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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민재 Dec 05. 2017

경계를 짓는다는 것은 나를 보여주는 것

관계는 나에게 항상 원하지만 불편하고 피하고 싶기도 한 것이었다.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만 막상 만나면 편한 내 자리가 아닌 것 같아 집으로 돌아오고 나면 헛헛한 기분에 다시 우울해지곤 하는 경험을 많이 했었다.

     

그렇다고 사람들과 잘 지내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디서든 대체적으로 잘 어울리는 편이었고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내게 친근함과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좋게 말하자면 인기가 있는 편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내가 느끼는 부담감은 나만이 알고 있는 숙제 같은 것이었다. 왠지 모르게 억울하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다가 서서히 그 사람과의 관계를 정리하게 되었다. 그렇게 만나지 않는 사람들이 쌓여갈수록 뭐가 문제인지에 대한 의문도 깊어갔던 것 같다.

     

그러다가 사람들 간의 만남과 관계 속에서 ‘경계를 짓는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경계를 짓는 것이 그저 내게 부담스러운 요구나 기대를 하는 사람에게 선을 긋고 거리를 두는 것이라고만 이해를 했다. 그때 내게 떠올랐던 이미지는 양 손으로 울타리를 만들어 내 영역을 표시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무자르듯이 툭하고 잘라버리면 더 이상 상처는 받지 않아도 되었지만 관계는 거기서 함께 멈추어 제자리 걸음을 하게 되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나로서는 충격적인 엄청나게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타인과의 경계를 짓는 다는 것은 손바닥을 내 쪽으로 보이면서 막는 것이 아니라 내 손바닥을 상대방이 볼 수 있게 뒤집어서 보여주는 행위라는 것이다. 나를 보여준다는 것이 경계를 짓는 것의 핵심이라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나를 보여주는 행위가 부족했던 것이다. 그래서 불편하고 억울했던 것이다. 상대가 내게 행하는 말과 행동, 표정 등에 대한 나의 반응을 그냥 솔직하게 드러내기보다는 나 스스로 ‘상대가 그걸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해 민감하게 검열하면서 혼자서 속으로 삼켜버리고 있는 것들이 많았다. 그것이 상대방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 배려 때문에 정작 그 사람과 제대로 된 만남을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제서야 상대방도 나에 대해 ‘속을 알 수 없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의 파워 블로거 마크 맨슨은 자신의 책 <신경끄기의 기술>에서 갈등없는 관계는 아무에게도 득이 될 것이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가 관계에서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게 자신과 상대를 늘 만족시키는 거라면 결국에는 아무도 만족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관계가 무너져 내린다. 갈등이 없다면, 신뢰도 있을 수 없다. 갈등은 조건없이 내 옆에 있는 게 누구인지, 그저 이익 때문에 내 옆에 있는 게 누구인지를 보여준다. 예스맨을 신뢰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 <신경끄기의 기술> 중에서 -


만남이라는 것, 관계라는 것이 주는 기쁨과 성숙을 만끽하기 위해서는 좀 더 나를 상대에게 드러내고 표현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 과정을 통해서 겪게 되는 갈등이나 위험은 상대방을 배려해서 내가 입을 닫고 있을 때보다 늘어나겠지만 그건 그 관계가 더 깊어지기 위한 발판같은 것이다. 그걸 겪어내고 나면 서로의 다름을 더 깊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그러니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의 만남일수록,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과의 만남일수록 나를 솔직하게 표현하려고 시도해보자. 그런 표현을 통해 멀어지는 인연도 생기겠지만 그건 어찌보면 그 사람이 나와는 맞지 않기 때문에 결국은 맞게 될 마지막을 미리 앞당긴 것일 뿐일 수도 있다.

     

나를 위해, 상대방을 위해 나를 드러낼 용기를 가져보자. 그 속에서 진정한 만남을 경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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