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어느 월급날의 잔고, 그 이상의 회고
올해로 5년 차 직장인이 되었다. 전문가라고 하기엔 한참 모자라지만 어딜 들어가도 뭐든 조금씩은 알아들으며 노트북을 두들길 수 있는 연차. 거래처를 만나면 뇌를 거치지 않고도 입에서 말이 자판기처럼 나오고, 부쩍 낯빛이 어두워진 동료에겐 귀여운 이모티콘을 날려주는 5년 차. 하지만 '이렇게 버티면 저렇게 되는 걸까?' 싶은 롤 모델도 딱히 없고, 몸담은 업계에 미친듯한 열정도 부족해 늘 무기력한 갈증을 느끼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시간은 잘도 가고 월급날도 어김없이 돌아왔다. 카드회사가 내 수입을 알아채기 전까지 찰나의 소소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날이다.
다들 하고 싶은 걸 찾아 퇴사를 하는 게 유행이다. 퇴사가 유행이라니 기성세대는 천지개벽이라 노하실 일이지만, 멀리 갈 것도 없이 SNS만 켜 봐도 다양한 포맷의 퇴사일기가 넘쳐나며 다들 어쩜 저리 평안해들 보이는지 모른다. 모든 직장인에게 마치 신기루같은 해쉬태그 #퇴사. 심지어 퇴사 인구들은 다들 연애도 한다. '애인의 응원 덕에 용감하게 퇴사하고 제 삶을 찾았죠. 그리고 우리는 한낮의 예쁜 카페에서 함께 오손도손 하하호호' 류의 괴담에 가까운 퇴사 무용담을 엿보고 있노라면, 나는 오늘 나온 일곱 자리 숫자의 월급으로 이 허탈함을 버텨내자 하는 생각뿐인 것이다.
나는 자주 일기를 쓴다. 내 방 책꽂이에는 1학년 5반 어린이의 소울 없는 숙제 제출용 일기부터 시험기간만 되면 섬찟한 기운을 내뿜는 여고생의 만년다이어리까지 여러 권이 꽂혀 있다. 갑자기 넓어진 경험의 폭을 주체할 수 없어 생각만 많아졌던 스무 살 무렵부터는 그 해 연도가 커버에 박힌 위클리 다이어리를 해마다 한 권씩 써내려 갔다. 얼마 전 대학 때 썼던 일기를 봤는데 놀랍게도 지금 일하는 업계와 지금 받는 연봉을 거의 비슷하게 쓰고선 "나의 꿈"이라고 적어 두었더라. '꿈'이라는 한 글자에 별표를 세 개나 달아 두고서. 나도 모르게 나는 꿈을 이룬 사람이었던 것일까.
작년 어느 날, 일주일에 두어 번 정도는 서로의 크고 작은 이슈들을 나누고 종종 매크로처럼 '일하기 싫다'는 알림이 울리는 동기 모임 톡방에서 한 친구가 물었다.
일하기 싫다... 얘들아, 너희는 장래희망이 뭐야?
유치원부터 초등학생까지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한의사가 될 거예요' 따위의 어른들 듣기 흐뭇한 꿈을 읊어댔던 것 같다. 중학생의 장래 희망은 좋아하는 가수와 결혼하는 것('OO 마누라'같은 거칠디 거친 워딩의...)이었고, 고등학생 땐 절실한 마음으로 어느 대학 어느 과 새내기를 꿈꿨다. 스무 살엔 모델처럼 마르고 세련된 여자들을 '워너비'로 삼았었는데, 스물 아홉살에 장래 희망을 물어보니 뭐라고 탁 튀어나오지가 않더라.
친구는 일하기 싫었던 그 회사에서 퇴사해 지금 사장님이 되었다. 오래 좋아했던 패션 분야에 대한 열정과 사회 경험을 살려 창업을 시도한 것이다. 개업 축하 파티를 했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안정을 찾아가는 것 같은 친구를 보면 부럽고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막상 만나면 힘들어 죽겠으니 어서 소주나 뿌시자고 할 것이 뻔하지만 말이다.
내가 바라는 미래의 나를 천천히 그려 본다. 운전을 멋지게 잘했으면 좋겠고(차도 한 대 있으면 참 좋겠고) 월세 자취방보다 조금 더 편안한 나만의 공간도 마련하고 싶다. 그리고 두 가지 이상의 일을 해내는 N잡러였으면 좋겠다. 모르는 사람이 내 SNS를 검색하는 일이 많아지도록, 조금은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직업의 귀천을 나누는 것은 혐오하지만 안타깝게도 기업은 냉혹한 지표와 그에 따른 순위가 존재한다. 나는 이직에 성공한 케이스다. 많이 울고 노력하고 고생해서 지금 여기에 있다. 오늘 월급을 받아 낸 이곳에서 더 이상의 의미를 찾지 못해 무기력해지더라도, 조금 더 버티면 '이 회사에 다니는 나'라는 페르소나는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나 이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페르소나와 어둠의 거래를 하지 않았을까? S대생이 된 나야, 아무리 전공이 안 맞아도 조금만 버텨보자. 부모님을 실망시킬 순 없잖니? 의사가 된 나야, 환자를 보는 것이 죽기보다 두렵지만 별 수 있겠니? 저녁에 술 마시고 잊어버리자.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래서 월급날인 오늘은, 페르소나가 아니라 진짜 나를 들여다보려고 한다. '이 회사에 다니는 나'와의 타협보다 '아니 내가 여길 다니는데도 이렇게 불만과 고민이 많다고? 이거 문제인데?'라는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다.
아무튼 이번 달도 나의 노동의 가치는 오늘의 입금으로 무사히 증명되었다.
하지만 월급이 나의 장래희망도 만들어 줄 수 있을까? 서른의 나에게도 스스로 일구어 낼 꿈이 필요하다. 내가 만족할 만큼 빛나고 가치 있고 아름다운 무언가는 반드시 있고 그건 여기에 없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오늘은 거기까지만. 그 정도로만 생각을 확장하면 조금은 덜 괴롭게 잠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 2019.02. 합정동 카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