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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말고, 동영상을 찍으세요!

나도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by 삼십대 제철 일기

내가 살면서 '정말 잘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영상 편집 기술을 배운 거다. 거창하게 '기술'이라고 할 정도는 못 되고 아주 기본적인 것만 할 줄 아는 정도다. 더 필요한 건 유튜브 검색만 해도 쉽게 익힐 수 있다.


나는 청소년기부터 사진 찍는 걸 좋아했다. 대학생 때는 아빠가 DSLR을 선물해 주셔서 본격적인 취미 생활을 갖기도 했다. 나의 피사체는 대부분 가족이었다. 모두들 사진을 찍히는데 스스럼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특히 엄마가 그걸 매우 좋아하셨는데, 어느 날은 관광지로 옷을 바리바리 싸들고 가서 옷을 갈아입으면서 종일 사진을 찍기도 했다. 마치 모델처럼! 엄마는 부끄러워하면서도 곧잘 자연스러운 표정과 포즈를 취하는 아주 멋진 모델이었다.


"너무 예쁘세요! 멋져요!"


엄마를 세워놓고 연신 셔터를 누르고 있으면 지나가던 이들이 칭찬을 건네는 일도 종종 있었다. 그럼 우리는 창피해서 얼굴이 빨개진 채로 감사 인사를 건네고는 사람들이 다 지나갈 때까지는 사진을 찍지 못했다.


그리고는 밥을 먹으며 아까의 상황을 떠올리며 재잘재잘 수다를 떨고 웃었다. 집에 와서는 찍은 사진을 함께 보며 감탄했고 그걸 인화도 했다.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가족들의 사진을 인화했다. 대학생 때는 매년 가족사진을 인화해 코멘트를 얹어 앨범을 만들었다.


앨범을 만들면서 일 년을 돌아보고 함께했던 즐거운 시간을 다시 누렸다. 하지만 대학교를 졸업하고부터는 점점 바빠지면서 더 이상 사진을 인화하거나 앨범을 만들진 못했다. 대신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의 화질이 매우 좋아졌기 때문에 DSLR도 사촌동생에게 넘겼다.


처음엔 사진을 이어 붙이고 배경 음악과 자막을 까는 간단한 편집만 했다. 그건 무료 어플로도 가능했다. 그러다가 영상 하나에 자막만 넣는 편집도 해봤는데, 그게 아빠를 인터뷰한 영상이었다. 아빠를 찍으며 여러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받았다.


2018년 11월에 만든 그 영상을 어제 다시 봤다. 6년 전이지만 아빠의 모습이 달랐다. 더 젊고 볼살도 통통했다. 나는 아빠에게 결혼 후 생활, 힘들었던 기억, 자랑스러운 기억 등등을 물어봤다. 진짜 인터뷰처럼. 아빠도 정말 인터뷰하는 것처럼 진지하게 답해주셨다.


그때 몰랐던 아빠의 생각이나 에피소드를 들을 수 있었는데, 이렇게 영상을 만들어 놓고서도 그 내용을 까먹고 있었다. 어쩌면 가장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모른다. 그래서 자꾸 마주 보고, 얘기하고,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영상은 훌륭하다.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얘기하고 추억을 남기기에 딱이다. 나는 그 뒤로 프리미어프로를 배웠고, 매년 가족을 촬영한 영상을 편집한다. 편집한 영상을 TV로 전송해 소파에 앉아 다 함께 보면 마치 예능프로그램을 보는 것처럼 재밌다.


우리가 그때 얼마나 재밌었는지, 다툰 후 어색한 공기가 지금 와서 보면 얼마나 웃기는지, 그 시절 우리가 얼마나 생기 넘치게 아름다웠는지. 기록용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영상으로 남기는 일은 두고두고 꺼내 볼 생생한 추억을 저장하는 일이다.


가족 여행을 가면 그 영상을 뮤직비디오처럼 만들고, 남편과의 일상은 연말에 시간 순서대로 쭉 이어 붙여 1년 결산처럼 영상을 만든다. 힘들고 지칠 때마다 추억을 꺼내보면 스트레스로 꽉 막혀 있던 나의 혼란스러운 감정들이 소화제를 먹은 듯 쑥 내려간다.


부모님이 점점 나이 드는 모습에 슬퍼만 할 순 없다! 함께 놀자. 영상을 찍으며. 나의 나이 드는 모습도 함께 남기면서. 우리는 이렇게 눈부신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다는 걸 잊지 말자!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다면 영상을 찍는 걸 추천한다. 강추!


2018년 아빠를 인터뷰했던 아주 어설픈 영상..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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