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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드 Jun 02. 2021

[힙합과 동기부여] 누군가의 게토

회사가 게토다

 총도 마약도 없는 한국과 게토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래퍼 빈지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한국에 살고 있는 예술가로서 갈증이 너무 커요. 속박받으며 살아야 하고... 저를 구속하는 것들이 너어어어어어무 많아요." 이를 보고 힙합저널리스트 김봉현은 한국이 예술가 빈지노에게 게토나 다름없다고 했다. 그리고 한국의 젊은 이들에게 한국이란 총과 마약만 없을 뿐 게토나 다름없게 느껴질 수도 있다고 했다. 험악한 입시 시스템, 폭력적인 집단주의, 보수적인 서열 문화, 전쟁 같은 취업 등 한국의 젊은이들에게도 역경은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회사가 게토다. 회사에서 나를 구속하는 것들이 너어어어어어무 많다. 입사를 하고 나서 얼마 간은 충격의 연속이었다. 그 충격은 출근 시간부터 시작됐다. 통지받은 출근 시각은 정시였는데 보통 회사에 58, 59분에 도착하곤 했다. 얼마 뒤 팀장님으로부터 최소한 50분까지는 출근해 업무 준비를 하라는 말을 전해 들었다. 그 피드백을 받고 나서 50분에 오기 시작했다. 도착 이후 커피를 사러 다녀오면 9시 2분쯤 되었다. 그 이후에는 또 다른 피드백이 돌아왔다. 9시에는 자리에 앉아 근무를 시작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조직생활이라는 미명 하에 행동거지를 교정받기 시작했다.

 

 실제로 MZ세대에 대한 글 중 단골로 등장하는 사례가 출근 시간 사례다. 58, 59분에 등장하는 밀레니얼 세대에 대한 불만을 가지는 기성세대가 그만큼 많은 것이다. 9시에 업무를 시작한다는 것에 대한 해석이 다르기 때문이다. MZ세대는 9시에 자리에 앉으면 된다는 입장인 반면 기성세대는 10분 전에 도착해 미리 준비하고 9시부터 바로 업무에 돌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할 거면 차라리 입사 시에 출근시간 10분 전에 출근해서 준비를 하고 정각에 업무를 시작하라고 단체로 공지를 해줬으면 좋겠다.

 

 9시까지 출근하라는 말이 정말 9시까지 오라는 뜻이 아니라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을 때 꽤 충격적이었다. 정해진 룰을 지키며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룰을 어긴 사람이 된 것이다. 조직장(임원 혹은 팀장)의 가치관에 따라 만들어진 또 다른 룰까지 지켜야 하는 곳이 회사였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성실하지 않은 사람으로 낙인찍혔다. 누군가는 일찍 와서 미리 준비하는 것이 편할 수 있고 누군가는 아침 시간을 잠이나 새벽 운동 등으로 효율적으로 쓰는 것이 좋을 수 있다. 그러나 30분 일찍 와서 준비하기를 바라는 상사 밑에서 일한다면 출근 시간을 강제로 당겨야 했다.


 정해진 규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가치관이 다른 사람의 가치관에 나를 맞춰야 하는 점은 스트레스였다. 하물며 연인이나 가족 사이에서도 서로의 가치관에 맞추는 일이 주된 갈등이 된다. 친밀한 관계가 아닌 회사에서는 더 괴롭다. 특히 권력을 가진 사람의 생각과 기준에 나를 맞추는 일은 자유가 없다는 점에서 노예가 된 기분을 들기도 한다. 출근시간으로 대표되는 이런 장면들은 조직문화의 한 단면이다. 조직문화는 보통 조직장(임원 혹은 팀장)의 가치관에 의해 좌우되며 이것이 바로 '눈치'다. 이런 눈치게임이 하루 종일 이어진다는 점이 나를 더 괴롭고 짜증 나게 했다.



 

 퇴근 시간에 눈치싸움은 정점을 찍는다. 바람직한 퇴근 시간에 대한 기준은 조직별로 다르다. 상사가 퇴근해야 퇴근하는 직장이 있고 막내가 먼저 퇴근하는 직장이 있다. 물론 이렇게 하라고 법으로 정해놓지는 않았다. 정확한 시간이 아니라 조직에서 눈치껏 퇴근해야 하는 것이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도저히 예측할 수 없고 물어볼 수도 없는 다른 사람의 퇴근이 왜 내 퇴근 시간의 기준이 되어야 할까. 다른 사람이 기준이 되는 상황은 내 시간을 내가 주도적으로 쓰지 못하는 기분을 들게 한다.

 

 퇴근 시간은 직장에서 공정하지 않다고 느끼는 부분 중 하나다. 직급이 높은 사람의 시간은 소중하고 직급이 낮은 사람의 시간은 소중하지 않은 것일까. 퇴근 후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다 소중하며 존중받아야 할 시간이다. 나에게 퇴근 이후의 시간은 요가원에 갔다가 피부과를 갔다가 집안일을 하는 세 가지의 일이나 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다. 단지 30분, 20분, 10분이라도 할 일이 있을 수 있다. 직급별로 퇴근의 순서를 정해놓는 사람은 남의 시간을 존중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자신의 시간을 잘 쓰지 못하는 사람이 아닐까. 다른 사람의 퇴근을 기다리는 시간이 상대방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생각을 해봤을까. 물론 일이 남았다면 야근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퇴근 눈치 게임은 야근이 필요 없는 날에도 계속된다. 내일 해도 되는 일을 붙잡고 있어야 한다.


 또 이 모든 눈치 게임 현장에서 직접적으로 욕을 먹기보다는 안 좋은 인식으로 박히는 것이 더 미칠 노릇이다. 상사들은 알게 모르게 직원들의 출퇴근 시간을 마음에 새기고 있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나는 경력직 면접을 봤을 때 퇴근 시간이 보통 언제였는지, 야근에 부담을 갖는지 질문을 받았다. 다소 밀레니얼스러워 보이는 인상을 우려한 것이라 판단된다. 그런 질문을 하는 상사는 실제로 입사했을 때 야근을 하는 직원을 더 훌륭한 직원으로 봤다.


 이렇게 출근부터 퇴근까지 하루 종일 눈치를 보고 지적받는 일들이 많아지면 사회 초년생은 가치관에 혼란이 온다. 출퇴근 등의 생활적 측면뿐만 아니라 당연히 업무에서도 상사나 동료의 스타일에 따라 교정할 것을 요구받는다. 그래서 모든 업무와 언행과 행동에 자기 검열을 시작하지만 그 또한 기성세대의 눈높이에는 맞지 않는다. 욕은 계속 먹는다. 삼성을 퇴사하고 연기자가 됐다는 배우 진기주는 "회사 다닐 때 가장 많이 했던 말"이라는 질문에는 "네"와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출퇴근할 때 표정이 점점 안 좋아졌었던 것 같다고 했다. 이는 진기주뿐만이 아닐 것이다. 선배도 그랬고 나도 그랬고 후배도 그랬다. 이런 일들 때문에 초롱초롱했던 신입사원들이 입사 3년 차 이상이 되면 동태눈이 되는 것이 아닐까.

 

 동태눈의 이유는 여태까지 자신이 가져온 삶의 방식을 타의에 의해 송두리째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시간과 규율에 대한 눈치를 하루 종일 보다 보면 '뭐가 중한지' 주객전도 된다. 업무 목표를 달성하려고 노력하기보다 상사의 눈에 거슬리지 않거나 잘 보이려는 노력을 나도 모르게 하게 된다. 이는 특히 평생 치열해야만 했던 MZ세대에게 더 괴롭다. 목표를 이루기 위한 스펙을 쌓으려 스케줄과 포트폴리오로 자신의 하루 및 일주일, 일 년, 대학 내내 촘촘히 짠 스케줄대로 움직여야만 하지 않았는가. 매 순간 '나의 목표'를 위해 움직였던 MZ세대가 '남의 눈치'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이 되는 것은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다.

 

 또한 눈치 문화는 무엇이든 협의나 공정을 통해 의사결정해 온 MZ세대에게 익숙하지 않은 문화다. 회사에서는 직급에 의한 서열이 있고 이에 따라 상사의 기준에 맞춰야 하는 탑-다운 문화가 기본이다. 그러나 MZ는 자라면서 탑-다운식의 의사결정은 해본 경험이 거의 없다. 태어나보니 민주적인 사회였으며 또래 관계에서도 누구 한 명이 독단적으로 결정한다면 왕따를 당하기 쉬웠다. 콩 한쪽도 가위바위보로 공정하게 먹고 자란 세대다. 이런 민주적인 문화에서 탑-다운 식의 회사 문화는 천지개벽에 가까운 변화다. 그것도 안 좋은 쪽으로의 변화니 받아들이기 힘들다.



 

 지금까지 길게도 징징거린다고 생각하셨다면 맞다. A4로 하면 세 장이나 된다. 박찬호급의 TMT(투머치 톡커)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이렇게도 구구절절 괴롭다고 외치고 있지만 누군가는 아직도 내 의견에 동의하지 못할 것이다. 총성이 오가는 흑인 게토에 비하는 것을 어불성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내 역경이 대단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며 누군가의 것보다 심하다고 자랑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런 눈치 문화가 나에게는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며 그것이 나에게 고통이라는 사실이다. 다른 사람이 인정하지 않더라도 나에게는 눈치를 보는 것이 고통이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MZ세대가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아닌 당신에게는 내가 상상도 못 할 것들이 역경이 될 수 있다. 대입을 목표로 하는 10대에게 한국은 게토다. 학교가 끝나면 학원을 가고 독서실을 가고 주말에도 학원과 독서실로 빼곡한 삶을 산다. 요즘은 입학사정관제를 준비하느라 동아리, 논문 등 더 난리다. 그리고 이렇게 고등학교 입시 전쟁이 끝나면 취업 전쟁이 2차 대전으로 기다리고 있다. 요즘 대학생들을 1학년 때부터 취업 준비에 돌입한다고 한다. MT에 가서 추억을 만들기보다 공모전, 인턴, 창업을 스펙으로 쌓는다. 동아리는 스펙과 관련된 것을 제외하고는 인기가 없다. 취업을 위한 이력서를 기본 100개를 쓰고 AI 면접을 본다. AI 면접관에 자기소개를 하고 묻는 질문에 대답을 하면 멘사 회원도 어려워하는 AI 역량 측정 게임을 한다. 이런 삶을 살며 멘탈이 나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2020년 OECD 국가별 통계자료에 따르면 한국인의 우울증 유병률은 36.8%로 조사 대상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자살률 또한 1위다. 험악한 입시 시스템, 전쟁 같은 취업, 그리고 회사에서의 눈치 문화가 일조하지 않았을까. 내가 회사를 게토로 느끼는 것처럼 누군가는 한국을 게토로 느끼고 있다. 당사자가 괴로우면 고통이다. 역경이다. 어떤 역경도 폄하되어서는 안 된다. 역경은 누군가에게 각자 다른 얼굴로 항상 곁에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가야 하므로 나아가기 위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게토를 벗어나려는 의지가 삶을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이것이 리더십에서 영향력으로 발휘될 여지다. 힙합은 그 역경에서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방법론이 될 수 있다. 힙합에는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지만 우리는 힙합에서 좋은 것을 취하면 된다. 힙합의 좋은 태도는 각자의 삶에서 역경을 극복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올라가자는 것이다. 힙합은 게토에서 흑인의 삶을 좋은 방향으로 이끈 강력한 도구로서 기능했다. 이 건설적인 태도를 내 삶에 적용하는 게 중요하다.



Slumdawg illionaire (The Quiett & Dok2)


[Verse 1: Dok2]

나의 출신은 옥상 컨테이너 박스

오백 원짜리 하나 없는 곳에서 밥

한 끼 제대로 챙겨 먹지를 못하고 살던 내가

이제는 뷔페 아님 뭐? Outback steak house


[Verse 2: The Quiett]

Hey kids, 이거 하나만은 알아둬

누구나 해낼 수 있지, 방식은 달라도

사람들은 내가 할 수 없을 거라 믿었지

지금 니 눈앞을 봐, 내가 leader지

나의 외침은 rapsolute magic

Rhyme을 적은 백지는 수표가 됐지

I'm a selfmade, Slumdawg Illionaire

바닥에서부터 성공을 이뤄냈지

하지만 이건 또 하나의 시작일 뿐

난 보나 마나 또 해내겠지

기쁜 맘으로 받아들여, 이 새로운 시댈

또 새로운 미랠, 두 최고들을 위해

건배를 준비해, yeah, Illionaire way

이것은 highway라기보다 air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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