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이직 최종면접에서 떨어졌다. 탈락자의 머릿속은 한동안 탈락 이유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찬다. 나도 그랬다. 왜 떨어졌는지 곱씹게 됐다. 떨어진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한 이유는 면접 과정에서 들었던 이 말에 있을 것이라 예상해 본다.
주드님 이력서를 보면 인재원에서도 있었고 글로벌 회사도 다녔고 안 해본 프로젝트가 없어요. 그런데 (면접에서 이야기를 나눠보니) 체계적으로 일한 것 같지는 않네요. 혼자서 주먹구구식으로 한 것 같아요. 우리 회사는 최고의 회사라서 우리가 하는 것은 언제나 최고여야 하는데 어떻게 최고 수준으로 할 수 있을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솔직히 말하자면 '주먹구구식'은 면접관 입에서 나온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요즘 면접관들은 자신을 회사의 얼굴이라고 생각하고 교육도 철저하게 받기 때문에 이런 무례한 표현을 쓰지 않는다. 그 말을 들었을 당시의 내 삐딱함이 반영된 기억의 결과물임을 고백한다. 하지만 내게 좋지 않은 뉘앙스로 각인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나치게 삐딱하게 받아들인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내가 여태까지 일한 방식을 부정당한 느낌이었다. 주먹구구라는 뉘앙스로 치부당한 일들은 나름대로는 열악한 여건 속의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해 해낸 일들이었다. 면접관이 관심을 보였던 굵직한 프로젝트들은 모두 내가 해본 적 없는 새로운 프로젝트였던 데다가 사수나 부사수없이 홀로 고군분투하며 진행했던 일들이다. 인터넷에 나와 있는 사례와 아웃풋을 쥐 잡듯 뒤져 이와 비슷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과정들을 고안해 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낸 지난한 과정이었다.
나는 나의 방식을 표현하기 위해 고안이라는 단어를 택했다. 많은 단어 중 굳이 이 단어를 콕찝은 이유가 있다. 남이 만들어놓은 방법을 따라가기보다는 나만의 방식으로 문제해결의 방법을 조합해 냈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혼자 헤쳐나갔기 때문에 나름의 자부심도 있었다. 프로세스는 분명 여러 명이서 체계적으로 해낸 것보다는 정교하지는 못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비교적 빠른 시간 내에 문제를 해결했으며 컨설팅업체에 돈 한 푼 들이지 않았다. 결과물 또한 내부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내부에서 원하는 아웃풋을 원하는 수준으로 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물론 내가 다른 업무를 하더라도 내가 했던 방식으로 할 가능성이 높다. 단, 혼자서 한다는 조건 하에서다. 다른 팀원과 시너지를 내면 달라질 수 있다. 어쨌든 면접관은 이런 나의 방식이 가져올 아웃풋을 믿지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 일할 때에 다른 방식으로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아직까지도 면접관의 관점에 동의하지 못한다. 공신력 있는 이론이나 프로세스를 따르지 않았다고 최고 수준의 아웃풋을 낼 수 없다고 단정 지을 수 있는 것일까?
그럼에도 나는 이 면접에 떨어진 이후 업무 방식에 변화를 줄 수밖에 없었다. 나만의 방식을 찾아가는 대신 면접에서 말할 때 공신력이 있어 보이는 방법론을 먼저 찾아보고 있다. 이렇게 창의적이고 주도적으로 일하려고 하는 회사원 1이 틀에 박힌 부속품으로 전락하게 돼버렸다. 이런 방식은 마음에 안 들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도 안다. 면접은 내가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면접관을 설득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면접관을 설득하기 위해 다른 사람이 납득할만한 프로세스대로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웃프다. 면접은 철저히 갑에 있는 사람을 위한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것에 통감하며 또 다른 면접을 준비해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