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과 우수 사이] 토토리가 토토리가 된 이유

토종씨앗이 마음에 끌린 이유? 토종콩이랑 토종벌을 선택한 이유?

by 히라

왜 농사를 짓기로 했나? 왜 토종콩과 토봉(토종벌)을 선택하게 되었나? 일일이 설명하기엔 길고, 묻는 사람은 여전히 많다. 그럴 때마다 가슴이 조금 답답하긴 하지만, 나 같아도 반대 관점이라면 궁금할 것 같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이 나를 소개했던 말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농사지으러 원주 왔다’라는 이야기였다. 아니요, 애초에 농사가 목적이었다면 내가 태어났던 고향으로 돌아갔겠죠? 원주로 올 때만 해도 나는 내가 해왔던 일들을 조합하며 살게 될 줄 알았다.


원주로의 이주를 결정한 후 무(無)의 상태로 왔다. 20대 후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워킹 홀리데이를 떠날 때 ‘생존’이 유일한 목적이었던 것처럼, 나는 다시 한번 원주에서 생존 실험을 시작했다. 이 실험에서 살아남는다면, 나는 어디서든 뿌리내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과 함께.


가진 자원이라고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모아둔 약간의 돈과 맨몸뿐이었다. 연고 없는 곳에서 살아내는 그 자체가 목적이었다. 다행히 원주로 오도록 마음을 열어준 좋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나의 이주가 그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기를 바랐다. 스스로 설 수 있어야 누군가와 손을 맞대도 무겁지 않을 테니까.


이곳에서 운전면허도 따고, 지인들의 일을 돕다 보니 내가 가진 소능력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모아 스스로 기획한 일도 실행하기도 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꿈, ‘나만의 맞춤형 직업 찾기’. 그 과정에서 농업을 만났다.


어딘가 말하기 쑥스러워 묻지 않는 한 먼저 말하지 않는 나의 전공은 ‘국제통상’이다. 졸업 후 동기들과 달리 전공을 살리지 않은 채 국제개발협력, 기업 사회공헌, 봉사활동, 사회적경제, 서비스업 분야에서 20대의 대부분을 보냈다. 20대가 엿가락처럼 늘어나는 것도 아닐 텐데, 그 짧은 시간 동안 공공기관부터 대기업, 중견기업, 소기업, 비영리단체까지 ‘역마살의 아이콘’으로 살았다.


그러면서 계속 나의 마음을 자꾸 건드렸던 분야는 ‘사회적 소수자의 권리’였다. 처음에는 대상에 대한 관심인 줄 알고 난민, 장애인, 이주노동자, 결혼이주여성, 성소수자 등 분야를 넓혀가며 공부하고 활동했지만, 당사자성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나는 주변인이 되거나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은 단순 지지자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로 가는 과정인가?”라는 질문만 이어졌다.


그러다가 마주친 책 한 권. 『차별의 언어』에서 나는 문화다양성을 바라보는 관점인 ‘상호문화’를 알게 되었다. 나는 특정 대상의 권리만을 따라간 게 아니라 ‘문화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에서 살고 싶은 사람이었다. 무의식의 무의식을 파고들어 ‘김희라’라는 인간을 이해하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주인공 삼 남매 중 둘째 덕선의 마음을 제 일처럼 알아버리고 사람들이 어남류(어차피 남편은 류준열)를 외칠 때, 대쪽같이 덕선이라면 어남택(어차피 남편은 택이)을 외친 나란 사람. 1990년생 백말띠라면 알법한 그 불균형 속에서, 나는 인간은 동등하다고 교육받으면서 동시에 차별적 구조와 한계를 경험하면서 자랐다. 사회는 동등하다고 말하지만, 언제나 동등한 것은 아니었다. 나아졌다고 말하지만, 꼭 그렇다 말하기는 아주 복잡했다. 그건 단순히 다수와 소수의 문제도, 권력 유무에 따라 결정되는 것도 아니었다. 견고한 제도와 뿌리 깊은 인식 사이의 줄다리기였다.


2012~13년에 봉사활동 파견으로 경험했던 동남아시아 필리핀에서의 한국인 여성은 의도하지 않아도 국가적 배경으로 많은 것이 설명되었고, 그 배경은 곧 타의에 따른 우월감으로 이어졌다. 반대로 2019~20년에 경험했던 북유럽 덴마크에서의 한국인 여성은 길을 걸을 때 종종 ‘칭챙총’이라 불리는 동양인 여성으로 보이기도 했고, 젊은 아시안 여성이 덴마크에서 살면 당연히 좋기만 할 것이라는 오해를 낳았다.


그 경험 후 만난 “누구나 어디서든 소수자가 될 수 있다.”라는 문장은, 내가 발 딛고 있는 곳에 따라 우월함과 차별을 동시에 지니는 존재임에도 나는 여전히 같은 ‘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다시 학교로 들어가 상호문화를 공부하면서, ‘한 지역 안에서 특정 문화가 우월하지 않고 서로 다른 문화가 동등하게 존재할 수 있으려면 어떤 구조의 사회여야 가능할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문화다양성을 보는 관점 중 보는 정도에 따라 ‘다문화’주의와 ‘상호문화’주의가 있다. 다문화주의에서는 문화의 ‘많음’에 초점을 맞추면서 다수 문화와 소수 문화 등 권력의 차이에 따른 문화 간 차이가 존재하고, 상호문화주의에서는 문화의 ‘다양함’에 초점을 맞추면서 한 지역 안에 존재하는 문화가 동등하다는 관점을 지향한다. 각 문화가 관계를 맺으며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창출한다는 점에서 다문화주의와 다르다. 나는 상호문화가 지금 사회가 가야 할 방향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돌고 돌아 지금 여기에서 토종씨앗을 지키는 횡성 언니들을 만났다는 건, 언젠가는 마주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농사지으러 원주에 왔다”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지만, “결국 토종씨앗을 만나러 원주에 올 수밖에 없었다”라는 말은 이제 나를 설명하는 문장이다.


토종씨앗을 지키는 일은 다른 지역에서 온 씨앗을 배척하거나 차별하는 관점이 아니다. 기업에서 사지 않고도 농부의 손으로 받아낸 씨앗을 지키는 ‘주권’과 ‘자립’의 실현이다. 지역의 역사와 맥락을 품고 땅의 생태계에 맞춰 적응해 왔기에,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땅과 상호작용을 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창출하는 존재이다. 문화다양성이 문화적 존재의 생존과 연결되는 것처럼, 토종씨앗은 획일적 존재가 아니라 지역의 변화에 맞게 적응할 수 있는 고유성을 지닌 존재면서도 새로운 환경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농장 ‘토토리’는 앞으로 수십 종 혹은 더 많은 토종씨앗이 자라는 곳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토토리’라는 이름은 ‘토종콩’과 ‘토종벌’의 앞 글자에서 왔다. 농사도 처음인데 토종씨앗의 종류가 너무 많아서 적정 범위를 정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던 때, 오랜 시간 자칭 1호 팬으로 아낌없는 애정과 지지를 보내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제작사 ‘스튜디오요나’에서 때마침 진행했던 <안녕! 지구특콩대!>라는 프로젝트를 접하며 콩이 머릿속을 번쩍 스쳤다. ‘콩은 그만큼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으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잠재력 있는 존재였어!’ 게다가 나는 콩을 좋아한다. 엄격한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현실적 플렉시테리언으로 살면서 두부와 두유를 즐겨 먹고, 여름 소울푸드는 콩국수라니. 건강을 지키고 싶을 때 늘 콩을 찾던 나에게 꼭 맞는 작물이었다. 그렇게 토종콩을 주 작물로 정하게 되었다.


토종벌은 토종콩을 선택한 이유보다 더 단순하다. 덴마크 워킹 홀리데이 시절 나에게 좋은 삶의 영감을 주었던 레오와 베티의 자급자족 농장에서 꿀벌을 키웠다. 유채꽃밭 옆의 벌들이 맑은 물을 마실 수 있는지, 말벌이 나타나진 않는지 감시하며 지냈던 농장에서의 기억이 과거와 현재를 연결했다. 그렇다면 양봉이라는 선택지도 있지 않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양봉은 30군 이상이어야 하는데 대신 여러 번 꿀을 채취할 수 있고, 토봉은 10군 이상이면 되는데 1년에 한 번밖에 채취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들었다. 처음부터 수십 군을 갖출 수는 없고, 효율성과 생산성보다는 토종콩에는 역시 토종벌이 어울리지 않을까? 마찬가지로 나는 어릴 때부터 아빠가 마시던 도라지·더덕에 꿀과 우유를 넣은 건강쉐이크를 옆에서 뺏어 먹으며 자란 허니키즈다.


그렇게 나는 토종콩과 토종벌을 키우는 농부가 되기로 했다. 상호문화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싶은 나, 스스로 살고 싶은 삶의 방식을 선택하고 그 방법으로 살 수 있는 지역에서 뿌리내리고 싶은 나. 상호문화적인 삶의 실천이자 나다운 삶을 꿈꾸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당연한 선택이다. 횡성의 언니들은 초보 농부인 내가 농사짓다 쓰러질까 걱정이지만, 할 수 있는 만큼 다양한 종류의 토종씨앗과 토종벌을 키우며 그들과 친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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