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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민재 Mar 22. 2018

워킹맘  vs 전업맘

워킹맘에게 지금의 고난과 위기를 조금만 이겨내면 나중에 아이들도 스스로 크고 일과 양육 둘 다 안정되는 시기가 온다고 말하면서 무조건 버티라고 조언하는 신문 사설을 보고 미묘한 불쾌감이 올라왔던 적이 있다.

     

‘못 버티고 나온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이나 열등감인가?’

     

처음에는 스스로에게 이유를 돌렸다. 그러다가 그 실체에 대해서 최근에 조금 실마리 찾았다.

     

그 글 속에는 워킹맘은 승리자이고 경력이 단절된 전업맘은 패배자라고 규정하는 프레임이 숨어 있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돈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 노동에 대한 가치평가를 높게 하는 오류가 있고 그 뒤에는 물질만능주의가 자리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결정적으로 나 자신이 그 물질만능주의의 프레임 안에 제대로 갖혀 있었기에 신문사설 하나에도 마음이 휩쓸렸다는 걸 알아차렸다. 효율성을 추구한다는 미명하에 돈으로 보상받을 수 없는 가사노동과 양육행위는 은연중에 평가절하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이 인정해주지 않더라도 스스로는 현재 자녀양육과 가정돌봄이라는 가치에 최우선을 둔 선택을 했다는 자각을 하고 당당해져도 괜찮을텐데 말이다.

     

반면 워킹맘으로 4년 정도 힘든 시간을 보내본 경험이 있는 내 입장에서는 지금의 한국사회 분위기속에서 워킹맘이 견뎌내야 하는 신체적 정신적 노동을 혼자서 감내해내라고 강요하는 것 같아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것도 불편했다. 왜 그 모든 걸 엄마라는 이유로 혼자서 감당하고 버텨야 하느냐 말이다. 힘들고 어려우면 내려놓고 쉬면서 다시 생각해볼 수도 있는 문제인데 말이다. 돈으로 보상 받을 수 있는 노동으로 돌아갈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로 한정짓는다면 워킹맘에서 쉽게 전업맘으로 돌아설 수 없겠지만 돈으로 보상받을 수 있느냐의 여부를 떠나서 무엇이든 다시 세상과 연결될 지점을 찾는 문제라고 하면 얼마든지 다시 원할 때 시작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결론은 누군가가 만들어서 씌워준 프레임에서 빠져나와 스스로의 내면에서 찾은 가치와 우선순위에 따라서 워킹맘이든 전업맘이든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이것은 워킹맘 대 전업맘 이라는 프레임으로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좀 더 깊은 차원에서 들여다보자면 엄마가 무언가를 할 때 ‘노동’의 수준에서 머물 것인지 아니면 세상에 흔적을 남길 수 있는 ‘일’이나 ‘활동’의 수준으로 올라갈 것인지의 문제이다.

     

한나 아렌트는 자신의 책 <인간의 조건>에서 ‘노동’, ‘일’, ‘활동’을 구분하여 설명하는데 ‘노동’은 인간이 동물의 일종으로서 생명과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에 쫓겨 행하는 작업을 가리킨다. 이때 생겨난 산물은 소비되는 성질이 있으며 영속성을 갖지 않는다. 한편 ‘일’은 인간만이 갖는 영속성이 있는 무언가, 이를테면 도구나 작품을 만들어내는 행위를 가리키고 ‘활동’은 사회와 역사를 형성하는 정치적 작용이나 예술 등의 표현행위를 일컫는다.

     

워킹맘도 전업맘도 누구든 자신의 선택에 따라 ‘노동‘하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고 또한 ’일‘이나 ’활동‘을 통해 인간의 영속성을 드러내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주체가 될 수도 있다. 혹은 ’노동‘을 통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돈을 벌고 별도의 ’일‘이나 ’활동‘을 통해 인간됨을 유지할 수도 있다.

     

이렇게 까지 생각하고 보니 전업맘이든 워킹맘이든 엄마들이 ‘노동’이라는 개념에 기반을 둔 ‘경력단절’이라는 프레임에 갖히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먹고 살기위해 하는 ‘노동’의 차원이 아닌 다음 세대을 이어갈 아이들을 가꾸어가는 ‘활동’을 한다는 자부심을 가지면 좋겠다. 특별히 전업맘의 경우는 아이들이 독립할 때를 염두에 두고 세상과 연결될 자신만의 도구를 찾는 것에 마음을 열어두는 게 필요하겠다.

     

워킹맘의 자녀가 어떻고 전업맘의 자녀가 어떻다는 등의 연구들이 많지만 따지고 보면 그것은 표면적인 현상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일 뿐 진실은 워킹맘이든 전업맘이든 그 엄마가 자신의 삶과 지금 있는 자리에서 자신이 하고 있는 것에 대한 가치를 스스로 알고 당당하게 인간다운 일상을 만들어가고 있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오랜 마음속 의문 중 하나가 스스륵 풀리는 기분이다. 기쁘고 설레인다.

     

예전의 내가 그랬듯이 밤마다 고단한 몸으로 워킹맘으로 남을지 전업맘이 될지 선택의 기로에서 잠 못 이루고 고민하고 있을 수많은 엄마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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