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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십대 제철 일기 Oct 12. 2024

가짜 인생 구간

아아 마이크 테스트.  들려? 간주 점프 좀 눌러줘!

커뮤니티에서 발견한 단어가 있다. 가짜 인생 구간. '시험만 합격하면, 이직만 하면~' 이런 식으로 미래의 어떤 지점까지는 '임시방편'으로 치부하는 인생 구간이다. 아주 딱 들어맞는 표현이다.


돌이켜 보면 나의 인생에서 가짜 인생 구간이 얼마나 많았는지 새삼 부끄러워진다. 당장 시작하면 될 일을 미래의 준비된 어느 시점으로 미루다가 아직도 시작하지 못한 무언가가 산더미. 미래의 나에게 모든 짐을 떠넘긴 현재의 내가 얄궂다.


그렇다고 현재의 내가 마음 편한 것도 아니다. 막연히 미래의 시점을 기다리면서 불안해하고 낙담한다. 진짜 인생을 살기에도 청춘이 하루하루 저무는데 가짜 인생을 사는데 시간을 보내고 있다니! 비겁하기 짝이 없다.


물론 인생을 항상 정면돌파하듯 살기란 어려운 일이다. 게으름도 피워보고 지칠 땐 빙 돌아서 갈 수도 있다. 의지가 되는 이가 있으면 한동안 어깨에 기대어 있을 수도 있고, 편하고 쉬운 길만 찾아갈 때도 있는 거다. 누구가 처음 사는 인생이니까.


그래도 아까운 건 아깝다. 가짜 인생 구간을 줄이고 진짜 인생만 산다면 나의 삶이 더 꽉 찰 텐데. 지금도 나는 종종 가짜 인생 구간에 들어선다. '내가 00만 성공하면~', '내가 00 하게 된다면~' 하면서 지금의 나는 마치 없는 사람처럼 군다.


결국 '성과'가 없는 현재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다. 원하는 만큼 인정받지 못하고, 눈에 띄는 성과가 없을 때의 나를 부정하고 내가 꿈꾸는 모습을 그리며 그렇지 못한 나와는 선을 딱 긋는 거다. (응 나 자신 손절~)


우습고 불편하다.  아주 보잘것없는 상태의 나도 나다. 나를 잘 키우고 보살펴서 더 나은 나를 만드는 그 과정 역시 인생인데 말이다. '별 볼일 없는 나'는 외면해 버리고 무언가 성과를 내기 전까지는 바짝 움츠러들어 자괴감만 느끼며 시간을 버린다.


물론 그 과정에서 노력도 하고 새로운 자극도 찾아 나서지만, 통 즐기지를 못한다. 눈에 보이는 '성과'야 말로 나 자신을 증명하는 길이라고 생각해버리니까.


세상도 각박하다. '갓생' 챌린지가 유행하게 된 것도 이 같은 사회적인 분위기가 작용한 게 아닌가 싶다.


갓생; 신을 뜻하는 'GOD'(갓)과 인생을 뜻하는 '생'(生)이 합쳐져 남들에게 모범적이고 부지런한 삶을 뜻하는 신조어


갓생 브이로그를 보면 이른 새벽 일어나 공부를 하고 출근을 해서는 점심시간에도 운동을 한다. 퇴근하고 나서는 자기 계발을 하거나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다. 본업 말고도 수익을 창출할 만한 무언가를 시도하거나 인생의 플랜 B를 준비한다.


그렇게 하루를 꽉꽉 채워 보내는 이들에게 우리는 찬사를 보낸다. 어느 한 가지도 제대로 해내려면 많은 에너지가 소진된다. 그럼에도 회사만 다니는 사람은 게으른 사람이 돼 버린다. 그 외 시간을 이용해 운동을 하고 자기 계발을 하고 미래를 준비해야만 '적당히 잘 살고 있는 사람'이 된다.


마치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것처럼, 우리는 서로의 일상과 계획을 묻고 공유한다. 다 듣고 나면 조언을 해주기도 하고 감탄을 보내기도 한다. 상대방에 대한 관심의 표현이자 자연스러운 화제지만 어쩐지 대화를 나누고 나면 속이 시끄러워지기도 한다.


잘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다. 누구나 인정을 받고 성과를 내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 있는 불안한 나 또한 사랑할 줄 알아야 오롯이 '진짜 인생'을 누리게 되는 게 아닐까.


그러므로 나는 이제 질문을 조금 바꿔보려고 한다. 나 자신에게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인생의 플랜 B가 아닌 어떤 계절을 가장 좋아하는지, 언제가 가장 행복한 순간인지를 물어야지. 내 안에 따뜻하고 편안한 감정을 가득 채워 가짜 인생 구간을 간주 점프 해 버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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