 목을 축이는 것과 같아"




누군가 감정에 휩쓸린 말이 아니라 남 이야기하듯 갑게 얘기하면

그게 진짜다.

작가의 이전글연예인 K에 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