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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민재 Oct 16. 2023

프랑스 자수 1 (ft. 수채화)

취미를 찾는 중입니다

프랑스 자수 준비물


오늘은 프랑스 자수 수업이 있는 첫날입니다. 언제나 그렇듯 새로운 것을 배우러 새로운 공간에 가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가슴 설레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살짝 부담되기도 합니다.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수업이 있는 센터를 향해서 걸었습니다.



시간에 맞춰 도착해 보니 기존에 수강생분들과 새로운 수강생으로 나뉘어 앉아 있습니다. 모두 여성분들입니다. 미리 주문해 둔 재료세트와 본뜰 그림을 주섬주섬 받아서 자리에 앉았습니다. 각 도구에 대해서 설명을 듣는데 열펜(열이 닿으면 선이 없어짐)과 수성펜(물이 닿으면 선이 없어짐)이 신기합니다. 실의 색을 숫자로 구분하기에 실패에 실의 색번호를 적어서 관리합니다. 사소한 것이지만 왠지 전에는 전혀 모르던 어떤 세계에서만 통용되던 비밀 하나를 알게 된 것 같아 뿌듯한 기분이 듭니다.



워밍업이랄 것도 없이 바로 시작합니다. 비치는 종이를 바탕그림 위에 올리고 네임펜으로 따라 그립니다. 그리고 다시 제일 아래에 수를 놓은 천을 놓고 그 위에 먹지, 그 위에 그림이 그려진 투명한 종이를 올린 후 그림을 따라 그려서 천에 그림자국이 남도록 합니다. 생각보다 쉽지가 않습니다. 꾹꾹 눌러서 그린다고 그렸는데 먹지를 치우고 보니 아무런 흔적이 남아있질 않습니다.



선생님이 시범을 다시 보여주신 후 다시 먹지위에 놓인 비치는 종이를 여러 번 꾹꾹 눌러 천에 그림을 새겨봅니다. 살짝 등에 땀이 나는 것도 같습니다. 그렇게 겨우 흐릿하게 나온 밑그림 위에 열펜으로 다시 선명하게 그림을 그려 넣어봅니다. 이제는 제법 그림의 형체를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진이 빠지는 기분이 듭니다.



다음 순서는 실을 뽑아서 바늘에 끼우는 것입니다. 분명 선생님은 돋보기까지 쓰시는 분이신데 단번에 실 3가닥이 작은 바늘구멍에 들어가 꽂힙니다. 사실 처음 보는 제 눈에는 실구멍이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당황한 신입회원들은 이게 가능할 일인지를 연신 물어보며 실패를 거듭하다가 겨우 겨우 집어넣습니다. 이때부터인 것 같습니다. 과연 이 취미가 나에게 맞는 취미인지 살짝 의문이 들기 시작합니다. 바늘구멍에 실을 집어넣는 것부터가 이렇게 어려운 일 일 줄은 미처 생각을 못했습니다. 그저 예쁜 꽃그림, 나비 그림, 동물 그림 등을 원하는 색으로 채우고 알맞게 배치하여 개성 있는 무언가를 만든다는 기쁨에 취해 있었다고나 할까요.



바늘구멍에 실이 끼워진 후 실이 빠지지 않도록 끝에 매듭짓는 법을 배웠습니다. 오른손으로 바늘과 살을 고정한 상태로 왼손에 들린 실로 다섯 번씩 바늘을 휘감고 아래로 내려서 매듭을 만드는 방식입니다. 굉장히 전문적으로 보이는 방식이었지만 평소에 쓰던 바늘과 실이 아니기에 대여섯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서 겨우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가 가장 큰 고비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머리와 손가락이 따로 노는 듯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머리로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 대충 알겠는데 가느다란 실과 바늘을 쥔 제 열 손가락들은 어쩔 줄을 몰라하며 제멋대로 뻗쳐 나가기 일 쑤였습니다.



다행이라면 함께한 세 명의 신입회원들이 누구랄 것 없이 모두 사이좋게 헤매고 있었기에 민망함이 덜했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서로의 부족함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기에 너그러이 감싸주고 도와줄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자그마하고 둥그런 수틀에 바탕그림을 그린 넨천을 고정시키고 바느질을 시작했습니다. 오늘 배운 것은 '플라이리프'와 '스트레이트'라는 자수기법입니다. 꽃잎을 이 두 가지의 방식으로 채워 넣는 것이 오늘의 과제이자 다음 시간까지의 미션입니다. 선생님의 시범을 보고 따라 해보지만 결과로 나온 모양은 같을 리가 없습니다. 왜 다른지에 대해서 신입회원끼리 의논해 보지만 결국 의문만 남고 선생님의 간단한 설명으로 해결이 됩니다. 반복해서 수를 놓아보면서 적당한 간격과 선에 대한 자기만의 감을 익혀가는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기술이 부족함과는 별개로 꽃잎의 면을 색실로 한 땀 한 땀 채워가는 재미가 있습니다. 뾰족한 바늘 끝이 천에 닿아서 뚫고 들어갔다가 다시 원하는 지점으로 뚫고 나오도록 하는 과정에서 평소보다 더 섬세한 집중력을 발휘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현재에 집중하고 몰입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마치 캐주얼한 명상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바늘과 실과 나. 이 셋만 존재하는 순간에 잠시 머물렀다가 돌아오는.



집으로 돌아와 다음 시간에 다시 수업에 참석하고 싶은지 제 마음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취미이기 때문에 가능한 선택의 자유입니다. 의외로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보다 난관이 꽤 있었지만 그래도 약속된 3개월은 일단 채워보고 싶었습니다. 지난달에 첫 수업에 참석해 본 후 수강철회를 했던 수채화 수업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수채화 수업과 프랑스 자수 수업의 공통점은 제가 보기에 아름답고 표현해보고 싶은 대상을  표현해 볼 수 있다는 기쁨이 있다는 점입니다. 둘 다 도구를 사용해야 하고 본격적인 실행 전에 기본기를 익히는 것이 필요합니다. 일주일에 2시간 혹은 3시간 정도의 시간을 배정하여 규칙적으로 하나의 작품을 완성해 나간다는 과정도 비슷합니다.



다른 점은 한 달간 연필과 지우개로 선긋기를 매주 3시간씩 해야 했던 수채화 수업과 달리 프랑스 자수 수업에서는 소박하게나마 모자란 기술로 무언가를 만들어 낼 기회를 빨리 준다는 점이었습니다. 또 도구가 필요하긴 하지만 수채화에서 필요로 하는 물감이나 붓, 종이 등의 재료가 가지는 가격의 상한선은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반면 프랑스 자수의 경우 크게 고가의 장비가 필요하지는 않을 것 같은 편안함이 있었습니다. 결과물에 있어서 크게 개인차가 많이 나지는 않아 보이는 점도 마음이 편했고 결과물이 실생활에 활용가능한 소품이라는 점도 매력이 있었습니다.  



좀 더 장기적인 시각으로 기본기를 쌓아나가는 것을 선호하는 경우는 수채화.

짧은 기간 안에 결과물을 보고 싶고 실용성에 대한 선호가 높을 경우 프랑스 자수.



나중에는 달라질 수 있겠지만, 지금 현재 시점의 저에게는 수채화보다 프랑스 자수가 더 매력적인 취미로 다가온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혹시 둘 중에 어떤 것을 취미로 시도해 볼지 고민 중인 분이 계시다면  참고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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