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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드 May 01. 2020

유튜브 마법

나는 좋아하는 것이 별로 없다. 내가 부정적인 성격이라서가 아니다. 좋아하는 것을 자주 찾지 못할 뿐이다. 내 취향은 조금 까다로운 것 같다. 대다수가 좋아하고 주류인 것은 싫어하지만 너무 마이너해서 아웃사이더처럼 보이는 것도 싫다. 주류와 비주류의 어느 사이이면서 조금 비주류처럼 보이길 원하기도 하면서 사실은 비주류에 가까운 주류인 것이다. 너무 복잡해서 나조차 이해가 어렵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사과한다. 친구들은 영원히 너혼자 살라고 했다.

좋아하는 것이 적다 보니 뭔가를 많이 사지도 않는다. 살만큼 마음에 드는 것이 없어서다. '구매' 자체가 괴로운 일이었다. 마음에 드는 것을 찾기까지 너무 오랜 길을 찾아 헤매야 했기 때문이다. 등산 초보자가 에베레스트를 등반하는 기분이랄까. 내게 소비는 아주 거대한 산이었다. 나는 강제 미니멀리스트가 됐다. 그러다보니 내 취향은 점점 소멸되어 점이됐다. 그나마 뭔가 선택해야 할 궁지에 몰린다면 내 기준을 외부로 돌렸다. 옷을 사러 가면 요즘 어떤 게 제일 잘 팔리냐고 물어보고, 온라인 쇼핑을 해도 상품평이 제일 많은 순으로 정렬해  장바구니에 넣곤 했다. 내 나이가 늘어날수록 선택지도 무한대로 무럭무럭 자라났다. 나는 점점 그것을 감당할 수 없었다. 내 자아는 '멜론 Top 100'에게 잠식당했다. '나'도 세상에서 없어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없어지지 않았다. 없어질뻔한 '나'의 구원자가 유튜브라면 김빠지는 일이려나. 우연히 관심가는 옷을 찾다가 한 유튜버의 영상을 보게 됐다. 그녀는 최근 구매한 아이템을 '하울'이라는 콘텐츠로 통째로 보여줬다. 보여주는 족족 마음에 들었다. 신기했다. 나는 내친김에 그녀의 지난 콘텐츠도 모두 살피기로 했다. 역시 마음에 드는 물건들이 많았다. 그리고 며칠 뒤 다시 유튜브에 접속했다. 첫 페이지에는 다른 콘텐츠가 추천됐다. 그 이름도 유명한 '큐레이션'이었다. 유튜브가 추천해준 그 콘텐츠 또한 내 취향에 정확히 들어맞았다. 그 이후로 나는 관심을 끊었던 옷에 다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반윤희 시절 이후로 처음이다. 유튜브는 이렇게 집나간 내 취향을 살찌우고 있다.

나는 몇년 만에 변하기 시작했다. 아니 잃어버렸던 나를 찾았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이겠다. 결과적으로 나는 내 선택에 좀 더 집중하게 됐다. 내가 선택한 모든 것들이 내 고유한 것이라는 생각에 내 선택에 굉장한 의미부여를 하고 있다. 남들이 봤을 때는 자아도취에 꼴불견일 수 있다. 하지만 내 기준으로 보면 긍정적인 싸인이다. 자존감이 높아졌다는 뜻이니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선택한 만족감이 내 취향에 대한 만족감으로 자라났다. 내가 선택한 것들로 나를 더 표현하고 싶어졌다. 무슨 일을 하든 내 취향과 색을 좀 더 담을 궁리를 한다. 인간마다 고유한 색이 있다고 한다면 내 색은 앞으로 더 진해질 것이다.

누군가는 유튜브의 큐레이션을 걱정하고 싫어한다. 필터버블로 자기만의 확증편향에 갇힌다는 비판이다. 하지만 아직은 필터버블과 확증편향을 걱정하는 것은 이른 시기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취향이 생겨나길 기다려야 할 시기가 아닐까. 너무 많은 것이 존재하고 또 쏟아지는 세계다. 쏟아지는 많은 것들 속에서 내 취향을 만들고 지켜내기가 너무 어렵다. 혼자 뭔가 아무리 찾아봐야 거기서 거기고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결국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내 것을 적극적으로 지킨다면 큐레이션의 시대에서라도 취향은 지킬 수 있다. 내 취향이 아닌 것을 걸러낼 의지만 있으면 된다. 건강한 큐레이션이다.

내 취향을 건강하게 자라나게 하는 유튜브가 고맙다. 내 시간을 좀먹는 것 뻬고는 아직 유튜브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진다. 시간을 빼앗기는 미움보단 만날 수 없던 사람을 만나게 해주는 즐거운 마음이 더 크다.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었던 나를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은 긍정적인 사람으로 바꾼 유튜브는 마법사다. 오늘도 누워서 유튜브를 몇시간 동안이나 뒤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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