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닝포인트 2>
인생의 경로를 바꿀만한 첫 번째 결정은 학교가 있는 인천으로 오는 것이었다. 전남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인천이라는 대도시로 온다는 건, 생각 이상으로 내 삶에서 많은 것이 변할 것이라는 예고편 같기도 했다.
대학교에 입학하며 난생처음 가족과 떨어져 멀리 가게 되었다. 기숙사에 지원할 때만 해도 당연히 가능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예상과 달랐다. 학교 규모에 비해 수용 가능 인원이 적다는 것을 몰랐다. 기숙사 건축 계획도 주변 하숙집과 원룸을 운영하는 상인들의 항의로 기약 없이 밀리고 있었다. 갓 성인이 된 딸을 혼자 살게 할 생각에 걱정하던 부모님은 내게 학교 근처에 살고 있던 작은할머니·할아버지와 사는 게 좋겠다고 제안했다. 아직 혼자 살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던 나도 그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와는 먼 친척이었지만, 어렸을 때 몇 번 봤던 정으로 작은 별채 방을 흔쾌히 내어주셨다.
입학일이 가까워지며 기숙사 추가 합격 통보가 왔으나 이미 정한 결정을 바꾸지는 않았다. 적막 속에서 매일을 보내다 내가 온다고 하니 반가워해서 무를 수 없었던 것도 있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기숙사에 들어갔다면 나의 독립이 늦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작은할머니·할아버지 댁은 용현시장 옆 구불구불 좁고 높은 골목길, 가까이 붙어있던 여러 집 사이 빛바랜 파란색 대문집이었다. 옷 같은 간단한 짐만 챙겨갔다. 이날은 부모님이 함께 와서 집을 둘러보았다. 낯선 객지 생활을 무사히 할 수 있을지 걱정하며 옆에 있던 용현시장에 가서 플라스틱 서랍장과 작은 탁자를 구매했다. 아빠는 하늘색 바탕에 흰 구름이 있는 귀여운 벽지를 사서 직접 도배했다. 울퉁불퉁 울기도 하고 서툴렀지만, 칙칙하고 누렇게 바랜 벽지 대신 누워서 하늘 천정을 보고 기분 좋게 잠들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을 것이다.
학교 동기를 만나는 첫날, 2박 3일간 오리엔테이션에 갔다. 그 자리에서 이야기 나눈 동기 중에서는 수능을 평소보다 보지 못해서 오게 된 사람도 있었고, 모든 과목 1등급을 맞았는데 수시를 먼저 써버리는 바람에 큰 후회와 함께 입학한 사람도 있었다. 10년간 외국에서 살다 와서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를 원어민처럼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의 선택이 어찌 되었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 가끔 궁금하긴 했다. 내가 광고홍보학과를 갔더라면, 다른 삶을 살았을까? 외국어를 배웠다면 외국에서 오래 살았을까? 이제는 알 수 없는 상상 너머의 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