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과 우수 사이] 토토리는 어느 마을에 있나요?

농장 ‘토토리’가 자리잡은 농지를 구하게 된 과정

by 히라

농사를 시작하는 단계에서 나에게 (아마도) 가장 어려운 관문은 ‘농업경영체 등록’일지도 모르겠다. 농지에 작물을 심고 서류를 작성해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 제출하면, 실제로 농작물이 심겨 있는지를 확인한 후 등록해 주기 때문에 과정 자체는 무난하다. 농지가 준비된 상태에서 제때 파종하고 작물이 자랄 때 농업경영체를 등록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순서다. 하지만 임대 농지 계약일과 농업경영체 등록 기한이 정해져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그 순서가 반대다. 농사를 시작하기에 늦은 시기에 농지를 계약하고 가장 먼저 농업경영체를 등록해야 하는데, 계약 후 나를 기다리는 건 혹독한 겨울뿐이다.


다른 해에 비해 늦어진 청년농업인 영농정착지원사업 합격 소식은 덩달아 나의 농업 실행 계획까지 미루게 했다. 나는 제도권 안의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보자는 생각으로 농업을 준비했고, 지원사업에 합격하며 농지은행에서 농지를 빌릴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바로 알아보더라도 실제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조건의 농지를 제때 구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나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이 무엇인지 기준을 세웠다.

(1) 집에서 차량 이동 20분 이내(귀래면, 문막읍, 신림면, 부론면 제외)

(2) 콩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조건일 것

(3) 900평 이하


처음 보러 갔던 농지는 무실동이라 가까웠지만 막상 가보니 ‘맹지’였다. 도로와 맞닿은 부분이 없어 차량 혹은 기계가 진입할 수 없는 토지였다. 몇 년간 방치된 탓에 밭은 내 키만 한 풀로 가득 덮여 있었다. 주변 길을 돌다 겨우 가까운 길에 주차한 후, 다른 논밭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걸어갔다. 길이 아니라 진흙으로 발이 푹푹 빠졌다. 근처까지 가보니 밭 자체가 너무 높아 올라갈 수조차 없었다. 밭에 들어가는 건 포기하고 돌아가던 길, 옆 논 주인에게 말을 걸었다. 작업하다 뱀이라도 나올까 걱정되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고 했다. 밭 주인이 예전에 농사지을 때 어떻게 밭에 들어갔는지 물어보니 우리 논 지나갈 수 없는지 물어봤는데 안된다고 했고, 여자 혼자서는 절대 못할거라고만 했다.


계속 올라오는 공고를 보니 너무 멀고 필요 이상으로 넓은 곳뿐이었다. 지금 놓치면 언제 다시 기회가 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순간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다. 그렇게 결정하기에는 한 번 계약하면 기본 임대 기간이 5년이고, 중간에 파기하면 다음 계약에 제약이 생긴다. 오래도록 영향을 미치는 결정이기에 더욱 신중하게 결정해야 했다. 아쉬운 마음과 함께 농어촌공사에 전화를 걸어 계약하지 않겠다고 전했다. 초조함과 불안함을 꾹 누른 채 매일같이 농지은행 홈페이지에 들어가 검색만 반복했다.


그렇게 한 달이 흘렀을 무렵, 농어촌공사에서 전화가 왔다. 내가 구하던 조건에 적합한 농지가 나왔다는 소식이었다. 전화로 간단한 설명을 듣고 주소를 검색해보니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였다. 이사를 계획 중이었지만 가고 싶던 동네와도 가까운 거리였다.


현장에 가보니 면 소재지 근처에 차량 진입로가 잘 되어 있었다. 무엇보다도 가자마자 느껴지는 기운이 좋았다. 원래 논이었는데 벼 외 작물을 재배하기 위해 객토를 한 상태라 내가 추가로 손댈 것이 없었다. 게다가 강변 자전거 도로가 바로 옆에 있어 탁 트인 풍경이 마음에 쏙 들었다. 치유 농장을 꿈꾸는 내게 이런 풍경은 훌륭한 치유 자원이었다. 크기는 무언가 마음껏 해볼 수 있는 780평이라니. 지금 생각하면 정말 넓은 땅이지만, 농지은행에 올라오는 농지들이 워낙 대단위라 이정도만으로도 정말 감사했다.


온라인으로 임대 신청을 한 뒤 서류를 준비해서 방문했더니, 실제 계약은 11월에나 가능하다고 했다. 이 농지는 기존 농업인이 10월까지 농사를 마무리하는 조건으로 매입한 땅이라 내가 바로 계약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11월에 계약해도 괜찮을까? 올해 남은 기회가 송두리째 날아가는 것 같아 고민 됐지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약 5개월의 시간이 흐르고 계약기간이 되어 방문하자, 담당자가 근처 다른 농지도 같은 시기에 나왔는데 계약이 안 됐다며 함께 빌려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빌리기로 한 농지도 내겐 너무 넓은데…! 들깨라도 심어보라는 담당자의 제안에 다음 해에 펼쳐질 고생길은 생각도 못한 채 덜컥 1300평, 두 필지를 계약하고 돌아왔다. 농장 ‘토토리’는 그렇게 호저면에 자리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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