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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십대 제철 일기 Jul 14. 2024

한 여름밤의 꿍꿍이

이 밤의 끝을 잡고~♪

덥고 습하고! 나는 여름이 마음에 안 들었다. 줄줄 흐르는 땀도 찝찝하고 대중교통에서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있을 때면 주인 모를 퀴퀴한 냄새가 떠돌아다니는 탓에 불쾌지수가 급상승한다. 피부가 금방 타고 장마 후 생긴 물웅덩이에 바지나 신발을 버리기도 일쑤였다.


나는 봄이 끝나갈 때쯤이면 여름이 얼마나 머물다 갈 것인지를 계산해 보는 버릇이 있다.


'지금이 5월이니까.. 5월 말부터 더워지면 6, 7, 8월까진 한여름일 테고 9월 초중순까지도 좀 덥겠지? 으아 길다 길어!'


거의 다섯 달은 여름이 묻어있는 셈이다. 해도 해도 너무하다. 포근한 봄과 선선한 가을은 통장을 스치듯 지나가듯 내 월급처럼, 아주 스쳐 지나가니 말이다. 특히 옷이 얇아지는 여름에 잔뜩 살이 쪄 있는 상태라면 더욱 우울하다. 벗고 드러내는데 한계가 너무 많다!


이런 나도 여름을 좋아하는 구석이 있다. 적당히 내리는 비, 그리고 밤. 난 원래 대차게 내리는 비를 좋아했다. 하지만 내가 사는 곳은 여름마다 비가 많이 와서 크고 작은 사고가 나서 비가 쏟아질 때면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하지만 적당히 주룩주룩 내리는 비는 반가웠다.


비가 오면 창문을 조금 열어둔 채 나뭇가지, 지면, 아파트 창문을 따라 흐르는 빗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몽글몽글해진다. 선풍기를 중간 세기로 틀고 바닥에 드러누워서 가만히 빗소리를 듣고 있으면, 이대로 시간이 멈추길 바랄 때가 종종 있다.


겨울밤은 깊이 무르익어 고요함을 준다면, 짧은 여름밤은 설익어 무언가를 작당하게 만든다. 여름밤만 되면 온갖 꿍꿍이를 생각해 내곤 하는 것이다. 발칙한 상상을 하고, 내 앞날을 새롭게 꾸며보고, 속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짧은 밤이 지나는 걸 아쉬워한다.


오지 않을 일을 걱정하고, 공연히 설레하고, 터무니없는 꿈을 꿀 때면 불안해질 때가 있다. '아직도 이렇게 철없이 꿈을 꿔도 되는 걸까?', '이럴 시간에 더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공부를 해야 하지 않을까?', '너무 몽상가처럼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나이가 들수록 흘러가는 시간의 유속이 빨라진다고 한다. 나 또한 벌써 2024년도 하반기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이 놀랍다며 한참을 호들갑 떨고 다녔다. 여름밤을 몇 번 더 보내고 나면 금방 또 쌀쌀해지겠지. 야속하다 참. 그래서 더 초조하다.


난 정말, 이 정도의 어른이어도 되는 걸까.


그럼에도 일단 밤을 기다려본다. 할 일은 태산이고, 한 치 앞을 몰라 매일 불안에 떠는 '어른이' 지만. 여름밤은 즐길 수 있을 때 즐겨야지. 익은 수박이나 복숭아를 까먹으며 밑으로 줄줄 흐르는 과즙을 손등으로 대충 닦아내면서 말이다!

요즘 복숭아 정말 맛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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