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 gentle
약육강식, 각자도생이라고 흔히 말하는 요즘 시대에 내 '약함' '버틸 수 없음'을 증명해야 우대받는 곳이 있을까?
좀 웃기지만, 자동차 사고가 났을 때다.
운전자들 사이에서, 그리고 남자들이 흔히 농반 진반으로 해학적인 요소를 섞어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이 것.
(내가 말하는 해학적 요소는 어디까지나 한 사람의 생명이 촌각에 달린 상황이 아닌 가벼운 접촉사고에서부터 과실을 따지며 서로 얼굴을 붉히며 감정적인 대화가 가능한 경우에 한정한다)
여성들이 시시콜콜해 보이지만, 그 속에 녹아있는 삶의 애환과 함께 미용, 육아, 인간관계, 휴양, 문화, 날씨, 회사 생활, 결혼 생활.... 주제를 한정할 수 없는, 하지만 삶에 필수적인 요소들로 이루어진 대화로 스트레스를 풀고 타인을 위로한다면, 남성들은 자조적이고 어이없어서 웃는 그런 얘기들로 긴장을 풀기도 한다. 한마디로 좀 애 같은 게 있다. 그 실없는 얘기 중에 하나.
차량 두 대가 애매한 차선 합류 지점에서 접촉 사고가 났다. 운전석에서 나온 아재 둘은 일단 서로 동일한 포즈와 동일한 표정으로 하차한다. 그다음 두 아재가 동시에 시전 하는 대사는?
일단 목부터 잡고 '아이코 나 죽어..'
난 졸린 눈을 비비고, 처가에 간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러 길을 나섰다. 중간 지점부터 나와 같은 목적지인 듯 계속 어깨를 나란히 하고 가던, 그러나 다소 공격적으로 과속을 하던 차량이 있어 주의하며 운전을 했다. 주유소에 들르려고 서행하던 찰나.. 뒤에서 쾅!! 툭 이 아닌 콰광으로 표현하고 싶다. 충격을 받는 순간 한숨과 함께 미간이 찌푸려졌다. (예상치 못한 사건은 상당한 시간을 소요할뿐더러, 사고 처리 과정에 있어서도 상당한 주의와 스트레스를 요한다)
그냥 단순히 알아서 보험 회사에서 알아서 해주겠지, 상대방 피해자/ 가해자와 서로 이성적이거나 납득가능 한 수준에서 보상을 얘기하고 잘 해결되겠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물론 서로의 '납득 가능한 수준'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정도..라는 게 있지 않은가? 대다수의 선한 사람들 사이에 섞여있는 이해 안 되는 소수로 인하여 결국 인간 불신에 대한 철학적 물음까지 꺼내게 된다.
-하고 싶은 얘기는.. 강한 농업 비료 한 컵을 정화시키려면 100L의 물이 필요하단다.
아마 내가 친형이 있다면 그 연배 즈음 되었을까. 그는 난처한 얼굴로 연신 죄송하다고 했다. 다친 곳은 없는지, 동승자는 혹시 없는지. 난 천만다행으로 심히 다치거나 큰 대미지를 입은 느낌은 아니었다만 시간이 지나야 증상이 발현되는 경우도 많아 말을 아꼈다.
세상을 보는 시선과 내 마음 상태가 호전된 까닭일까. 많이 상한 그의 차가 눈에 띄었고,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과 아내가 동승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사고는 뒷자리 자녀들에게 특히 위험하니까.
아래는 재작년 내가 물적 피해를 입은 자동차 사고 이야기이다. 옆 차선 차량이 무리하게 끼어들다가 신호 '대기'하던 내 차량을 가격했는데, 놀랍게도 내 과실을 잡았다.
당신에게 팁을 주자면 상대방이 '하자는 대로' 안 하는 게 이롭다. 그리고 아리송한 상황에서는 절대 먼저 '미안하다'라고 잘못을 인정하지 말라고 한다. 내가 하는 얘기가 아니라 전문가가 한 얘기. 난 이걸 몰라서 상대방의 어처구니없는 운전에 내 차 사이드 부분이 박살이 났는데도, 양 측의 보험회사 관계자가 자기들끼리 입을 맞추어 적절히 과실 비율을 나누는 과정을 목도했다. 과실 비율을 나누면, 그리고 사고 피해자의 과실을 10프로만 잡아도 보험회사는 피해 운전자의 자기 비용을 지출하게 해서 수리 비용을 줄일 뿐만 아니라 다음 연도 보험 인하 혜택을 삭제할 수 있고, 아예 보험료 인상까지 가능하다. 마치 형 아우 하듯이, 이번엔 내가 좀 봐줄 테니 다음번엔 너네가 양보해라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이해하지 못할 정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로 글을 마치고 싶다.
1. 블랙아이스라는 것을 처음 접한 내 차는 적잖이 당황했고 이미 눈앞에 1차 사고가 벌어지는 상황에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하지만 어찌나 눈썰매처럼 미끄러지던지 사고처리를 위해 정차되어 있던 전방 차량을 그대로 가격 한 적이 있다. 경차 운전석에 앉아 있던 여성은 당황해하고 있는 나에게, 놀랍게도, '놀라셨겠어요, 사고를 유발해서 죄송합니다'라고 했고, 후에 알게 되었지만 본인의 치료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당신이 아는지 모르겠지만 인사사고는 보험료 인상의 주된 요인 중 하나로, 그녀는 충분한 진료를 받아도 될 정도였다.)
2. 적절히 짜증이 나고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좁은 도로에서 유턴을 하다가 주차되어 있는 택시를 접촉한 적이 있다. 정말 아주 작은 흠집 정도였지만, 상대 차량은 영업용 차량이고 내 과실은 100프로였다. 식은땀이 흘렀고 난 순간적으로 별의별 생각을 다했다. 주변에 cctv가 있나, 상대방 블랙박스가 꺼져있으면 좋겠다는 미련하고 염치없는 생각까지. 내가 망연자실하며 차량 소유주를 수소문하고 있을 때, 넉살 좋아 보이는 기사분이 나타나더니, 꾸벅 사과를 하는 나와 자신의 차량을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는 '별 거 아니네요 그냥 가세요'라고 했다. 나는 뭐라도 드릴 것이 없나 내 차 안을 열심히 찾아보다가.. 또 한 번 염치없게도 그의 마음이 바뀌면 어쩌나 하는 미련함 반 감사한 반으로 얼른 사고 현장을 벗어났다.
이젠 나도 좀 젠틀해지고 싶다. 염치없고 미련한 생각은 그만하고.
단순한 접촉사고를 낸 상대 운전자들에게 "다음부터는 조심하시고 그냥 들어가세요"라고 말씀하시던 아버지의 모습들에 그들이 얼마나 안도감을 느끼고 다행이라고 생각했을까. 하지만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답답하고 이해가 안 갈 때도 있었다. 왜 당신의 손해를 주장하지 않는지-
피해를 입은 상대방 운전자들이 내게 아량을 베풀어 줄 때마다 아버지의 여유와 젠틀함, 따뜻한 마음이 돌고 돌아 내게 전해지는 것만 같아서 너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