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스크린시대, 1박2일의 미덕
주말 저녁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강제 집콕을 하고 있던 차였다. 오랜만에 TV 예능 프로그램을 보기로 했다. 이례적이었다. 언젠가부터 콘텐츠는 혼자 즐기는 것이 미덕이 됐기 때문이다. 내 방에서도 TV 코드가 뽑힌지 오래였다. 그 자리를 대신 채운 것은 모두가 예상하듯 유튜브와 넷플릭스다. TV 프로그램과 안녕한 사람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워낙 볼 게 많은 세상이니까. 그럼에도 오늘만큼은 내 방에서 소파로 나가 TV를 보기로 했다. 간만에 주말 저녁을 TV 예능 프로그램으로 채울 심산이었다.
TV 앞에 앉으니 옛날 생각이 났다. 30대인 내가 감히 라떼를 시전해볼까 한다. 20대까지 줄곧 TV의 시대를 살았던 내 시절 이야기다. 나 때는 저녁을 부르는 별명이 있었다. '황금 시간'이다. 특히 주말 저녁은 황금 중의 황금이다. 온 가족이 밥상 앞에서 TV를 봤다. 그 시간에 했던 프로그램 중 아직까지 용케 남아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 KBS의 ‘1박2일’ 이다. 정말 오랜만에 '1박 2일'을 봤다. 초초초장수 프로그램인데 얼마 전 시즌4 로 새단장을 한 것이다. ‘1박2일’ 이라는 제목에서부터 풍기는 뻔한 틀에서 얼마나 변주를 줬을지 궁금했다.
역시는 역시였다. 순두부같이 순하고 밍밍했다. 이렇게 슴슴한 프로그램을 왜 만드는 건지 의문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자극적으로 물고 뜯는 것이 내 취향이다. 강호동-이수근이 나오는 ‘복불복’, ‘나만아니면 돼’ 를 모토로 했을 시절이 더 재미있었다. 까나리 액젓만큼 독했던 프로그램이 이렇게 순둥해 졌다니. 순해진만큼 함께 재미도 쪼그라 들었다. 그 변화에 나 포함 많은 시청자들이 쓸려져 나갔다. 그 시청자들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 내 착각이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 프로그램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금방 알았다. 방송국에 다니는친동생 덕에 우연히 시청률을 확인하니 12%였다. 그리고 그 12% 에 포함되는 다른 누군가가 신선한 충격을 주는 말을 했다. 이 프로그램은 다같이 볼 수 있어서 좋다는 말이었다. 평소에 하지 못했던 신기한 생각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누군가와 같이 본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언제였던가. 어느 순간부터 콘텐츠는 같이 보는 것이 아니라 혼자 보는 것이 디폴트값이 돼버렸으니까. 내취향에 맞는 것만 혼자서 낄낄대며 보면 그만이었다. 다같이 본다는 말이 어색해서 이상했다.
누군가와 함께 콘텐츠를 보려면 어떤 것을 봐야 할까? 나는 해본지 오래된 고민을 몇 년 만에 발동시켰다. 우선 내가 평소 즐겨보는 콘텐츠는 안 될 것 같았다. 내가 웃는 포인트를 남에게 전시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누군가를 놀리거나, 누가 넘어지거나, 무례했을 때 웃음이 나온다. 심한 말이나 욕을 해도, 때려도, 무례해도 웃기면 그저 만족이었다.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좀 더 심하게 가학적이고 무례해야 더 큰 웃음이 나온다. 그것들을 내 또래가 아닌 엄마 아빠 뻘인 분들과 함께 봐야 한다면? 생각만 해도 아득하다.
내가 취하는 것과 남에게 추천할 수 있는 것은 철저히 다른 문제였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은 불편해하고 불쾌해할 수 있다. 게다가 그 불편과 불쾌를 판단하는 기준마저 철저히 나에게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 잣대를 섣불리 남의 잣대에 들이대기도 조심스러웠다. 남에게 추천할 때 무언가를 판단하는 기준이 좀 더 높아지는 이유다. 좀 더 무난한 것, 둥글둥글한 것, 그러면서 너무 재미없지도 않을 것. 추천에는 교집합으로 걸러내야 할 조건들이 너무 많아졌다. 이런 조건을아주 촘촘한 체마냥 들이대니 살아남는 것이 없었다. 나는 ‘함께’와 너무 멀어져 있었다.
까다로운 ‘함께’ 렌즈를 장착하고 보니 ‘1박2일’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그 눈으로 보자 어른들에게까지 추천할 수있는 좋은 프로그램이었다. 요즘 다른 프로그램이 웃음을 유발하는 포인트인 억척스럽고 자극적인, 헐뜯는 것과는 확실히 거리가 있었다. 그래서 더 보편적인 웃음이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추천해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프로그램으로 살아남은 것이다. ‘1박2일’은 함께 본다는것을 잊고 살았던 내게 새로운 관점을 선물했다.
시대가 잊게한 단어들이 스친다. 넷플릭스와 유튜브의 등장으로 '황금 시간'이라는 단어는 멸종될 것이다. 다만 그 자리를 '황금 콘텐츠'라는 단어가 대체할지도 모르겠다. 혼자 보지 않고 다같이 볼 수 있는 콘텐츠, 모두가 불편하지 않은, 누군가에게 추천할 수 있는 콘텐츠의 교집합이다. 재미만을 좇다 누군가 상처주는 콘텐츠가 많아진 세상에서 떳떳하게 자리를 지키는 콘텐츠들이 든든해 보인다. 함께 볼 수 있는 콘텐츠가 갖는 가치를 오랜만에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