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살면서 자주 우울감을 느껴 왔다. 사춘기 때는 혼란스러웠고 성인이 되어서는 우울의 늪에 빠져 허우적댔다. 한 번 우울하기 시작하면 내 몸속 아주 깊은 곳까지 일렁이는 탓에 나는 어딘가를 딛고 서 있기 조차 힘들었다.
먹고사는데 바쁘면 우울할 틈이 없다고들 하던데,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나의 우울은 시간을 쪼개서라도 나를 찾아왔고 나는 그걸 피하고 숨고 난리를 치다가 결국 우울이란 그물에 걸려들고 마는 것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보냈다.
아주 좁은 방에서 혼자 자취를 할 때, 나는 특히 우울했다. 5평 남짓한 방에서 나는 끝도 없이 문을 두드리는 우울이라는 불청객을 집에 들이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하지만 그 소란스러움에 번번이 문을 열어주었고, 나는 온전히 우울을 받아내야 했다.
'이대로는 도저히 못 살겠다!'
어느 날 나는 집을 박차고 나왔다. 깊은 밤 천변을 따라 걷고 또 걸으며 우울 없이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눈부신 20대를 좀 더 밝고 즐겁게 보내고 싶었다. 나는 결국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인정했다.
그렇게 심리 상담을 알아봤다. 정신과 병원을 찾는 방법도 있었지만, 나는 일상생활은 가능했기 때문에 일단 병원의 진단을 받기 전 상담을 받고자 했다. 하지만 당시 나는 돈이 없을 때라 비싼 상담료를 지불하기가 망설여졌다.
그래서 찾은 게 무료심리상담이었다. 대학원생이 진행하는 상담이라 대관료만 지불하면 되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렇게 나는 아주 피폐한 첫 상담 기억을 갖게 됐다.
무료심리상담을 신청하고 가능한 가장 빠른 날짜로 시간 약속을 잡았다. 긴장한 상태로 상담소에 들어섰는데, 생각보다 상담소의 분위기가 밝았고 안내소의 직원도 친절했다. 그곳에 상담받으러 온 이들과도 몇 명 마주쳤는데 나의 편견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나는 조금 긴장이 풀린 상태로 상담실에 들어섰다. 상담실은 책상 하나만 둔 굉장히 좁은 공간이었고 상담사는 매우 피곤해 보였다. 상담을 진행하기 전 간단한 인적사항과 체크리스트 검사를 했다. 비교적 수월하게 끝낸 뒤 나의 이야기를 물어보기 시작했다.
어?
나는 이미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저 나의 이야기를 물어봤을 뿐인데 갑자기 울음이 터졌다. 남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는 편이라 내가 가장 당황했다. 나는 얼굴이 빨개진 채로 당황해서 고개를 푹 숙이고 눈물을 멈추기 위해 노력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상담사에게 가까스로 사과를 했는데, 그녀는 두 손을 무릎 위에 모은 채로 아무런 표정 없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순간 너무 민망하고 부끄러워져서 스스로 티슈를 꺼내 눈물을 닦았다. 오랜 적막 속혼자 진정을 하고 나니 그제야 상담사가 입을 열었다.
"방금 왜 눈물을 흘리신 거예요?"
그 뒤의 상황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돌아오는 길에 발걸음이 더 무거워졌다. 나는 그날 밤새 두통이 와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총 5회 대관료를 미리 결제해 놨지만 나는 상담사에게 내 핑계를 대며 더는 상담에 가지 못하겠다고 문자를 했다.
나는 눈물이 터져 당황하는 나를 표정 없이 빤히 바라보고 있던 그녀의 얼굴이 한동안 생각났다. 말없이 휴지라도 한 장 뽑아줬다면, 진정할 수 있는 말이라도 건네줬다면, 냉기 가득한 상담실에서 작은 온기나마 느낄 수 있었을까. 상처를 치료하려다 염증이 덧났던 첫 상담의 기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