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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품위있는 그녀 Jun 21. 2024

표면 뒤에 숨겨진 본질

글과 사람이 가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아침잠이 많다.

아니 아침잠이라기 보단 잠이 많다.

또 일상루틴에서 벗어나는 걸 싫어한다.

그러다가도 한 번씩 안 하던 행동을 불쑥한다.

어제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잠들기 전 다음날 목욕탕에 가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나의 예기치 못한 행동에 익숙해진 남편은

내일, 그것도 새벽에 목욕탕에 갈 거라고 비장하게 말하는 나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다녀오라고 대답했다.


나는 목욕탕을 싫어한다.

하지만 나의 어머니는

'집에서 씻는 건 씻는 거고 일주일에 1번은 때를 밀어야 한다'는 이상한 논리를 주장했고,

어릴 때부터 엄마손에 억지로 이끌려 다녔다.

목욕탕이 너무 싫은 나머지 중학교 2학년때는 가기 싫다고 엄마에게 화를 냈고,

네 마음대로 할 거면 집을 나가라는 엄마의 말에

반나절 가출 아닌 가출을 했으니

내가 목욕탕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이해하겠는가?

내 이런 도발은 씨알도 안 먹혔다.

집을 나와 종일 도서관 근처를 배회하다 배가 고파 저녁쯤 집에 들어가니

엄마는 목욕탕 가방을 건네주며 빨리 깨끗이 씻고 오라고 했다.

결국 난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그날 저녁 혼자 탕에서 때를 밀고 있으니 엄마가 사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들어와

내 등을 밀어주고 홀연히 사라진 게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지금도 환갑이 지난 나의 어머니는 일주일에 한 번씩 빼놓지 않고 때를 밀으러 목욕탕에 간다.

생각해 보면

탕에 가면 2-3시간은 기본으로 있는 우리 집여자들(할머니, 엄마, 여동생)과는 다르게

가기 싫다고 매번 징징거리는 내가 엄마눈엔 유별나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강제 목욕탕행은 내가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대학을 가고 난 뒤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다시는 가지 않겠다는 내 마음과는 달리

내 몸은 목욕탕에 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어릴 때부터 주기적으로 때를 밀어서 인지

계절이 바뀌면 팔과 다리에 하얗게 각질이 올라왔다.

아침저녁으로 샤워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

결국 버티다 버티다 일 년에 1-2번 혼자 때를 밀으러 다녀왔고,

오늘이 바로 그 d-day였다.


이왕 가야 하는 거면 아무도 없는 이른 시간

새로 받은 깨끗한 물에 씻고 싶었다.

잠들기 전 7시 10분 알람을 5시로 바꿔놓고,

알람소리에 맞춰 일어났다.

전날 준비해 둔 목욕바구니를 달랑달랑 들고

10분가량 운전해서 도착하니

내 계획대로 첫 손님으로 입장할 수 있었다.

탕에 들어가기 전 세신 대기표에 내 라커룸번호를 적었다.(때까지 내 손으로 미는 건 힘들다.)

번호를 적은 지 1분도 채 안되어

탈의 중인 내 앞에 위풍당당하게 세신사분이 나타났다.

다~ 벗고 있는데도 당당한 그녀의 포스에 나도 모르게 기가 죽었다.

때를 밀고 싶으면 탕에 들어가서 30분간 몸을 불려야 한다고,

6시에 부를 거라는 말을 남기고 이모님은 사라졌다.

세신사 이모님의 부름을 기다리며 탕에 들어가 얼굴만 내밀고 앉아 있으니

손님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딸과 엄마.

얼굴이 똑 닮은 자매로 보이는 할머니 두 분.

나보고 부지런도 하다며(오늘만 이래요...) 엄지 척을 하신 우리 엄마나이로 보이는 아주머니.

그 아주머니는 광대와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인상은 돈으로도 살 수 없다던데, 살아오면서 삶을 대하는 태도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문득 맞은편 거울에 탕에 들어가 얼굴만 내밀고 있는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30대 중후반으로 보였다.

피곤에 찌들었는지 다크 서클이 볼까지 내려왔고

그녀의 표정은 방금 전 본 아주머니에 비해 어두웠다.

이 여자는 지금까지 어떤 방식으로 삶을 살아온 걸까?

이런 생각도 잠시

쌩얼은 내가 아니라며 애써 거울에 비친 그 여자를 외면했다.


6시가 되자 정확하게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내 때를 밀다 놀랄 것 같은 이모님에게

"오랜만에 미는 거라 때가 많이 나올 거예요~"라고 미리 선전포고를 했더니

"오랜만에 밀었어도 때가 많이 나오는 건 안되는데? 때는 잡혀야 하는데?

내가 좀 잡아줄게"라고 자신만만한 답이 돌아왔다.

제발 좀 잡아서 앞으로는 목욕탕에 오는일 없게 해 주세요.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베드에 누웠다.

170cm인 나보다 20cm는 작아 보이고, 20kg는 덜 나가 보이는

왜소한 그녀의 몸에서 나오는 힘은 어마어마했다.

오늘 기필코 내 때를 잡겠다는 그녀의 불타는 의지도 한몫했다.

40분을 몸을 맡기고

겨우 피가 나지 않을 정도로 구석구석 때를 민 후에 그녀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앞으로는 오기 전에 나한테 미리 연락해. 몇 번 더 밀면 잡을 것 같아"

"저기 탕 입구에 내 번호 적어뒀으니 핸드폰에 저장하고"라고 이모님은 말하였다.

나는 공손하게 "네"라고 대답한 후 연락처를 저장하지 않았다.

결국 내 때는 오늘 잡히지 못했다.

때를 잡는 데 성공하진 못했지만

새벽부터 부지런히 움직여서인지, 묵은 각질을 제거해서 인지

한결 가벼운 느낌이 들었다.



오후엔 기분 좋은 마음에 목요일 문예창작수업에 참여했다.

수업 중 참고작품으로 윤오영작가의 '양잠설'을 수강생들 다 같이 읽어보았다.

"그 사람 아직 글 때를 못 벗은 것 같아" 오령기를 못 채웠다는 말이다.

라는 문장이 나왔다.

새벽부터 목욕탕에서 때를 밀고 왔더니

'때'라는 단어가 반가웠다.

그 '때'와 이 '때'가 엄연히 다른데도 말이다.

윤오영 작가의 때는

글은 잘 짜여 있지만 어디선가 잘난척하고 감추려 하는 저자의 욕구(허영심)를 의미한다.

나 역시도 솔직하고 싶어 글을 쓰면서도

부족한 부분은 들킬까봐 감추기에 급급하고

잘 보이고 싶어, 필요도 없는 말을 덧칠해 가며 나를 드러낸다.

그러다 보면 본질은 잃어버리고 글이 산으로 갈 때가 종종 있다.



문득 새벽의 목욕탕이 생각났다.

좋은 옷과 액세서리로 나를 덧칠하는데 익숙해져

그것들이 없으니 저절로 움츠러들었던 내 어깨.

그런 것 없이도 당당했던 세신사 이모님.

화장기 없는 얼굴에도 환했던, 나에게 엄지 척을 날린 아주머니.

그리고 탕 거울에 비친 내 모습.


가끔 온갖 휘황찬란한 단어들이 들어간 글을 읽을 때가 있다.

아무리 멋진 말로 문장을 완성시켰어도

독자는 작가의 진실 혹은 거짓을 단번에 알아차린다.

글이 가지고 있는 본질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 자체도 글과 같지 않을까?

나라는 본질은 그대로인데

그걸 감추고 잘 보이려 온갖 액세서리로 꾸민다 한들

결국 타인은 그걸 알아본다는 걸

나만 모르고 사는 것 같다.







                                                                                이미지출처 : Image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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