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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드 Feb 14. 2020

[도서리뷰] 래퍼가 말하는 래퍼

김봉현과 대화하는 래퍼를 만나야 하는 이유

 ‘래퍼가 말하는 래퍼’는 힙합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의 인터뷰 모음집이다. 그런데 이 책에 등장하는 래퍼는 래퍼가 아닌 것 같다.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양아치스럽지 않다. 힙합팬이 아닌 사람들에게 흔히 래퍼는 양아치로 보이기 쉽다. 서로 디스하며 싸우고 돈자랑하기 바쁘기 때문이다. 그러나 ‘래퍼가 말하는 래퍼’에 등장하는 래퍼들은 철학자이자 성인군자처럼 보인다. 창모는 힙합을 ‘진짜 원하는 걸 마음 속 깊은 곳에 들어가서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고 했고, MC메타는 ‘내가 뭔지를 선언하는 음악’이라고 했다. 자기만의 멋진 관점과 가치관이다. 이들은 인터뷰를 위해 멋있는 척을 한 것인가. 생경한 광경이다.      


 나는 이들이 멋있는 척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보여주지 못했던 모습을 이제서야 보여준 것이다. 그동안 래퍼들을 가장 쉽게 접했던 곳은 ‘쇼미더머니’나 ‘인터넷 신문기사’였다. 그것들은 대중이 표면적인 반응을 할 부분을 주로 조명했다. 그 반응은 대체로 반감이었다. 그러나 이 책의 분위기는 이와 사뭇 다르다. 나는 이유를 김봉현에서 찾는다. 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래퍼들의 대답에 앞서서는 김봉현이라는 인터뷰어의 질문이 있었다. 그의 힙합에 대한 진심이 담긴, 통찰력 있는 질문에 래퍼들은 질문과 비견한 수준으로 대답했다. 힙합을 사랑하고 힙합에 대한 그만의 관점과 통찰을 가진 김봉현과 나눈 대화는 래퍼들의 그러한 면을 이끌어내기 충분했다.      


 대화를 나누는 상대방에 따라 꺼내지는 내가 달라진다. 양아치와 대화를 나누는 나는 양아치가 되고 깊이 있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나는 깊이 있는 사람이 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는 김봉현이라는 인터뷰어로 우선 보장된다. 그는 지난 10여 년간 힙합에 대한 책을 15권이 넘게 써왔다. 힙합을 사랑하고 힙합에 대한 애정과 통찰이 두드러진 김봉현과 나눈 대화는 래퍼들의 통찰력있는 면모를 충분히 이끌어 냈다. 어른스러운 래퍼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는 유일한 길은 김봉현과 대화하는 래퍼를 보는 길일 것이다. 힙합을 진로로서 고민하는 청소년에게 이 책은 매우 중요하다.      


 이 책을 읽어야 할 두 번째 이유는 힙합하는 것을 반대하는 부모님을 설득할 논리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힙합이 직업으로 충분히 될 수 있다는 점, 힙합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점, 공부를 안 하고 못해도 성공하고 행복할 수 있다는 점이 300페이지 넘게 17명의 입으로, 다른 방식으로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을 읽고 나면 부모님을 설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힙합은 누가 뭐라 하든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니까.     


 랩을 잘하기 위해서도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좋은 랩을 만들고 뱉기 위해서는 힙합 문화를 깊이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창모, 더콰이엇 등 이 시대 최정상 래퍼들이 증명하고 있다. 그들은 학창 시절의 방황과 답답함을 힙합을 통해 극복했다. 그들의 가사는 힙합 문화를 토양삼아 주옥같은 벌스가 되었음을 이번 인터뷰로 확인했다.   

  

 래퍼가 되지 않으려 해도 힙합에 대한 애정이 있다면 읽어봄 직한 책이다. 직업으로서 힙합의 매력이 다가 아님을 이 책을 통해 안다. 힙합으로 성공한 사람들에게 힙합이 가져다준 것은 돈만이 아니다. 행복과 안정감 그 이상이다. 그들의 인생에 힙합의 문화와 가치가 얼마나 좋은 영향을 끼쳤는지 알게 된다면 당신은 힙합을 종교로 영접할지 모른다. 내 생각과 감정에 온전하게 솔직하고 타인을 의식하지 않는 것, 자기만의 태도와 자신감,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 외에도 힙합은 삶의 태도 면에서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음악이다.     


 이렇게 읽을 이유가 많은 이 책은 성의로 꽉 찬 직업소개서다. 래퍼 외에도 우리가 알지 못했던 직업을 세상에 비춰줬다. 이 책이 10년 뒤 힙합의 미래를 결정할지 모른다. 힙합을 여러모로 멋지게 담은 이 책이 많은 사람에게 읽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리뷰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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