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든단단 /스타트업에서 대기업까지 - 한국 회사원으로 살아남기
7년차 마케터. 스타트업에서 대기업 계열사를 거쳐 대기업에 입성해 부모님이 동네방네 자랑했던 사람.
지금은 직접 창직한 ‘멘탈 스타일리스트’ 라는 타이틀로 소개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멘탈은 약하거나 강해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에 맞게 스타일링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이직에 성공한 꿀팁보다는
어떤 상황에서든 스스로를 지키는 힘에 대해 깨달은 지난 7년간의 이야기에 가깝습니다.
대표님(친척 아저씨 아님/1편 참고)은 직원들에게 자율성과 기회를 주고 싶어 하는 분이었어요. VC 투자금을 마케팅 예산으로 운용할 수 있어서 기업 규모에 비해 큰 볼륨의 디지털 마케팅 프로젝트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전까지는 동료들과 온라인 강의로 배운 퍼포먼스 마케팅 스킬을 드문 드문 적용 하다가, 전문 대행사 담당자님들과 협업해보니 시야가 확 트이는 느낌이었어요. 특히 데일리 리포트를 받아 분석하는 일이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대행사에 맡기고 저는 다른 일을 우선으로 할 수도 있었지만, 생각처럼 그렇게 멀티가 잘 안 되더라고요. 대행사 담당자님 입장에서는 참 귀찮은 인하우스였겠죠? 덕분에 성장했으니 그분들이 저의 회사 밖 사수였던 것 같아요.
또 어느 날은 대표님께서 덜컥 부산국제영화제 IP 마켓의 부스를 구매하시고는 “다녀오면 된다"(?)고 하셨어요. 스타트업에서는 ‘이것도… 내가 하나?'라고 생각이 든다면 거의 90% 확률로 YES! 죠. 저는 초보 수준의 일러스트 실력으로 부스 디자인과 홍보물까지 다 제작하게 됩니다. 우리 플랫폼의 인기 웹소설 10편의 소개서를 한, 중, 영어로 번역해 자료를 만들고, 현장에서 작품에 대해 어떤 질문이 들어올까 걱정하며 틈나는 대로 웹소설을 모두 읽었어요. 3일 동안 마켓 부스에서 영화사 관계자, 모 방송국의 드라마 PD, 중국과 베트남의 엔터테인먼트 관계자, 웹툰 스튜디오 등 다양한 분들을 만나 막힘없이 작품에 대해 설명할 수 있어 재미있고 보람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사실 그때는 이 모든 것들을 기회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돌이켜보니 당시 2년차였던 제가 정말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네요.
“이것도... 제가 해요..?”라는 생각이 들 때 TIP
- 못 할 게 뭔가? 일이 많아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 대신 일을 많이 했다면 티를 제대로 내자. 성실하고 고생하는 동료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다.
- 받은 만큼만 일하자는 말에는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받은 만큼만 성장할 수는 없다.
상암동 사무실에서 광역버스를 타고 대표님과 판교로 미팅 가던 날이 떠오릅니다. 저는 버스 멀미를 엄청 하는데요. 그래도 대표님이 옆에 계신데 불편한 티를 낼 순 없어서 꾹 참고 있었는데 대표님이 제게 물어보셨어요.
“아라 씨는 5년 후에 뭐하고 싶냐?”
“저요? 저 대학원 갈 거예요.”
“그래. 우리 회사에서 열심히 하면 대학원도 보내 주고 그렇게 해야지.”
5년이 훌쩍 지났지만 공부보다 일이 더 재밌었는지 제 가방끈은 학사에서 멈춰 있고, 지금 이런 글을 쓰고 있네요. 아무튼 그렇게 대학원을 보내주신다던 대표님은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일찍 대표직을 내려놓으시고, 계열사 임원 분이 취임해 오시게 됩니다. 새 대표님은 마케팅 예산 집행을 대폭 줄이고 다양한 시도를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스타트업 마케터에게 예산은 애증의 존재입니다. ‘저흰 예산 없어서 그런 거 못해요!’라고 하고 싶지만 어쩐지 무능력해 보일까 봐 일단 속으로 삼키고 구글에 ‘오가닉 마케팅’을 검색하게 되죠...
저도 고민이 많아졌습니다. 대표님이 바뀌면서 사내 조직 개편이 있었고, 저는 기획마케팅셀의 셀장으로 발령 나게 되었어요. 당시 회사에서 가지고 있던 팔로워 10만 명짜리 페이스북 페이지가 하나 있었는데, 영화사나 출판사에서 바터 이벤트가 쏠쏠하게 들어오는 채널이었습니다. 광고비를 더 태워서 페이지를 키워 보고 싶었는데, 예산이 막혀 불가능했죠. 갑자기 오기가 생겨서 그럼 이걸로 한번 돈을 벌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어 유료 광고 게시물 제안서를 처음 만들어 봤습니다. 덕분에(?) SNS를 활용한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 깊이 연구하고 고민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아무튼 셀장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걸 승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그냥 보고만 더 자주 하게 된 것 같은데요.. 우리 셀은 디자이너 2명, 운영 담당자 2명, 마케터인 저까지 총 5명이었습니다. 예산 0원에 이 멤버 구성으로 어떤 기획과 마케팅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얼레벌레 셀장. 우리가 가진 최고의(유일한) 무기는 셀원들의 개성이니, 각자의 특기를 살리는 일을 맡기고 싶었어요. 사이드 프로젝트로 웹툰을 하시는 일러스트 능력자 y님은 전자책 홍보 만화를 제작하기로 하고, 중국어 능통자 c님은 기존 페북 계정의 웨이보 버전 계정을 신설했습니다. 촌철살인 말솜씨로 동료들을 감탄시키던 h님은 20대 공감 N행시 콘텐츠를 기획해 SNS에서 많은 좋아요를 받기도 했고요.
+) 여기서 잠깐, 그의 주옥같은 작품을 소개합니다.
#연차 연:락하지마세요 차:단할꺼야
#자소서 자:수할게 /소:설썼다 /서:류붙을까?
짧은 시간에 결과물이 잘 나왔습니다. 서로 평소에 충분한 대화를 통해 어떤 걸 좋아하고 잘하는지 알았기에 할 수 있는 일들이었어요. 주어진 KPI가 있고 명확한 OKR을 거치는 팀이라면 더없이 이상적이겠지만, 이렇게 굴러갈 수 없는 상황도 분명히 많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도 ‘도대체 린하게, 스마트하게, 애자일하게 일하는 게 뭘까? 그렇게 일하는 다른 회사 부럽다…’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아래 팁을 꼭 참고해보세요.
“와 여긴 정말 체계가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 TIP
- 체계가 잘 잡혀 있다는 것은 곧 자율성의 부재를 뜻하기도. 주어진 자율성을 최대한 누리자.
- 자율성을 발휘해 전통적인 관례나 불필요한 보고, 문서작성 없이도 일이 잘 되는 경험을 한다면? 다시는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축하한다. 당신은 이제 더 스마트해질 날만 남았다.
- 체계 없는 스타트업의 꽃은 결국 사람. 옆자리 동료가 곧 내 재산이다. 공유하고 교류하며 돕자. 서로가 서로의 레퍼런스가 되어 주자.
스타트업에서 대기업까지 - 한국 회사원으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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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에는 첫 이직 준비와 성공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예정입니다! 이 글의 제목을 줄여서 '어디든단단'이라고 불러 보려고요. 어디든단단 1편을 링크드인과 커리어리를 통해 많은 분들께서 재밌게 읽어 주셔서 신기하고 감사해요. 열심히 써 보겠습니다.
[다음편 예고]
- 콜드 메일의 힘 : 면접인 듯 면접 아닌, 면접 같은
- 내 자리는 반드시 있다
- 나를 채용한 사수가 퇴사했다: 야근길만 걷게 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