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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십대 제철 일기 Sep 08. 2024

미룬이가 된 어른이

어른으로 살긴 참 힘들어!

시작이 제일 무서워 미룬이~ 완벽하지 못할까 봐 지금이~ 내일의 나에게 일단 미루지~ 그러다가 돼버렸지 미룬이~ ♬


요즘 개그맨 이제규 씨의 노래 <미룬이>에 푹 빠졌다. 언뜻 보면 아이들의 노래 같지만 가사를 곰곰이 들여다보면 어른을 위한 노래다. 아이 는 시작이 제일 신났지만 어른이 되고서는 완벽하지 못할까 봐 시작을 못하고 계속 미룬다는 내용이다.


앞서 유행했던 어린이 차노을 군의 노래 <해피>와는 완전 반대다. 초등학교 2학년인 차노을 군은 장기자랑 숙제를 위해 랩과 영상을 만들게 됐는데, 아버지 차성진 씨의 도움으로 상당히 '고퀄' 노래가 탄생하면서 유명해졌다.


차성진 씨는 차노을 군이 초등학교 1학년 때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를 진단받아 새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새 친구를 만드는 것을 어려워하자 이번 노래와 뮤직비디오를 만들어줬다고 한다. 노래가 참 밝고 몽글몽글하다.


뭐가 됐든 행복하면 됐지 뭐가 됐든 함께라면 됐지

사실 내가 진짜 되고 싶은 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나는 할래 행복할래 뭐가 됐든 나는 행복하게 살래

<HAPPY - 차노을>


아이는 행복을 꿈꾸고 어른은 자꾸만 도망간다. 할 일을 미루고 도전을 미루고 행복도 미룬다. 어른으로 살기 참 힘든 세상! 온종일 밥벌이를 하다 보면 무언가를 할 힘이 생기지 않을 때가 있다.


퇴근하고 돌아와 저녁을 차려 먹고 나면 저녁 7~8시 정도. 잠들기까지 3~4시간 남는다. 그 시간을 쪼개 공부를 하거나 운동을 할 때도 있지만, 도저히 허리를 세울 힘도 없어 소파에 늘어져 휴대폰만 붙잡고 있는 날이 얼마나 많은지.


그렇게 뒹굴뒹굴 쉰다고 피로가 풀리지도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나 자신에 대한 후회만 쌓인다. 주말도 다를 바 없다. 멀리 나가 놀면 피곤할까 봐 꺼려지고 그렇다고 동네 카페나 가기엔 아쉽다. 고민하는 사이 주말은 금방 가고 애매하게 쉴 때도 많다.


정말 하고 싶었던 건 '나중에 시간이 생기면….' 하고 미룬다. 그러다가 비교적 길게 쉬는 날이 생기면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올까 싶어서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해외여행을 떠나곤 한다. 우선순위가 끊임없이 엎치락뒤치락하는 거다.


최근 한 다큐 프로그램에서 일본의 니트(NEET)족의 생활을 보여줬다. 니트족은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부직자를 뜻한다. 일본의 한 젊은 여성이 사례로 나왔는데 그녀는 정부가 운영하는 임대주택에 살면서 매월 부모의 연금 중 50만 원을 용돈으로 받아 쓴다.


느지막이 일어나면 영화 등 영상을 보고, 손쉽게 할 수 있는 점심을 먹고 한숨 잔 뒤 일어나면 또 무언가 영상을 본다. 하루종일 집에 있으면서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걸 하는데, 마치 휴일이 매일 이어지는 삶과 같았다. 그녀는 자신의 생활이 만족스럽다고 했다.


어른들이 점점 겁이 많아지고 있다. 나도 가끔은 '이렇게 일해서 뭐 해?' 하며 사직서 양식을 찾아보곤 한다. 먹고 사느라 정작 나에게 필요한 운동이나 취미, 자기 계발을 미루고 미룬 게 몇 날 며칠이던가!!! 나야말로 '미룬이 가 어른이'아닐까.


하지만 요즘은 '좀 미루면 어때?'라는 생각이 든다. 매일 살아내기도 벅찬 어른의 삶을 살아가려면 조금 미룰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나를 닦달할수록 내 인생에서 나의 비중이 줄어든다. 어른이, 미룬이가 되어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이 세상 모든 어른들이여 화이팅.

(※대문 사진은 유튜브 '제규리' 채널, 본문 하단 사진은 유튜브 '노을이의 작업실' 채널 영상의 썸네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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