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주변의 모든 자극들이 나에게 메시지를 주는 듯 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우연히 보게 된 TED강연이 그랬다.
짐바브웨의 정신과 의사인 Dixon Chibanda 는 응급실로 실려온 응급환자 중 우울증과 자살시도의 가능성이 있는 26살 여성 환자와 그 보호자에게 응급처치가 끝나는 대로 자신에게 오라고 이야기를 한다. 자신이 병원으로 가기에는 여러 가지 여건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환자는 권고와 달리 그에게 오지 않았고 그 여성 환자는 며칠 뒤 결국 망고나무에 목을 메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고 말았다고 한다. 그 여성의 어머니에게 Dixon Chibanda가 왜 자신에게 오지 않았는지 묻자
“당신에게 가려면 버스비 5달러가 필요한데 그 돈이 없었어요.”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 일을 경험한 뒤 그는 ‘할머니 상담자’에 대한 아이디어를 생각하게 된다.
짐바브웨에 정신과 의사가 11명밖에 없는 현실과 버스차비가 없어서 병원에 찾아올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짐바브웨의 자살률을 줄이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낸 것이다.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고민을 했으면 이런 생각에까지 이르게 되었을까?
현실의 장벽이라는 이유로 스스로 한계를 정하고 할 수 없는 이유를 찾다가 무기력해지기보다는 작고 완벽하지 않더라도 뭐든 지금 그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시작해보는 용기가 얼마나 소중한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지난 1년여의 멈추어 회복하는 시간을 돌아보았을 때 내게 생긴 변화중 하나는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좀 더 적극적으로 생각해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미 짜여진 조직이나 단체 속에 나를 구겨 넣는 일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졌다. 그로 인해 주어지는 댓가가 아무리 달콤하더라도 내게는 나로 숨 쉴 수 있는 적당한 여유와 공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전처럼 덥석 물어 버리지 않고 한 템포 쉬어갈 수 있다.
현재의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다가 발견한 것이 ‘글쓰기’이다. 글쓰기는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내가 쓰는 글을 통해서 세상과 소통하고 싶다는 나의 열망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렇지만 그건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과 글쓰기로 경제적인 필요를 해결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으로 그것이 실현가능하다고 감히 생각하지 못했다.
어느 날 대학 선배가 소설가가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이 강한 충격을 받았다. 그 선배와 나는 공대생이었지만 가수 이상은의 열혈 팬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가수 이상은은 노래, 그림, 글로 자신을 표현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사람이다. 주로 사람이 아닌 기계나 컴퓨터 같은 사물을 대상으로 삼아 공부를 하고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공대라는 집단에서 그런 ‘표현’의 가치를 동경한다는 것은 약간의 동질감을 주었다. 그런 그가 신문사 기자가 되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을 때만해도 살짝 부러운 정도였던 것 같다. 나는 왜 그때 그럴 생각을 못 했나 아쉽기도 했다. 그러다가 그가 신문사 기자를 그만두고 소설가가 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는 더 늦기 전에 나도 뭐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렇게 글쓰기 교실에 등록을 하고 글쓰기에 대한 나의 마음속 열망을 조금씩이나마 드러내게 되었다.
이제 글쓰기는 나의 일상이 되었다. 서점에 가고 도서관에 가고 마음에 드는 책을 읽던 일상에 ‘글쓰기’가 포함된 것이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글을 읽기만 하다가 내 생각과 말을 종이에 뱉어내고 그걸로 소통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이 글이 그 소통의 시작이다. 내가 있는 지금의 자리에서 내가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의 최선이다.
TED 영상
Dixon Chibanda: Why I train grandmothers to treat depre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