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매어있음과 자유로움이 공존하는 걸까.
한창 상담을 받던 때에 “아이가 생기면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잖아요!”라며 엉엉 울었던 시기가 있었다. 당시 정말로 죽으려던 건 (당연히) 아니었고, 그만큼 내가 매어있는 존재가 될 것만 같다는 두려움이 극단적으로 터져나온 거였다.
그런 나를 보며 상담선생님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쉬워지지. 오히려 더 쉽게 살아지지.“ 그 태연함이 내 고통을 마치 다 이해 못한 것만 같아 선생님을 쏘아보긴 했지만, 그 이후로 그 대답은 내 마음에 쿵 하고 자리잡았다. 오히려 쉬워질 수 있을지도 몰라.
아이를 낳고서 나는 그렇게나 두려워하던 ‘매어있는 존재’가 되었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매일의 일상보다, 아주 가끔 아이를 반려인에게 맡기고 1박2일로 떠난 여행의 태도에서 절실하게 드러난다. 매번 그 감정의 결들은 다 달랐다.
아주 신생아 때에는 매우 과중한 과업을 반려인에게만 맡겼다는 상대에 대한 미안함이 가장 컸다. 돌까지는 아이를 완전히 잊고 여행에 집중한 나에 대한 생경함이 컸고, 이를 죄책감 없이 받아들이는 연습을 했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는 시작부터 아이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숨쉬듯 깃들었다. 해변에서 놀고있는 또래 아이를 보면 괜히 눈물이 났고, 놀이터에서 들어와 잠들기 전까지 진정하지 못하고 오열하는 아이의 사진을 자꾸만 들여다보고, 아이가 푹 잠들 때까지 헤이홈 카메라를 계속 켜놨다.
윤슬이 예쁘게 보이는 바닷가에 가서도 그 반짝이는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아이 생각이 나 눈물이 자꾸만 고였다. 어쩌자고 저렇게 눈부신 걸로 이름을 지어서, 내가 다 품을수도 없게 만들었니. 자꾸만 울컥 했다. 어쩌자고, 이 한없이 작은 나자신아.
이번 여행은 참 어렵네, 한숨 짓다가도 곧바로 이해가 되었다. 두돌 재접근 시기에 접어들면서 아이는 이전과 다른 스케일로 엄마를 찾았고 늘 엄마를 통해서만 진정되고 있다. 아이를 떠올리느라 여행에 집중이 어려운 건 그렇기 때문에 당연할 수밖에 없다. 아이가 그런 시기이니까 돌봄자인 나도 그런 무드에 푹 젖어있는 거다.
그러다가, 가장 강한 매어있음을 경험하고 있는 지금, 그 얽매임이마치 중력같다고 여겨졌다. 이리저리 부유하지 않고 이 지구로 딱 발 받치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강력한 힘. 사과를 늘 지구의 땅으로 일정하게 떨어지게 만드는 예측 가능한 그 힘. 어쩌면 지구는 일관된 사랑으로 사과를 불러 늘 곁에 두는 것만 같다.
달에서와 달리 우리는 이 중력을 지구에서 늘상 받기에 오히려 더 멀리 달리고 더 자유롭게 뛴다. 어떻게 매어있음과 자유로움이 공존하는 걸까. 이게 머리로는 이해가 어려워도 몸과 마음으로 경험하는 중이다. 상담 선생님의 말대로 오히려 쉬워지는 중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