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수 Apr 02. 2024

선을 지키는 것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도록

 오랜만에 임종실에 들어갔다. 내가 임종실 앞에서 환자의 차트를 다시 한번 점검하고 있을 때, 안에서 나오던 간호사는 '여긴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툭 던지고 갔다. 짧게 '네'라고 대답했지만, 그 결정은 나도, 간호사도 아닌 환자와 보호자가 하는 것이기에 잠시 숨을 고르고 노크를 했다.


 상대적으로 젊은 환자, 그리고 더 젊은 보호자가 있었고, 짧게 인사를 나눈 후에 편안한 음악을 들려드리겠다는 나의 말에 보호자는 '들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이라고 말하며 나에게 시간을 허락했고, 나는 악기가 있는 카트를 밀고 임종실로 들어왔다. 


 보통 임종실에서 환자들은 청력은 있으나 반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보호자와 세션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임종실에서의 세션이 처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병실에서 치료사와 관계를 쌓았던 환자의 경우 환자와 함께 불렀던 노래, 들었던 음악, 이야기들을 보호자들에게 전달해 주며 세션을 진행하겠지만, 처음 만난 환자, 특히나 치료사와 어떠한 라포도 형성되어있지 않은 보호자일 경우 나는 선을 넘지 않으려 부단히 애를 쓰게 된다. 


 호스피스에서 일을 하다 보면 얼마 남지 않은 이 시간이 얼마나 귀한지 그리고 얼마나 빠르게 지나갈지 알기에 최대한 가족들과의 연결성, 관계성에 대해 많이 다루고자 한다. 실제로 음악치료 세션을 통해 환자들은 치료사에게 생각보다 많은 가족사를 이야기해주기도 하고, 음악 작업을 통해 가족들 간 연결을 해드리기도 한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자칫하다가 마치 내가 조물주라도 된 것처럼, 수십 년을 살아온 이 환자와 가족들의 서사를 무시하고 나의 생각과 방식이 마치 최고인 것처럼 착각하게 되기 쉽다. 일반적인 지식과 교과서적인 생각으로 준비가 되지 않은 보호자에게 섣부르게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이미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가족들에게 무언가를 더하려고 하는 등 불청객과 같은 모습이 되기 십상이다. 


 치료 장면에서 환자들과 보호자들은 음악을 듣다가 눈물을 보이기도 하고,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기도 하고, 복잡한 감정을 표출하기도 하지만, 그 장면은 그들의 일부일 뿐이다. 하지만 치료사가 미숙할수록 마치 그게 전부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선한 마음으로 이들을 돕고자 하지만, 지혜롭지 못하면 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특히 이 호스피스 세팅에서는 지속적으로 생각해보아야 한다. 


 오늘 만난 보호자는 나에게 잠시 잠깐의 시간을 허락해 주고 자신은 뒤로 물러나있었다. 들려오는 음악에 어떠한 동요도 보이지 않고 핸드폰만 만지고 있을 뿐이었다. 이때 치료사는 이 순간 보호자에게 좀 더 말을 건넬지 말지, 건넨다면 어떠한 소재로, 어떠한 톤으로, 또 어떠한 목적으로 건네야 할지 빠르게 고민하여 결정해야 하는데, 환자 및 보호자에 대한 사전 정보와 그때의 상황을 고려하여 직감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호스피스 세션은 이렇듯 매 순간 임상적 결정을 해야 하는 어려운 과정의 연속이다.


 오늘의 결정은 어떠한 것도 말하지 않고 다만 환자에게 인간적인 최선의 예절을 지키며 세션을 짧게 마무리하는 것이었다. 그 당시 나의 판단은 환자 및 보호자와 처음 만나는 사이이고, 보호자가 거절하지 못하는 성향으로 치료사의 출입을 허했으나 이 세션에서 자신을 노출시키려는 마음이 보이지 않았기에 오히려 지나친 말과 과도한 개입이 해가 될 것이라는 데에 근거했다. 


 이 판단이 옳았는지는 사실 완전히 알 수 없다. 그저 적절했기를 바랄 뿐이다. 다만 이 과정을 다시 복기하면서 다음 비슷한 상황이 생겼을 때 보다 좋은 판단을 할 수 있기를 또 바랄 뿐이다. 언젠가 임종실에서 정말 시간이 몇 시간 채 남지 않은 환자에게 가족들이 사랑한다는 말을 전할 수 있도록 도왔던 세션 장면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그 당시는 그 감정들이 요동치는 공간에서 중심을 잡고 치료 세션을 진행하는 것이 매우 힘이 들었으나 내 마음 한편에 정말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자리 잡았던 장면이다. 그것에만 매몰되어 있었다면 나는 오늘 그 병실에서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될지 모른다. 내가 본 그 장면이 환자의 몇 시간 남지 않은 마지막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찰나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에 대한 결정은 치료사인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오롯이 환자와 보호자들의 몫이다. 치료사는 그저 그들을 도울 뿐이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선을 지키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나의 일상에서도 쉽지 않은 일인데 치료 장면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적절한 말과 단어를 고르기 위해 평소보다 대화의 템포가 느려지고, 조심스러움이 많은 대화이지만, 그렇게 하더라도 분명 어떤 순간에는 부적절한 말과 반응과 행동이 환자들과 보호자들을 불편하게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저 최선을 다해 나라는 치료사가 그곳에서 잘 쓰이기를 바라는 것. 내가 해야 하는 유일한 것일지도 모른다. 

작가의 이전글 Stand by your m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