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단상. 그리고 신사들의 두 시간.
불혹의 버킷 리스트들.
강원도 양구 방문.
부모님께 중요한 선물드리기.
맘 속 상처받은 아이를 찾아가서 같이 있어주기.
그리고 투잡 하기.
버킷리스트들을 하나하나씩 채워가고 있다.
오늘 새벽에 택배 배송 보조 업무를 하고 왔다. 예전부터 투잡을 하고 싶었는데, 내가 업무에 지원하는 순간부터 현장교육을 받는 것까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마치 나를 기다린 것처럼.
새벽에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난 서울 촌놈이었기 때문에 서울에 국한된 내 문장들을 이해해 주길 바란다..) 동대문 원단시장과 도매시장은 자정에 오픈하여 아침에 문을 닫는데, 물건을 거래하는 상인들, 그 물건을 가게에서 가게로, 가게에서 손님의 차로 배송하는 신사들, 그리고 그들을 대상으로 하는 음료배달과 음식점까지. 이 모든 것이 얽혀 다채로운 색상을 작품을 만들어낸다.
강남 버스터미널 금싸라기땅에 위치한 화훼상가는 아름다운 꽃잎들과 진한 향기로 당신을 홀릴 것이고 창문이 없는 탓에 언제 아침이 밝아오는지 까맣게 잊을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의 발그레한 표정과 기뻐하는 모습을 기대하며 꽃다발을 구입하는 고귀한 여정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건대 로데오거리는 젊음의 향기와 열기로 뜨거웠다. 새벽 한 시가 넘은 시간에 많은 인파로 인해 '다소 어린' 친구들과 어깨를 부딪히며 서로 흘기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아파트 지하, 당신과 내가 잠든 시간에 바쁘게 돌아가는 배송의, 택배의 세계가 있다. '프레시'한 물품의 배송시간 리밋은 아침 일곱 시이다. 어떻게든 그 시간을 맞추기 위해 배송 기사들이 있고, 그들이 개인적으로 고용하는 서포터. 즉 보조가 있고.. 난 그 보직에 지원한 것이었다.
초심자인 내게 배송기사님은 꼼꼼하게, 하지만 매우 빠른 속도로 업무 절차를 설명해 주셨다. 난 미친 듯이 뛰어다녔는데, 그가 나를 도와줬음에도 40개 남짓 배송을 겨우 마칠 수 있었다. 능숙자들은 두 시간이 안 되는 시간에 백오십여 개까지 소화한다고 한다. 내가 그 머지않아 그 능숙자 역할을 해야 한다.
그는 나에게 바로 일당을 지급했다. 난 이것이 너무 귀하다. 요행으로 들어올 수 있는 수십 수백만 원의 행운보다도 땀을 한 바가지 흘린 사만 원의 가치가.
'물 먹을 시간도 없어'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쉬는 짬에 먹으려고 했던 내 '참'은 주머니에서 적절히 흐물 해졌다.
당신과 내가 자정 가까이 되어서야 급하게 주문한, '프레시'한 우유와 과일은 신사들이 배송한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막대한 업무를 묵묵히 감당하는, 깜깜한 새벽에 재빠르게 움직이는 밤의 신사들에 의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