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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수 Mar 08. 2024

Stand by your man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 도도했다. 기타를 메고 악기 수레를 끌고 병실에 들어오는 나에게 그녀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자기가 해야할 일들에 몰두했다. 옆에서 노래를 부르고 기타를 연주하면 은근슬쩍 관심을 보일 법도 한데 그녀는 그러는 법이 없었다. 


 그래도 병실에 들어갈 때마다 나는 인사를 거르지 않았고, 그녀 또한 나에게 자신의 시간과 공간을 내어줄 생각이 없다는 분명한 의지를 담은 눈짓으로 인사하는 것을 거부하지 않았다. 한참을 그녀 옆에 있던 환자와 치료를 진행하고 있었을 때 그녀는 사회적인 제스쳐로 몇 마디 거들기도 했지만 이내 자신의 일로 돌아갔다. 오래된 액자와 앨범을 정리하기도 하고,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하기도 하고,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기도 하면서 그녀 나름의 일거리들은 언제나 나와의 거리를 적당한 선에서 머물도록 했다. 


 몇 번의 눈인사, 눈짓이 지나고서야 그녀는 말을 걸어왔다. <엘리제를 위하여>를 연주할 수 있는지 물었다. 치료사로 환자들이 요구하는 음악은 최대한 할 수 있는 데까지 또 즉각적으로 제공해주려고 노력했던 나는 오래된 기억을 더듬고, 서걱거리는 손가락 근육을 뒤로한 채 그녀를 위해 연주했다. A 파트는 여차저차해서 잘 넘어갔는지 몰라도 B 파트부터는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아 황급히 즉흥적으로 꽤 부자연스럽게 마무리했다. 그녀 또한 적당한 수준에서 고마움을 표현했다. 노력해주어 고맙다 정도의 표현. 


 여러번의 항암치료를 거듭하고, 호스피스 병동에 오기까지 수많은 치료들을 거쳐오다보면 사람들의 외모는 상당히 다르게 변하게 된다. 머리가 빠지는 것은 물론 뼈의 골격이 다 보일 정도로 체중이 주는가 하면 어떤 경우 약 부작용으로 온 몸이 풍선처럼 부어오르기도 한다. 그럼에도 사람의 얼굴과 인상은 참 정직하다. 그 사람이 지난 세월 어떻게 살아왔는지 외형이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꽤 자기 주장이 분명하고, 강직한 성품이었으리라 생각했다. 치료사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그런 모습이 묻어 나왔지만, 그냥 그녀 자체가 그렇게 보이기도 했다. 그러던 그녀가 딸과 함께 연주회에 섰던 기억을 이야기해줄 때 만큼은 딱딱하게만 보였던 그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병실에 자주 찾아오지 않는 딸에 대한 서운함을 이야기할 때에도 그녀는 그녀의 스타일 그대로 투정과 비속어 그 중간 어디쯤의 언어를 내뱉었지만 그 안에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따듯함, 사랑이 있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환자들은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필연적으로 또 자연스럽게 그려보게 된다. 특히 같은 병실의 누군가가 임종을 맞이하게 될 경우, 죽음은 더더욱 깊이 찾아와 형용할 수 없는 불안과 스트레스를 가져오게 된다. 그래서 치료사가 세션을 시작하기 전에 최근 이 병실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환자가 어떤 컨디션을 보이고 있는지 체크하는 것 또한 비단 임종기를 맞이하는 해당 환자를 위함이 아닌, 그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보게 되는 다른 환자들의 심리정서적 상태를 진단하기 위해서다. 


 강직해 보이던 그녀가 조금씩 흔들렸던 것도 그 즈음이었다. 언니라고 부르며 꽤 친근하게 대했던 옆 환자가 갑작스러운 상태 변화로 인해 더이상 대화를 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섬망 증세까지 나타나 병동에 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녀는 견딜 수 없었는지 1인실로 병실을 옮겼다. 그리고 얼마간 치료를 거부했다. 치료뿐만 아니라 외부인의 방문을 차단했다. 


 이런 경우 치료사는 어쩔 수 없이 기다린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있는 사람에게 가장 주어지지 않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다. 의식주를 비롯하여 삶의 모든 부분을 병원과 의사, 보호자의 결정으로 살아가야하는 환자들이 치료사를 거부하는 것은 어쩌면 유일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선택하는 방법일 수 있기에 나는 이론적으로 그 결정이 반가울 때가 있다. 실제는 그렇지 않더라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그녀는 나의 방문을 허락했다. 그사이 그녀의 상태는 좀 나빠져 있었고, 강직함을 겉으로 표현하기에도 힘이 빠져 있었다. 또 60일 안에 전원을 가야 하는 시스템적인 문제로 인해 그녀는 전원을 준비하고 있었고 꽤나 분주한 상황이었는데 그날따라 병실을 방문하는 나에게 들어와도 된다는 신호를 보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에, 그녀는 몇 주 전 옆 환자의 임종이 얼마나 본인에게 고통스러웠는지, 그 모습이 자신의 미래일 것만 같아서 얼마나 무섭고 불안했는지 덤덤하게 이야기했다. 꽤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고 그녀가 나에게 먼저 <Stand by your man>이라는 노래를 추천해주었다. 선생님 목소리에 기타로 이 곡을 연주하면 참 잘 어울릴 것 같다는 말과 함께. 그때 이 곡을 연습해서 그녀에게 들려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퇴원하는 날, 병동 복도에서 그녀를 만났다. 사실 그녀가 당일 퇴원하는 것을 알고 있었고, 병실에 들어가 인사를 할지 잠깐 고민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퇴원을 한다는 의미는 2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 가지는 이 병원에서 내원일수 60일을 채우고 다른 병원으로 전원을 갈 정도의 상태라는 것, 다른 한 가지는 그렇지만 환자의 상태는 계속해서 나빠지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옮겨간 후에 언젠가 임종기가 다가온다는 것. 퇴원을 위한 굿바이 인사였지만, 또다른 의미의 굿바이 인사라는 점이 내 뇌리를 떠나지 않았기에, 굿바이 인사는 마음 속으로만 해두고 싶었다. 그런데 의도치 않게 복도에서 간호사들과 인사를 나누는 그녀를 마주하게 되었고, 그녀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꿀 먹은 벙어리마냥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동안 고마웠다는 말에 저도 감사했다고 답할 뿐이었다. 


 몇 달 후 그녀를 다시 만났다. 아주 다른 모습으로, 하마터면 알아보지 못할 뻔 했다. 상태가 많이 안좋아진 상태에서 병원에 전원오게된 그녀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잠을 자며 보냈다. 사실 시간을 보냈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았다. 그건 그녀가 보내는 시간이라기보다 약물이 주고 있는 시간이었기에. 그녀는 그 상태로 꽤 오랜 시간을 지냈다. 크게 나빠지지도 그렇다고 크게 좋아지지도 않은채 고요하게 그녀는 자고 있었다. 


 한동안 비슷한 수준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던 그녀가 한번에 상태가 나빠졌다. 급하게 임종실로 병실을 옮기게 되었다. 임종이 가까워져왔음이 피부로 느껴지게 되는 시간이다. 가까운 가족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치료사로서 해줄 수 있는 건, 마지막 순간까지 편안하고 평온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 그뿐이었다. 병실에 들어가자 그녀의 남편은 평소때보다 상기된 얼굴로 나를 맞이하였고, 그녀가 평소에 좋아했던 CCM <사명>을 불러주길 요청했다. 

 


주님이 홀로 가신 그길

나도 따라 가오

모든 물과 피를 흘리신

그 길을 나도 가오

험한 산도 나는 괜찮소

바다 끝이라도 나는 괜찮소

죽어가는 저들을 위해

나를 버리길 바라오

아버지 나를 보내주오

나는 달려가겠소

목숨도 아끼지 않겠소

나를 보내주오



 아무도 말이 없었다. 말을 할 수 없었다. 꾸역꾸역 올라오는 감정을 참아가며 노래하던 치료사의 목소리만 병실 안을 가득 채웠다. 여러 번 불러보았던 노래지만, 심지어 그녀 앞에서도 불러보았던 노래지만, 이 노래를 이런 상황에서 부르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러나 그녀라면 이 노래와 같은 마음으로 마지막을 보냈으리라 나와 그녀의 남편은 생각했다. 그게 그녀와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고 라디오에서 들려오던 <Stand by your man> 노래를 듣고 나는 운전 중 잠시 멈추어 섰다. 그녀가 떠올랐다. 그리고 한번도 그녀 앞에서 이 노래를 불러주지 못한 한켠의 빚진 마음도 떠올랐다. 간간이 이 노래를 들을 때면 마치 그녀가 나에게 이 노래를 불러주는 것만 같다. 전원을 가기 전 내게 좋은 일을 하고 있다며 덕담을 해주던 그녀가 여전히 나의 세상에서 이야기해주고 있는 느낌이랄까. 잘하고 있다고, 내가 이 노래로 너에게 힘이 되어주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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