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 있잖아요.

가득 잠

by 읽고 쓰는 삶

암막커튼 속 내 방은 아침인지 저녁인지 알 수 없다. 몇 번 깨서 휴대폰 시계를 확인하고는 다시 잠에 든다. 오늘은 그래도 괜찮으니까.

오후 5시 쯤 겨우 일어난다. 평일인데 이 시간에 일어나다니.. 문득 빨간 날이 고맙다. 평소 내 주말처럼 하루를 시작한다. 조금 늦은 시작일 뿐이지 온전한 내 시간이라 생각하니 기분이 좋다.


요가를 하다보니 벌써 어둑해진다. 일어나자마자 밤이 돼 버린다니 왠지 조금 아쉽다. 사바아사나로 매트에 누워있으니 다시 잠이 온다. 그렇게 자고도 졸린 내가 웃기다.


나는 가끔 이렇게 잠을 가득 자곤 했다. 잠 독이라는게 있다면 밑바닥이 드러날 때쯤이려나. 엄마집에 살 땐 아빠가 퇴근해서 깨울 때도 있었다. 그럼 저녁을 먹곤 남들 자는 시간에 또 잠이 들었다. 그런 가득 잠의 날이 있다.


매트에 누워 있으니 반쯤 지나간 빨간 날이 머릿 속을 스친다. 예전엔 추석이면 친척들도 다 같이 만나고 저녁엔 친구들과 나가놀았다. 그러고보니 이젠 만나는 것도 쉽지 않아 아쉬운 마음이 든다. 괜히 쓸쓸해졌다가 푸닥거렸던 몇 장면을 떠올리니 혼자 누워있는 지금도 꽤 괜찮게 느껴진다. 명절에 누가 팔자좋게 여행가냐고 하던 아빠, 엄마 모시고 팔자 좋게 여행도 무사히 다녀왔구나. 괜히 뿌듯함에 기쁘다가도 당분간 가족여행은 가지 않겠다 다짐해본다. 과연 지금 매트 위가 낙원이다.


내 잠 독은 왜 말라버렸나 답을 찾은 듯하다. 유독 누구든 함께 있고 싶은 이런 날들은 각종 이벤트들을 만들게 된다.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것들, 만나지 않았을 사람들, 듣지 않았을 말들, 느끼지 않았을 마음들을 마주한다. 가족들, 지인들 틈에 평소보다 에너지를 두, 네 바가지 씩을 끌어다 쓴게 분명하다.


10월 달력을 마주하며 긴 빨간 날을 얼마나 반가워했던가. 사람들 틈에 시끌벅적한 연휴를 보내겠다 기대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만큼 나를 돌볼 시간도 내게는 필요했다. 오늘 하루를 채운 잠은 그런 나를 위한 시간이었다. 딱 붙어 같이 있고 싶다가도 딱 그만큼 혼자 있는 것도 좋으니까.



가득 잠과 혼자 가득히 보낸 하루를 마무리한다. 이젠 무엇이든 거뜬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또 북적북적한 내일의 이벤트를 마주하러 가본다. 내일은 그래도 괜찮으니까.



다시, 씀.

2025.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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