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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민재 Apr 05. 2018

성장은 나를 기꺼이 받아들임에서 시작된다

나를 고치려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받아들임


성장은 나를 고치려는 것이 아닌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태도에서 시작 된다

     

성장은 내 삶에서 지속적으로 추구해오던 중요한 가치이다.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부단히도 애를 써왔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좋은 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했고 공동체에도 기여하고자 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은 내게 공부하라는 말씀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내 기억에도 없다. 그렇지만 나는 여러 가지 현실적인 이유들을 포함해서 어제보다는 나은 내가 되고 싶었기에 공부를 스스로 찾아서 했던 것 같다. 어제는 몰랐던 새로운 것들을 오늘 알게 되는 것이 기뻤고 그렇게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즐거움 자체가 내 삶에 큰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그런 태도는 나의 생활 전반에 스며들어 내게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어제보다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은 아름다운 것이다. 그 마음이 있기에 한 사람이 변화하고 성장하며 그 에너지가 모여서 세상이 더 나아질 수 있는 것이다. 그 마음은 나와 세상에게 아주 소중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 마음이 문제가 되는 순간이 찾아왔다. 사실 그 이전부터도 문제가 되고 있었는데 그걸 잘 알아차리지 못하고 감춰진 채로 시간이 흘러왔던 것을 나중에 알았다.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은 나에게는 내가 기대하는 이상적인 모습의 내가 있다. 그 모습에 대한 기대가 너무나 강력해서 그리고 너무 오랜 시간동안 나와 함께 해왔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가 나인지 그 기대하는 모습의 내가 나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마음으로부터 기대하는 모습의 나이기를 너무나 강하게 바래왔기 때문에 그게 나라고 믿고 살기 시작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야 알고 있었겠지만 모른척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다  원래의 나는 점점 그 존재자체가 희미해져가고 있었다.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내 모습과 비교해 점점 더 초라하고 한심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바라는 내 모습에 대한 열망이 강해질수록 그냥 생긴 그대로의 나는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해 어쩔 줄을 모르게 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소외된 나는 가끔씩 공허함, 외로움 등으로 나를 찾아왔다. 바쁘고 정신없이 일을 하는 와중에 한 번씩 나타나기도 하고 떠들썩하게 친구들과 모여서 수다를 떨고 돌아온 집에서 나타나기도 했다. 그렇게 많은 일과 타인과의 관계들로 한쪽에 버려져서 위축되고 초라해진 나를 외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골절된 발가락을 시작으로 예상치 못한 신체적, 정신적 충격들이 겹겹이 일어나자 몸과 마음이 모두 만신창이가 되었다. 몸무게는 10kg가까이 빠졌고 밥먹고 잠자는 것도 제대로 할 수가 없는 지경이 되었다. 온 몸에 힘이 쭉 빠지고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고 식은땀이 나며 손발이 떨렸다. 알수 없는 통증들이 몸의 곳곳을 돌아다녔다.

     

서서히 몸과 마음이 회복되는 과정에서 알았다. 그동안 다른 사람이 아닌 내 자신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얼마나 못마땅해 하고 한심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말이다. 또 얼마나 내 자신에게 높은 기준을 들이대면서 달성해내라고 채찍질을 가하고 있는지, 못 따라가는 자신에게 비난의 말들을 쏟아붓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게 되었다.

     

20대 후반, 나다운 삶을 살고 싶다는 열망으로 대기업을 나와 새롭게 시작하기로 결심했을 때, 그 때 처음으로 깊이 있게 나 자신과의 만남을 경험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후로 심리학을 공부하고 상담과 심리치료를 공부하면서 나 자신에 대해 많이 이해하고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그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다는 걸 그 때 알게 되었다. 몸과 마음이 모두 무너져서 내려앉아 있는데도 나는 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기가 너무 어렵고 고통스러웠다. 실패의 연속인 내 삶을 지금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면 나는 더 이상 성장할 수 없고 지금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있을 것만 같아 두렵고 불안했다. 그래서 또 다시 너는 왜 아직도 너를 있는 그대로 받아줄 수가 없는 거니?’라며 스스로를 비난하고 질시하고 있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주지 못한다는 이유로 나를 비난하게 되어 더욱 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주지 못하게 되는 악순환이었다. 어디서부터 그 연결을 끊어야할지 난감하기만 했다.

     

그 때 내게 도움이 되었던 것은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마음가짐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게 좋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러지 못하는 나 자신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마음먹고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나니 비로소 눈물이 났다. 많이 미안하고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그동안 정말 애 많이 썼구나. 지금 이 순간 있는 그대로 너 자신을 받아들이고 싶지만 잘 안돼서 속상하겠다. 그래야 네 몸과 마음이 나아질 거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러지를 못한다는 생각이 드니 한심하게 생각이 되기도 하겠어. 그렇지만 그런 너도 나는 괜찮아. 오랫동안 습관이 되었으니 시간이 필요하겠지.”

     

그제서야 나를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게 회복의 시작이었다.

     

돌이켜보니 내가 20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읽고 들었던 그 많은 인간의 심리와 마음에 관한 강의와 책들이 내게는 지금의 나에게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를 분석하고 내가 바라는 모습의 이상적인 나를 더 복잡하고 정교하게 이미지화하는 역할을 한 측면이 있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여야 해’, ‘나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 해.’ 같은 당위로 만들어져서 나를 압박하고 통제하는 또 하나의 틀이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하고 싶지만 잘 되지 않는 자신에 대해서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역시 난 안돼.’하고 비하하고 비난하고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의 시대는 경쟁이 필수적이고 그 속에서 어떻게든 적응해나가기 위해 우리는 언젠가부터 자신에게 엄격하게 굴고 높은 기준을 들이대며 채찍질하고 압박을 가하게 된다. 그런 태도는 분명 학업이나 일에서 성취를 이루어내는데 큰 도움이 되고 필요한 것이다. 어리고 젊은 시절의 나에게도 유용한 측면이 있어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나를 빛나게 해주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신체의 노화가 시작되고 인생에서 감당할 역할이 많아지고 무거워지는 중년 즈음에 이르러서는 이런 태도에 대한 성찰과 함께 반드시 변화가 필요하다.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불안이나 우울, 무기력감, 분노, 수치심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나 자연재해,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 죽음, 질병, 실직, 사고 등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그런 것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스스로 착각하고 경직되어 있다가는 부러지게 된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경직되어 있을 때 스트레스 상황이 여러 가지 한꺼번에 겹치면 그동안 알게 모르게 쌓여있던 것들과 함께 봇물터지듯이 터져나와 번아웃(Burn-out) 되어버리기 십상이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나와 같은 신체증상(불면증, 저혈당 증상, 식욕부진 등)을 겪는 중년의 여성분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한의사선생님으로부터 들었다. 나로서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신체와 정신의 변화인지라 당황스럽고 절망스러웠는데 그런 것을 곁에서 지켜본 한의사 입장에서는 자주 있는 일반적인 일이라니 황망하기도 하고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중년의 사춘기라더니 청소년기만큼은 아니지만 질풍노도의 시기가 맞긴 맞는 것 같다. 그러니 어느 정도는 필연적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내면과 만나고 그 상태 그대로 기꺼이 받아들이는 태도를 미리부터 연습해나가야만 중년의 시기가 왔을 때 부드럽게 신체와 정신의 여러 가지 변화들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적응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이제 나는 나의 체험을 통해서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다.

     

성장은 나를 고치려는 것이 아닌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빛이 강할수록 그 그림자는 어둡다고 했다. 성장하려고 성취하려고 더 나아지려고 애쓰는 사람일수록 자신이 과연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는지 세심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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