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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품위있는 그녀 Jun 14. 2024

인생은 대추생강청이 아닐까요?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구요.

'김'은 코찔찔이 유치원 시절부터 알고 지낸 나의 단짝이다.

그런 그녀가 이번주에 결혼을 한다.

김의 청첩장을 받기 위해 며칠 전

중학교동창 김, 이 1, 이 2 그리고 내가 모였다.

김이 결혼하면서 이제 우리는 유부녀 완전체가 되었다.

하지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

만나면 중. 고등학생 때로 돌아간 것처럼 여전히 수다스럽다.

기껏해야 1년에 1-2번 만나는 게 다일까?

가끔씩 만나는데도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억지로 나를 포장하지도, 마음에 없는 소릴하지 않아도 된다.

사람에게 상처받고 스트레스 잘 받는 연두부멘탈인 나에겐

만나면 에너지를 얻고 오는 이 친구들이 너무 좋다.


아무튼 중. 고등학교 때부터 수다쟁이 었던 우리넷은

매일 보는 사이에도 이야기가 끊이질 않았다.

수업 끝나고 쉬는 시간엔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껴가며

다 같이 모여 수다를 떨었다.

그것도 모자라 주말엔 아침부터 김의 집에 모였다.

타지에서 장사를 하시는 부모님을 둔 김은 남동생과 자취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김의 집은 우리들의 아지트였다.

완전체가 모이면 김은 마치 행사의 개막식을 알리는 것처럼

mp3에 다운로드한 음악을 크게 틀었다.

여름엔 냉동실에 얼린 별맛도 없는 각얼음을 각자 입에 오물오물 물며 이야기해도 행복했다.

추운 겨울엔 전기장판 위에 담요를 덮고 함께 했다.

수다를 떨다 보면 4~5시간이 금방 지나갔는데

점심은 주로 김이 라면을 끓여주거나 김치볶음밥을 해주었다.

출출하면 각자 천 원씩 모아 호두과자 같은 간식을 사서 먹었다.

하루도 안 빠지고 모이는 우리 넷을 본 김의 동생은

누나들은 무슨 할 얘기가 그렇게도 많아 컴퓨터도 없는 우리 집에 오냐고

정말 궁금하다는 듯이 묻곤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

각자 핸드폰도 들여다보지 않고

뭐가 그렇게 할 말이 많았는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수능을 목표로 한 고등학교 3년이라는 긴 터널을

큰 사고 없이(물론 잦은 접촉사고는 있었지만) 지나올 수 있었던 건

아마 이들과 했던 시답지 않은 이야기들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마치 경우의 수를 실생활에 적용이라도 하듯

나-김, 나-이 1, 나-이 2, 이-김, 이-이 1 등등

상대를 달리하며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언제 그랬냐는 듯 풀기도 금방 풀었다.

20살 크리스마스이브에는 밥을 먹다 싸워

두 명 두 명이 따로 앉아 영화를 본 적도 있었고,

강릉에 놀러 가서는 내가 몇 시간 동안 삐졌다가

이1의 남자친구가 사준 피자와 회 덕분에 금세 풀리기도 했다.


그러다 취업을 하고 인간관계에 스트레스를 받고 나서부터

가끔은 이 친구들과 만나는 게 신경이 쓰였다.

이번엔 누구랑 어떻게 싸울까라는 생각 때문에 걱정이 앞섰다.

왜 우린 다른 모임과 다르게 하루도 안 빠지고 싸우는 걸까?

성인인데 삐지고 싸우고 상처 주고,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을 핑계로 모임에 빠진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계속 만났다. (지나고 나니 이들은 다 눈치채고 있었단다.)

그렇게 20년을 싸우고 화해하고 또 아무 일 없다는 듯 웃고 떠들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도 다퉜다.


싸울 만큼 싸워서인가?

아니면 나이를 먹어서인가?

요즘은 이들과 모이면 예전처럼 큰 다툼은 없다.

만나기 전 긴장되었던 마음도 사라졌다.

서로 어떤 포인트에서 마음이 상하는지(삐지는지) 잘 알고 있다.

가끔 상처받을락 말락? 할 때도 있지만 이젠 그냥 그 친구가 귀엽게만 느껴진다.

이렇게 되기까지 2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이제야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때가 된 것 같다.


어젯밤

8살 난 아들이 무서운 꿈을 꿨다며 내방 침대 안으로 들어왔다.

오랜만에 아이를 품에 안고 기분 좋게 같이 잠이 들었다.

아이와 떨어져서 잔다는 건

불과 6개월 전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들과 나는 한 몸이었다.

엄마 껌딱지인 아들은 잠에 들 때면 나를 애착인형처럼 꼭 끌어안고 잤다.

심지어 베개도 같이 베고 잘 때도 있었다.

3-4살까지는 아직 아기니까, 수면분리가 되지 않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유치원에 들어가서도 아이는 그대로였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잠들어서 깬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건지

사람이 잠을 제대로 못 자면 어디까지 예민하고 난폭해지는지

아이를 키우며 실감했다.

돌도 안된 아가들도 혼자 잠에 잘 들고 잔다던데

왜 우리 아들은 엄마, 아빠 옆에만 붙어서 자는지 스트레스가 밀려왔다.

그러던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자기 방에서 혼자 잠에 든다.

너무도 잘 자고 있는 아이를 보면

수면분리 때문에 스트레스받던 때가 있었나?라는 생각이 든다.

문득 3-4시간도 못 자고 출근하는 현실에 지쳐

혼자 못 자는 아이에게 짜증을 냈던 게 생각나 미안한 마음이 밀려왔다.

같이 잘 때 좀 더 기분 좋게 안아줄걸이라는 후회도 됐다.

아이마다 다 자기만의 속도와 시기가 있는데

왜 그렇게 조급하게 아이를 다그쳤나 싶다.


모든 일은 다 적당한 속도와 시기가 있는 것 같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을

타인도 나에게 맞춰 가길 원하는 것만큼

의미 없는 행동이 어디 있을까 싶다.


갑자기 더워진 날씨에

어젯밤 창문을 열고 잤더니 몸이 으슬으슬하다.

냉장고에서 작년겨울에 담근 대추생강청을 꺼냈다.

담근지 며칠 안되었을때 조급한 마음에 먹으려 꺼냈다

니맛도 내맛도 아닌 맛에

누가 볼새라 냉장고 구석에 숨겨두었던게 문득 기억났다.

여기에 들어가는 대추와 생강도 농부가 때에 맞춰 심고

때에 맞춰 거두어들였겠지...

음식을 보고 철학적인 생각을 하는

감상에 젖은 내 모습에 닭살이 돋았다.

아무튼 때에 맞춰 잘 숙성된

대추생강청으로 만든 대추생강차는 맛있었다.





                                                                                이미지출처 : Image from Pixabay

                                                                                그림 : 품위있는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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