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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꾀병 기록

세 살 버릇 일단 삼십 대까지 왔음

by 삼십대 제철 일기

요즘 가끔 배탈이 난다. 나는 체하거나 배탈이 나는 일이 드물다. 그런 내가 오랜만에 배가 사르르 아프기 시작하자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어릴 땐 조금 불리한 상황에 놓이면 자주 꾀병을 부렸다. 물론 집에서만!


초등학생 때였다. 언니와 함께 학교에 가는데 티격태격하다가 화가 난 언니가 나를 앞질러 걸어가며 말했다. 아주 무시무시한 그 말을!


"나 먼저 간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어린아이 걸음으로도 10분 거리였다. 남은 거리는 딱 5분 정도, 그야말로 코 앞이라 한 번 넘어지기만 해도 닿을 듯 한 거리였다. 하지만 나는 당시 혼자서는 등교를 하는 걸 꿈도 못 꾸던 애송이었다. 9살쯤이었나.


나는 우두커니 서서 앞서 가는 언니를 바라봤다. '아 같이 가고 싶다… 혼자서는 용기가 안 나는데… 어쩌지….' 갑자기 외딴섬에 홀로 남겨진 듯 쓸쓸함을 느낀 나는 배를 잡고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츤데레 그 자체였던 언니는 슬쩍 뒤를 돌아보더니 내게 쪼르르 와서 물었다.


"왜 그래? 어디 아파?"
"배 아파."
"아까까진 괜찮았잖아. 갑자기 아파?"
"사실 아까부터 아팠어."


언니는 나의 거짓말에 속아준 건지 진짜로 속은 건지 나를 일으켜 세우고는 함께 학교에 갔다. 아마 교실까지 데려다주지 않았나 싶다. 얼마 전 이 얘기를 꺼내니 언니는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역시.. 간절한 사람만이 기억한다. 학교에 같이 가고 싶다는 간절함..)


나의 꾀병은 한 번에서 그치지 않았다. 주로 겁이 나거나 하기 싫은 일이 있을 때 꾀병을 부리곤 했는데, 꼭 가족들에게만 했다. 아주 어렸지만 나의 꾀병이 통하는 건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 이라는 걸 잘 알았던 것 같다.


특히 성격이 괄괄했던 언니한테 많이 써먹었다. 그때는 그 쪼끄맣고 가냘픈 언니가 체감상 거의 깍두기 형님처럼 무서웠다. 두 살 터울의 자매는 커서는 베스트프렌드가 되기 딱 좋지만 어렸을 땐 서열 정리에 매우 엄한 편. 하지만 언니를 매우 따르고 의존적이었던 나는 언니와 같이 다니고 싶을 때마다 아픈 척을 했다.


초등학생 때 언니가 남아서 친구들과 운동회 준비를 한다든가 할 때면 꼭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언니가 나를 성가셔하지 않도록 교실 구석자리에서 기다리곤 했다. 동생들은 안다. 언니가 진짜 화나는 시점을. 언니가 화 나기 직전까지만 알짱거린다.


그러다가 성격 좋은 언니 오빠들이 먹을 거라도 쥐어주거나 같이 놀아주면 쫌쫌따리 논다. 만약 그들끼리 의견이 안 맞아서 분위기가 안 좋을 때면 숨 죽이며 기다린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나는 왜 그렇게 비굴할 정도로 언니를 따라다녔는지 모르겠다.


결국 내가 거슬린 언니가 '넌 가!'를 시전 하면 뿌엥 하고 울면서 나올 때도 있었지만 보통은 꾀병을 부렸다. 배가 아프다던가 귀가 아프다던가 머리가 아프다던가. 그럼 또 마음 약해지는 언니가 '일단 있어봐' 하고 판결을 보류한다. 그리곤 (나만) 신나게 같이 집에 돌아오는 거다.


물론 꾀병이 안 통하는 상대도 있었다. 바로 엄마. 나의 상태를 가장 잘 아는 엄마에겐 꾀병이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빠를 공략(?)했다. 늘 엄마와 가던 병원을 아빠와 갔을 때가 있었다. 엄마와 갔을 땐 눈물을 꾹 참았는데 아빠와 갔을 때 울고불고 아주 잔뜩 꾀병을 부렸다.


진료가 끝나자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씁 이상하네. 엄마랑 왔을 땐 안 울었는데 아빠하고 오니까 우는구나?"


정곡을 찔린 나는 비질비질 눈물을 흘리면서 '진짜 아프다'며 아빠한테 매달렸다. 내가 안쓰러웠던 아빠는 나의 손을 잡고 슈퍼로 향했다. 목표를 달성한 꼬맹이는 양손에 사탕과 초콜릿을 쥐고서야 눈물을 멈췄다.


내가 아직도 이런 상황들이 기억나는 걸 보면, 스스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나이가 먹어도 당최 꾀병의 유혹을 끊지 못하고 있다. 날 사랑하는 사람이 한 명 더 생겼으니. 바로 남편!


남편이 무언가에 집중해 나는 뒷전일 때면 슬쩍 꾀병을 부린다. 예전엔 겁이 나는 순간에 아픈 척을 했다면 지금은 관심이 고픈 순간에 써먹는다. 물론 정말로 몸이 안 좋은 게 걱정이 돼서 더 유난을 떨 때도 있다. 하지만 남편도 고수다. 이젠 내가 머리가 아프다거나 열이 난다고 하면 체온계를 가져와 말한다.


"참 교육 들어간다."


그리곤 나의 열을 재본 뒤 정상 체온인 걸 확인시켜 주고는 잔뜩 놀린다. 삼십 대가 되어서도 이렇게 꾀병을 부리며 사는 게 참 우습지만, 마음 놓고 꾀를 부릴 수 있는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스스로 배를 문지르면서 몰래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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