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도 계획도 내 뜻대로 될리가 있나
2월 중순이 되자 다른 일들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2월 말에는 원주를 떠나 경남 산청으로 가는 오를레이 프로그램 참여가 기다리고 있다. 2022년 11월에 참여했던 오를레이 원주편을 시작으로 원주와의 인연이 시작되어 지금에 이르렀으니, 내 삶에 의미있는 프로그램이지만, 중요한 시기에 자리를 비워야하니 한편으로는 마음 한켠에 신경이 쓰였다.
게다가 3월에는 12일 정도 필리핀에 가는 일정까지 있어서 이렇게까지 아무것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떠나야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있었다. 몇달 전 일정을 정하면서는 미리 대비하면 괜찮을거라고 생각했던 과거의 나,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순간이지만 돌아가게 된다면 절대! 절대! 네 생각대로 되지 않을거라고 경고하고 싶다. 이 일정은 내가 2012년도 단기 봉사, 2013년도 장기봉사 파견으로 이어진 필리핀 기관과의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온 것으로 개인적인 여행 일정이 아니기 때문에 기관의 일정에 따라 움직여야 해서 주로 1월이나 설연휴 전에 가던 일정이 사정으로 3월로 연기되었다.
언젠가 내가 여행을 떠나더라도 농사를 짓는 한 3월에는 자리를 비우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고는… 당장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머리를 굴렸다. 가기 전에 무엇이든 해놓고 가야 마음이 편할텐데, 여러가지 마음에 걸린다. 당장은 밭을 기계로 갈아버리는 경운이 괜찮은가? 하는 것에 의문이 있다. 친환경농법에 관한 공부를 하면서 알게된 사실은 경운을 해버리면 토양에 쌓인 유기물을 분해해 버린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당연히 내가 밭을 기계로 갈아버리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농사도 당연하게 땅을 갈면서 농사를 시작한다. 그렇지만 공부를 하면할수록 꼭 기계로 땅을 갈아 엎어야만하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물론 내가 아는 지식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남들이 다 한다고 해서 이유도 모른 채 하는 것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나마 내가 타협한 것은 두 필지를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보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약간의 힌트는 지금 빌린 농지가 원래 벼를 키우던 논이었다가, 흙을 채워서 작년에 콩과 깨를 심었다고 하는데 배수가 잘 안된다는 점, 그리고 채운 흙이 질이 좋지 않은 흙이었다는 점 정도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토양검정 결과가 그리 기대되지는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실패가 나의 실패로 정확하게 이어진다는 보장도 없으며, 내가 한 실패의 방식은 나에게 새로운 가르침을 주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간접경험을 통해 이리저리 요령피우고 싶지 않다.
그래서 한 필지는 완전한 실험의 공간, 다른 필지는 기계로도 갈아보고, 거름도 써보면서 1년 동안 차근차근 땅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의미있는 경험을 쌓는 시간으로 활용해보려고 한다. 그러면 무엇이 중요한가? 농사는 발바닥으로! 여행에서 발바닥을 쓰는 시간은 기억의 시간이고, 농사에서 발바닥을 쓰는 시간은 무수한 실패와 시도로 쌓는 경험의 시간이다. 말로만 번듯하게 선언할것이 아니라, 이제는 정말 움직여야 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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