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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십대 제철 일기 Sep 21. 2024

심리 상담받아보기(하)

감기처럼 찾아오는 나의 반려 우울

첫 심리 상담의 기억이 좋지 않았기에 두 번은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사이 많은 일이 찾아왔다. 이사를 두 번 하고, 이직도 하고, 결혼도 했다. 삼십 대에 들어서자 어느 정도는 인생의 '안정기'가 찾아왔다. 늘 외줄 타는듯한 나의 감정은 결혼을 하고서 두 발로 착지했다.


함께 살아 보니, 나의 남편은 심지가 단단하고 잔잔히 일렁이는 사람이었다. 내게 아무리 거친 파도가 몰아쳐도 그를 붙잡고 서 있으면 휩쓸려가지 않았다. 그의 오른쪽 팔을 베고 모로 누우면 금세 잠에 들었다. 인생의 불청객이었던 나의 불면증도 결혼 후 거의 찾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내 안의 폭풍은 오로지 내 것이었다. 거주지와 근무지를 옮기며 겪는 낯선 변화와 친해져야 하는 것도 내 몫이었고, 집 밖에서 겪는 모든 일을 나누어도 내 몫은 확실하게 나에게 떨어졌다. 그러니 나의 우울은 자취방이든 신혼집이든 염치없이 문을 두드리고 마는 것이다.


작년에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었다. 상사에 대한 배신감과 서운함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그게 오래갔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굳이 품을 필요 없는 마음이라는 걸 알았지만 어쩐지 계속해서 그 일이 계속 생각나 옆사람을 힘들게 했다.


내 이야기를 계속 들어주니 남편도 지쳐 화를 버럭 낸 날이었다. 그 순간 너무 민망해진 나는 소리 없이 펑펑 울며 집을 나섰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일단 버스를 탔다. 가는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아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데서나 내렸다. 나는 굉장히 약해져 있었다.


나는 무언가 잘못되고 있음을 느꼈다. 너무나도 자주 찾아오는 불안과 우울. 참지 못하고 터지는 입, 남편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나의 모습이 너무 위태로웠다.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일은 남도 완전히 해결해 줄 수 없다. 나는 바로 '숨고' 앱을 깔고 심리 상담을 알아봤다.


첫 심리 상담 기억이 좋지 않았음에도 병원에 가지 않은 건 조급 해서였다. 주말이었기 때문에 바로 매칭이 되는 숨고를 이용하는 게 빨랐다. 나는 여러 명에게 견적 의뢰서를 받았는데, 비용보다는 당일에 만날 수 있는 상담사와 연락을 했다.


그중 한 분과 만났다. 첫 상담 때와 비슷한 장소, 비슷한 검사를 진행했기에 조금 불안해졌다. 그러나 분위기는 확연히 달랐다. 상담사는 시작부터 끝까지 따뜻하게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을 해줬다. 두 번째 만남에선 여러 검사를 진행하며 나의 기질이나 성향을 파악했다.


나는 그 과정에서 위로를 얻고 동시에 나를 알아갔다. 구체적인 검사를 통해 내가 어떤 기질의 사람인지, 뭘 원하는 사람인지를 객관적으로 알게 되니 나를 파악하기가 수월해졌다. 단 두 번의 상담이었지만 나는 정확히 내 상태를 알게 됐다.


당시의 나는 '우울증'이 아닌 '우울감'을 많이 느끼는 상태였고, 그걸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어느 순간 내가 힘들어했던 일은 뒷전이 되고 나 스스로를 알아가는데 집중하게 됐고 그 뒤로 나는 적당히 우울해하며 살고 있다.


그 뒤로 나는 우울을 이렇게 부른다. '반려 우울'


반려; 짝이 되는 동무.


여전히 시시때때로 나를 잠식하는 우울이지만, 함께 간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나를 매우 힘들게 하지만 그만큼 나를 발버둥 치게 해 깨어나게 하는 우울을 '내 짝'으로 여기기로. 그렇게 우울과 나의 관계성을 규정짓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반려 우울이 현관문을 두드리면 나는 기꺼이 열어준다. 남도 아닌데 뭐. 그럼 반려 우울이는 내 집 곳곳을 돌아다니며 나를 관찰했다가 들러붙었다가 아찔하게 밀어붙인다. 나는 그럼 눈을 감았다가 피했다가 막아서며 전쟁을 치른다.


그러다 보면 반려 우울이는 어느 순간 작별 인사도 없이 사라진다. 그때부터는 완전한 내 세상이다. 그러니 나는 더 이상 우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밤이 길어도 아침이 찾아온다. 아주 뜨겁고 길었던 이번 여름이 가을장마를 맞아 바짝 소강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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