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기종목은 결국, 구력이다.

10개월 차 풋린이의 깨달음

by 에너지은

풋살을 시작한 지 어느덧 10개월이 되어간다.

아직도 “풋살 좀 해요”라고 말하기엔 입이 간질간질하고 양심이 먼저 반응하지만,
그래도 딱 하나만큼은 확실해졌다.

'구기종목은 재능이 아니라 시간이라는 거'
아무리 운동신경이 좋아도, 공 앞에서 쌓인 시간은 절대 이길 수 없다.


남편이 이 말을 할 때는 처음엔 믿지 않았다.
왜냐면 나는 나름 헬스로 다져진 체력도 있었고, 운동을 이해한다고 착각하는 머리도 있었고,
무엇보다 ‘성실함’이라는 만능 카드도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훈련도 빠지지 않고 나갔다. 지각도 안 했다.

또 남들 쉴 때 같이 안 쉬고 연습을 더 했다.
그러니까 당연히 '금방 늘겠지'라고 믿었던 것 같다.


처음 훈련장에 섰을 때의 나는 공보다 콘이 더 무서웠다.

멀뚱히 서 있는 그 주황색 콘들이 왜 거기 있는지 모르겠고,
감독님이 “다음 동작!”이라고 외칠 때마다 머리는 하얘지고 심장은 쓸데없이 열심히 뛰었다.

패스 하나, 스텝 하나가 보기엔 참 단순한데!(초등학생 저학년인 우리 아들도 할 정도로...)
내 머리와 몸은 그 단순함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왜 이렇게 쉬운 걸 못하지?’라는 자책만 쌓여 갔다.

점점 훈련을 하러 간 건지 자존감 테스트를 받으러 간 건지 헷갈렸다.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르다. 아주 조금!

이제야 보이는 것들이 생겼다.
'아, 이 동작은 이 상황을 대비한 거구나.'
'이 콘은 그냥 세워둔 게 아니었구나.'(그동안 괜히 원망해서 미안했다.)

몸이 느리게나마 말을 듣기 시작했다.

예전 같으면 훈련 전부터 속이 울렁거리고 괜히 긴장했을 텐데,
이제는 그래도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들어간다.

눈에 띄게 못하진 않는 그 어중간한 경계선까지는 온 것 같다.


하지만 문제는 늘 그다음 바로 게임이다.

훈련과 게임은 정말로 다른 세계다. 훈련 때는 그럭저럭 말을 듣던 발이 게임만 시작하면

갑자기 남의 발이 된다. 패스는 늘 반 박자 늦고, 골 앞에서는 다 차려진 밥상도 엎어버린다.

특히 처음 온 회원들이 훈련 중인 나를 보며 “와, 지은님 잘하시나 보다”라는 눈빛을 보내다가
경기에서 내 헛발질을 보는 순간, 그 실망이 얼굴에 그대로 떠오를 때.

그 순간이 아직도 꽤나 민망하다.

그러다 가끔, 나보다 나이도 많고 체력도 훨씬 없어 보이는 분들과 같은 팀으로 게임을 뛸 때가 있다.

속으로 ‘괜찮을까…?’ 생각이 들다가도, 공이 돌기 시작하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

그분들은 뛰지 않아도, 공을 오래 끌지 않아도, 이미 다음 장면을 알고 있다.

공이 오기 전에 자리를 잡고, 무리하지 않고, 한 번에 정리한다.

나는 죽어라 따라가는데 정신 차리고 보면 이미 한 수 앞에 가 있다.

그때마다 든다. '이게 구력이라는 거구나!' 시간으로 쌓인 감각.


그래서 요즘 나는 답을 조금 바꿨다.

잘하려고 애쓰기보다, 계속 게임에 들어가 보기.
무서워도 부딪혀 보고, 실수해도 빠지지 않기.

헛발질을 해도, 욕을 먹어도, 민망해도 그 장면들이 결국은 내 구력이 될 거라고 믿기로 했다.

언젠가는 나도 공 앞에서 허둥대지 않고,

다 차려진 밥상 앞에 숟가락만 얹을 수 있는 날이 오겠지.

그날이 언제일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하다.

구기종목은 결국, 시간을 배신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도 또 나간다. 민망함을 한 움큼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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