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카카오 길 TF 모더레이터 참여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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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이 가장 가고 싶은 기업 1위,
총수의 재산 국내 2위,
시가 총액 3위.
그러나 정작 재직 중인 누군가에게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든 회사.
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의 갭이 점점 커져가는 듯했습니다.
저 역시도 제가 3년 넘게 다닌 회사에 대한 여러가지 의문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누구도 시원하게 답을 주지 못했죠.
이것도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서로 다른 모습의 우리는
각자에게 더 나은 환경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시작은 '가혹하다'는 수식어가 붙은 동료평가 이슈였지만,
사실은 초고속 성장을 하는 동안 기업문화와 구성원을 돌아볼 여유가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요.
카카오는 저의 두 번째 회사였으며,
제가 살면서 경험한 가장 큰 조직이었습니다.
저는 어디서든 제 목소리를 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성격입니다.
그렇지만 회사에서는 더 이상 쉽지 않았어요.
대화가 힘들었지만 제가 노력해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아, 뉴스에서 말하던, 선배들이 말하던,
"대기업의 부품"이 이런 걸 말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 때쯤,
작은 부품이 되어버린 내 이야기를 할 기회가 온 것 같았습니다.
월요병은 어쩔 수 없이 누구에게나 찾아오고,
몇 번쯤은 출근이 두려울 수 있죠.
하지만 이러한 갭이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면
2021년 카카오의 길 TF는 시작되지 않았을 겁니다.
대외 이미지에 좋지 않은 기사가 연달아 터지고,
직원들의 불만이 여기저기서 들리던 어수선한 분위기 끝에
인사실과 함께하는 인사 평가,보상 회의체인 길 TF에 참여할 비 인사업무 크루를 찾는 전사 공지가 올라옵니다.
그렇게 TF에 함께하게 된 인원은 최종 10명이었습니다. (2021년 기준 카카오 전 직원은 약 3000명)
남성 7명, 여성 3명의 성비에 연차와 직군, 직급이 다양하게 구성된 새로운 형태의 TF였어요.
매주 1회, 1시간 이상의 화상 회의를 통해
회사의 평가, 보상, 복지 등의 어젠다를 놓고 충분히 토론했습니다. 서로 다른 의견에는 조심스럽게 이유를 묻고, 같은 의견에는 격하게 공감했습니다.
저는 법인 합병 경험자(멜론➡️카카오), 미혼 여성, 마케터의 페르소나를 가지고 회의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만큼은 대기업에서 하나쯤 잊혀져도 모를 직원이 아니었습니다. 업무 번아웃에 지쳐있던 제가 회복되는 느낌이 들었고, 어떤 의견을 내도 지지받고 존중받을 수 있었습니다.
내 옆자리 동료와도 못 나눈 솔직한 이야기를 길 TF에서는 할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안전한 자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회의 자리에는 인사실의 실무 담당자와 조직장이 직접 참석해 공유 가능한 범위에서 답변을 주거나 피드백을 구했으며, 회의록은 속기에 가까울 정도로 상세하게 작성되어 전사에 공유되었습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런 의견도 있었죠.
길 TF 회의는 답정너다.
회의록을 일부러 길게 쓴다.
화상회의 현장을 생중계해야 한다.
저는 이런 토론을 너무 하고 싶어서 TF에 참여했고
소수 인원이 모인 안전한 상황에서 진짜 불만을 정중하게 제기할 수 있었습니다.
애초에 공개 자원을 받았으니 폐쇄적이라 할 수 없겠고요.
결론이 어찌 되었던, 답정너 분위기였다면 토론 자체가 불가능했겠죠.
회의록은 모두가 돌아가며 길게 말했으니 길게 쓰이는 것이었고요.
불만을 이야기할 자리에 스스로 나갈 기회는 흔치 않습니다.
때로는 좁혀지지 않는 긴 논의에 지치기도 했지만
고민 끝에 선택한 TF 활동에 후회는 없었습니다.
주변에서는 제가 길 TF에 자원한 것에 놀라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사서 고생한다며 비웃는 듯한 반응도 적지 않았죠.
저는 카카오 크류유니언(노조)의 회원도 아니었고요.
조용하게 할 일만 하는 줄 알았던 제가
회사 평가보상제도에 대한 장문의 의견을 남기고 열정적으로 마라톤 회의에 참여하는 모습이
누군가에게는 낯설었겠지만,
저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답니다.
궁금한 건 못참고, 부당한 건 더 못참고,
비합리적인 것들은 고치고 싶은 사람이었어요.
그렇게 큰 조직에서 잃어버렸던 제 모습을 점점 찾아가고 있었어요.
길 TF에 모인 분들은 사실 누구보다 회사와 일에 애정이 많은 동료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에너지를 가진 분들과 함께한 경험은 오래가겠지요.
또 HR 업무 담당자들을 가까이서 보고 소통한 것이 처음이라
많은 고충을 알게 되고 생각해볼 지점이 많아지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길 TF 모더레이터로 활동한 6개월은
대한민국 대기업에서도 연차, 직군, 직급에 상관없이
수평적인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시간이었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2022년, 저는 이미 카카오를 퇴사하고
사이드 프로젝트로 해 오던 일잘러의 마음챙김 프로젝트(멘탈 스타일리스트)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7년간 쌓아온 마케터 커리어를 잠깐 홀딩하고
조금 더 제가 진심과 열정을 찾을 수 있는 일을 만들어 보고 있는데요.
카카오 길 TF에서 경험한 시간들이 많은 영향을 받았는지, 시간이 꽤 흐른 요즘도 자주 생각나서 이렇게 글을 남겨 봅니다.
어쩌면 저의 다음 커리어는 HR 담당자가 되어
조직 내에서 동료들의 마음챙김을 위해 일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요즘은 저만의 속도로, 너무 조급하지 않게
제가 정말 잘 할 수 있는일, 하고 싶은 일을 찾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의 회사 생활은 어떤가요?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한 기업문화인지,
구성원의 일하는 마음도 케어해주는지 궁금하네요.
앞으로 한국 기업의 경쟁력은 이 2가지 항목을 얼마나 만족시키는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AI로 절대 대체할 수 없는, 진심으로 회사를 존중하는 직원과 함께하고 싶다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