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품위있는 그녀 Jan 22. 2024

내가 나를 먼저 포기하지 않는다면

힘들 때 다 놓고 싶어지는 내 마음 중심 잡기

사막에서도 저를 버리지 않는 풀들이 있고

모든 것이 불타버린 숲에서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믿는 나무가 있다.

화산재에 덮이고 용암에 녹은 산기슭에도

살아서 재를 털며 돌아오는 벌레와 짐승이 있다.

내가 나를 버리면 거기 아무도 없지만

내가 나를 먼저 포기하지 않으면

어느 곳에서나 함께 있는 것들이 있다.

돌무더기에 덮여 메말라버린 골짜기에

다시 물이 고이고 물줄기를 만들어 흘러간다.

내가 나를 먼저 포기하지 않는다면...


                                     도종환  <폐허 이후>


내가 나를 먼저 포기하지 않는다면...

발령으로 인해 평일마다 짐을 싸서 5살 난 아이와 함께

왕복 4시간을 운전해 가며 2년을 보냈었다.

처음 아이를 데리고 내가 근무하는 지역으로 가게 되었을 때는

도시와는 다른 풍부한 자연환경과,

임용준비다 새직장 적응이다 뭐다 하며 소홀해진 아이와의 시간을 앞으로 알차게

보낼 수 있는 거라는 기쁨과 자신감으로 차 있었다.


1년쯤 지났을까...?

사람만한 짐을 매주 싸고 풀고를 반복하고

혼자 일과 육아를 반복하다 보니

처음의 기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게다가 시댁문제로 인해 주말에만 만나는 남편과의 티격태격하는 부부사이는

내가 왜 이선택을 했을까?라는 후회만 커졌다.


점점 내 일상의 중심을 잃어 갔던 것 같다.

그 좋아하던 카페는 어느샌가 귀찮아지고

의욕적으로 시작했던 캘리와 그림 그리기는 손도대기 싫었다.

하지 않다 보니 더 하기 싫었다.

일과 육아 이 두 가지만 하기에도 벅찼기 때문이다.

주변에서는

"아이랑 시골에서 알콩달콩 살게 되니 얼마나 좋은 추억이야~? 부럽다~"

"지나고 나면 다 추억이야. 크면 엄마랑 안 지내려고 해" 등등 이런 식으로 이야기했지만

너무 힘들고 지쳤던 그때의 나는

긍정의 그 말들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고통 아닌 고통이 언제 끝날까? 그 고민만 했던 것 같다.

나의 마음과 다르게 월요일마다 새벽에 일어나 외딴곳으로 가는데도 해맑은 아이를 보며, 죄책감도 커져갔다.

그런데 다 놓고 싶은 나의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없었다.

엄마이니까…

그리고 난 교사이니까…


2년 후 집 근처의 출퇴근가능한 학교로 발령을 받게 되어

흔히 말하는 나의 독박 육아는 끝이 나게 되었다.

이제 일에 더 집중하고, 퇴근 후에는 문화생활도 해야지라고 생각했으나

2년 동안 지친 내 몸과 마음은

언제 회복될지 몰랐다.


그러다 친정엄마가 서재 정리를 했다며

내가 결혼하기 전에 읽던 책들을 우리 집으로 가져다주셨다.

그때 엄마의 책들 몇 권이 같이 섞여서 나에게 왔는데

김혜남 작가님의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그 책에 기재된 <폐허 이후>라는 시를 읽고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그동안 내가 나를 놓아버렸었구나...

나를 힘들게 했던 건 상황도, 남편도, 아이도, 직장도 아닌 바로 나였다.

포기가 아닌 내가 나를 믿었었더라면

나의 삶은 이렇게 힘들지 않았을 텐데...


시는 어려운 거라 생각했는데

너무 마음에 들어 태어나서 처음으로 시를 필사했다.

그리고 가끔

힘이 들 때 다이어리에 적힌 그 시를 보며 힘을 받곤 한다.

내가 나를 먼저 포기하지는 말자!라고^^














                                      캘리그라피 : 품위있는그녀

작가의 이전글 잘하고 싶어서,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