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ST DO IT.
11월.
요즘엔 점점 가을이 늦춰지는 느낌이다. 더위가 가지 않고 꽤 오래 남아있더니 10월 마지막 주쯤이 되어서야 이제 진짜 가을이구나...하는 기분이 들었다.
사계절 중 가을을 제일 좋아하고, 이 시기에 맘대로 놀러다닐 수 있을 만큼 한가하기를 오래 갈망했던 사람으로서 올해 가을은 그야말로 꿈만 같다. (이렇게 느끼는 사람이 나만은 아닌지 예전에 '가을방학'이라는 혼성 그룹도 있었다.)
그렇다고 어디 멀리로 여행을 다녀온 것도 아니다. 내가 사는 동네의 반경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정도에서, 매년 가곤 하는 곳들 위주로 움직이고 있는 건데 사실 그 이상이 필요하단 생각도 별로 들지 않는다.
걸어서 산책할 수 있는 공원의 풍경이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걸 관찰하는 일,
집 거실에서 보이는 벚나무의 잎들이 점점 빨개지기 시작하고 오후 3시가 넘어가면 해를 정면으로 받아 더 붉어진 모습으로 살랑대는 순간을 매일 보며 감탄하는 시간 ,
어제 갔던 영추문과 그 돌담길, 진노랑의 은행나무들이 오늘은 더 청명한 하늘과 햇볕 덕에 완전히 다른 빛깔을 보여준다는 걸 알게 되는 것,
춥지도 덥지도 않게 알맞은 날씨 덕에 하루 종일 밖에 있으면서 발길 가는대로 걸어다니기...
내 나라의 아름다운 가을을 이렇게 실컷 즐길 수 있다니 이걸로 충분하다.
충분히 행복하다.
올 가을에 내 즐거움을 배가시키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카메라이다.
올해 5월 즈음 캐논 매장에 그냥 구경을 하겠다고 가서는 충동적으로 구매해버린 나의 첫 카메라.
사는 동네이든, 이국의 낯선 곳이든 두 발로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는 건 내 유일한 취미이다시피 한데도 고가의 카메라를 사는 건 왠지 꺼려졌었다. 귀찮은 걸 워낙 싫어하는 성향, 기계치라는 특성, 게다가 핸드폰 카메라는 점점 성능이 좋아지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뭐든 오버하는 건 질색인데 소위 '대포 카메라'라고도 하는, 무겁고 큰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은 내게 좀 과해 보였다. 오로라를 보러 노르웨이에 가기로 했을 때, 기존에 사용하던 것보다 조금 더 좋은 사양의 핸드폰을 구매한 것 정도가 내가 사진에 대해 투자한 전부였다. 그래도 가끔씩, 여행을 가서 너무나 근사한 풍경을 마주하게 될 때면 좋은 카메라가 아쉽단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카메라를 구매한 후에도 제대로 학습(?)을 하고, 이런 저런 기능을 써보는 일은 거의 하지 않고 있다. 기껏 해야 풍경 모드에서 역광 보정 모드, 혹은 클로즈업 모드로 버튼을 돌려놓는 정도다.
그렇지만 몇 달간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며 사진을 찍어본 나의 소회는 이것이다.
'아니, 왜 진작 카메라를 사지 않았던 거지? 이렇게 사진 찍는 걸 좋아하면서?'
모든 사진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색감이나 선명도, 분위기가 핸드폰 사진과는 아예 다른 결과물을 확인하고 나면 마치 내가 사진을 꽤나 잘 찍는 사람이 된 것 같은 즐거운 기분이 든다. (역시 장비빨이라는 건 무시할 게 아니었다.)
아름다운 단풍 사진들을 열심히 찍고는 집에 돌아와 다시 보고 있으면, 그 풍경을 볼 때의 즐거움이 다시 느껴지고 더 확장되는 듯하다. 한마디로, 신이 난다.
아름답고 인상적인 순간들을 사진으로 남겨두는 걸 매우 좋아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기계를 사서 새로 익히는 게 귀찮고 아마 무거운 카메라를 잘 가지고 다니지 않을 거란 선입견 때문에 내 카메라를 갖는 데에 이렇게나 시간이 많이 걸렸다는 게 아무래도 좀 이상하고 어리석게 여겨졌다. 그리고 이 카메라 건처럼, 고정관념이나 섣부른 단정 때문에 내가 시도도 해보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 또 얼마나 많을까...하는 합리적 의심이 생겨났다. 어떤 새로움이나 풍성함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막고 있다면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
뭐든 해보는 게 좋다. 아예 되돌릴 수 없는 무거운 결정이 아니라면 뭐든, 시도를 해보는 편이 아예 시작도 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
카메라로 인한 즐거움 덕에 새삼스럽게 확인한 진리이다.
JUST DO 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