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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드 Sep 15. 2023

후배에게 유머 취향을 커밍아웃하다

우디 앨런 유머에 중독된 지 오래입니다.


점심시간이었다. 점심을 먹으며 후배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 최근에 봤던 콘텐츠 등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용기를 내 최근 웃기다고 생각해 저장한 것을 회사 후배들에게 보여줬다. 보여준 것은 어제 본 우디 앨런 인터뷰 기사 중 그의 대답이었다. 보여준 뒤 약간의 정적이 흘렀다. ‘아,, 주드님 이런 코드시구나,,,,’ 탄식만이 빈 공기를 채울 뿐이었다. 후배들과 거리가 멀어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사실 그들이 웃지 않을 것을 예상했다. 예감이 들어 맞아 슬펐다. ‘나는 웃기다고 생각하지만 대부분은 좋아하지 않을 농담, 아니 싫어할 가능성이 높겠지,,’ 자조하며 저장했던 문장이었다. 후배들에게 보여준 문장을 그대로 적어본다. 내가 아는 가장 웃긴 농담도 아니고 피식할 정도의 농담이라 진짜 내가 재미있게 생각했던 농담을 찾아 바꿔치기할까도 생각했지만 리얼리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격이기에 보여준 농담을 정직하게 그대로 옮겨본다.


Q. 나이가 드는 것에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습니까?

A. 저는 그것이 형편없는 일이라고 깨닫습니다. 나이가 드는 것은 아무 이점도 없습니다. 더 똑똑해지지도 않고, 더 현명해지지도 않고, 더 원숙해지지도 않고, 더 친절해지지도 않고, 좋은 일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등이 더 아프고, 소화불량에 더 많이 걸리고, 시야는 예전만큼 좋지 않고, 보청기가 필요합니다. 나이가 드는 것은 나쁜 일이고, 그것을 피할 수 있다면 나이가 들지 말라고 충고할 것입니다. 그것은 낭만적인 특성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 우디 앨런 인터뷰 중


이게 웃기다는 것에 동의 못하는 것을 인정한다. ‘재미는커녕 이게 재미를 논할 수 있는 문장인가 싶으면서도 한편으로 이런 끔찍한 말을 재미있다고 말하다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 같다. 나는 이 인터뷰가 솔직하고 정확해서 웃겼다. 나이듦에 대해 긍정적으로 포장하지 않고 현실을 직면하며 꼬집는 것이 유머러스하게 느껴졌다. 다만 나이가 진짜 많은 사람들이 보면 상처를 받을 수도 있는 내용일 것 같다. 내 나이가 엄청 많지도 엄청 적지도 않은 나이라 상처받지 않고 웃겼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무엇보다 정확한 것은 저 인터뷰가 나이듦에 대한 내 입장에 가깝다는 것이다. 나는 나이 드는 것에 마냥 기쁘지가 않다. 이런 관점은 보통 사람들과 거리감이 늘어가게 하는 요소가 분명하다고 자기 객관화를 해본다. 이상 슬픈 자기 객관화 과정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좋은 점도 있지만 분명 안 좋은 점도 있다. 그러나 세상은 늘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한다. 아니, 오히려 나이듦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을 부정적으로 본다. 이 점이 늘 거슬렸다. 물론 나이 들면서 좋은 점도 많다. 나와 세상을 좀 더 알게 돼서 실수가 줄어든다든가.. 등이다. 하지만 안 좋은 점도 많지 않나 싶은 거다. 정신승리를 강요받는 대신 균형을 잡고 현 상태에서 최선의 살길을 모색하자는 게 내 입장이다. 그렇다. 나는 냉소적, 염세적에 가까운 인간이다. 이런 성향의 사람에게 우디 앨런의 유머는 최고다.


우디 앨런


우디 앨런은 미국의 영화감독이다. 그는 1935년 생으로 올해 88살이다. 1966년 처음 영화를 만들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80편 정도의 영화를 만들었다. 그는 주로 보통 사람은 15분 이상 버티지 못할 보기 어려운 영화를 만든다. 독립적이고 예술적인 영화를 만들기에 영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만 알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만든 영화의 수가 절대적으로 엄청나니 대중적으로 대박이 난 영화도 있는데 <미드나잇 인 파리>가 바로 그 영화다. 오래된 영화지만 <애니 홀>(1977년 작)도 아카데미 상을 휩쓸 정도로 대중성과 예술성을 모두 갖췄다. 우디 앨런은 매년 1~2개씩의 영화를 만드는 허슬러이지만 최근에는 미투 논란으로 잠잠한 상태다. 사생활은 할 말이 없다.


영화감독을 하기 전에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이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농담(조크)을 써서 신문에 기고했다. 그리고 본인의 농담을 다른 사람에게 팔기도 했다고 한다. 그만큼 재미있는 농담을 썼던 것 같다. 그 농담의 주제는 보통 중산층, 지식인의 위선과 허영, 이중성을 비꼬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그는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는데 그래서 지식인과 예술인, 자본가 등 중산층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이들이 남에게 더 잘 보이기 위해 행하는 거짓, 겉과 속이 다른 모습들, 돈에 가려서 진짜 중요한 게 뭔지 모르는 행동 등을 우스꽝스러운 장면으로 표현하곤 한다. 90 평생을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 소나무다.


영화 <애니 홀>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주인공 앨비 싱어(우디 앨런 분)는 여자친구와 영화를 예매하려고 줄을 서있다. 바로 뒤에 만난지 얼마 되지 않은 남녀가 있다. 남자는 여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핫미디어와 쿨미디어에 대해 신나게 얘기하고 있었다. 줄 간격이 너무 가깝기에 주인공 앨비 싱어는 이 사람의 이야기가 너무 잘 들리고 맨스플레인이기에 아니꼬왔나 보다. 작가이자 감독 우디 앨런은 이를 비꼬는 주인공을 비꼬기 위해 그 남자가 미디어 전공 교수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 장면을 넣는다. 그리고 이 모두를 비꼬는 듯이 갑자기 미디어 이론의 창시자 마셜 맥루한을 직접 출연시킨다. 몇 번을 꼬는지 모르겠다. 종잡을 수 없는 전개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이런 게 재미있다.   

대학 교수역 배우, 주인공 앨비 싱어, 찐 전문가 마셜 맥루한


우디 앨런은 좁게는 중산층을 다루지만 근본적으로 인간의 본성에 천착했다. 인간의 깊은 내면과 삶을 성찰하게 하는 화두를 50년 내내 지속적으로 던진다. 정신분석 상담의를 3명이나 두었다는 그는 평생을 정신분석 상담을 받는 것 같다. 인간의 근원을 누구보다도 깊이 알고 싶어 하는 방증일 테다. 덕분에 그의 유머는 얕지 않고 매우 통찰력있다. 그는 인간과 현실의 안 좋은 점, 어쩌면 개선이 필요한 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지만 그것들은 폐부를 찌르듯 일리 있기에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을 펼쳐내는 방식이 피식 웃음이 나오는 방식이기에 미워할 수가 없다. 그는 생각할 거리와 웃음을 함께 주는 지적인 예술가가 맞다. 이는 내 관심사와 상당 부분 일치하며 유머 코드도 정확하게 내 취향이다. 게다가 유머 코드에 맞는 아티스트를 만나게 되면 그 근본에는 우디 앨런이 있다.(노아 바움백, 그레타 거윅, 유병재 등) 그가 있어 감사하다.


우디 앨런을 좋아하는 사람은 다크한 유머를 좋아할 것이다. 냉소적이고 염세적인 성향일 가능성이 높다. 사실 나와 친하지 않으면 내가 염세적이라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모를 것 같다.(아닌가?ㅎㅎ,,) 나는 냉소주의자 중 가장 긍정적인 인간인 것 같다. 녹록지 않은 세상이지만 내가 노력하면 조금이라도 내 삶이 나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그만큼 많이 배우려고, 읽으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매일을 변화하려고 누구보다 노력하는 사람이 나다. 늘 지금의 고통을 타개하길 바라고 노력하면 그렇게 될 것이라 믿는다. 이런 게 긍정 아닌가? 과정이 어떻든 결론이 긍정적이면 상관없는 것 아닌가? 그래서 무겁고 어두운 현실을 가벼운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우디 앨런식 유머를 제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I feel that life is divided into the horrible and the miserable. That's the two categories. The horrible are like, I don't know, terminal cases, you know, and blind people, crippled. I don't know how they get through life. It's amazing to me. And the miserable is everyone else. So you should be thankful that you're miserable, because that's very lucky, to be miserable.”

인생은 끔찍한 것과 비참한 것으로 나뉜다고 생각해. 극단적인 케이스겠지만 끔찍한 것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야. 나는 그들이 어떻게 삶을 살아가는지 모를 정도야. 놀라워. 비참한 것은 그 외 모든 사람들이야. 그래서 너는 비참한 것에 감사해야 돼. 매우 운이 좋은 일이기 때문이야.

-영화 <애니 홀> 중 주인공 엘비 싱어(우디 앨런) 대사
위의 대사가 나오는 영화 <애니 홀>의 한 장면





우디 앨런식의 유머는 지적이고 복잡한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1차원적이고 슬랩스틱적인 것도 많다. 병맛이다. 그런 것도 내 스타일이다. 그는 커리어를 코미디언으로 시작했기에 그의 초기작에는 코미디언으로서의 정체성이 듬뿍 담긴 작품이 많다.


특히 사실상 첫 연출작인 <돈을 갖고 튀어라>(1969년 작)을 보면서 병맛 같은 연출이 마음에 들었다. 주인공 버질은 일생 전체를 범죄로 채우는 범죄자다. 영화에서는 버질의 부모님을 찾아가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해 묻는다. 그런데 부끄럽다고 눈코입을 가려준다. 눈코입을 가리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텐데 아래 사진처럼 우스꽝스러운 털이 붙은 안경을 씌워 놓았다. 유치하지만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폰 이모지 디자이너도 우디앨런의 팬인가?    



감옥에 수감 중인 주인공 버질의 감옥 탈출기도 웃기다. 동료(?) 수감자들과 협업을 하기로 했는데 간수들의 속옷을 훔치라는 미션을 받는다. 그가 세탁실에 근무하기 때문이다. 그는 그의 몸에 입는 방법으로 훔치기로 결심하는데 속옷을 입는 장면 다음이 어이없다. 너무 많이 입어서 왜소한 그의 몸이 슈퍼맨 마냥 벌크업 되어 있다. 1차원적이고 유치한 것을 인정한다. 그런데 웃기다. 나는 유치한 것도 좋아한다...  




나의 유머 코드에 대해 이렇게 불필요하게 골똘히 생각하던 중 후배에게 메신저가 왔다. 본인의 유머코드는 이런 것이라며 url을 보냈다. 그녀의 유머코드가 무엇인지 알 수는 있었지만 그에 온전히 공감할 수는 없었다. 결국 우리는 서로의 유머 코드에 공감하지 못했다. 이대로 슬픈 결말인가. 아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아니었다. 서로에 대해 조금 더 알게는 된 것 같다. 8살이라는 나이차 때문인지, 직급 차이 탓인지 메신저 한번 보낸 적 없던 그녀가 이런 메신저를 보낸 것을 보면 내가 좀 더 편해진 것 같기도 하다. 어렵지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았기에 편해진 것 아닐까. 유머코드는 사람을 이해하는 데 좋은 도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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