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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은자 Jul 29. 2020

아버지 보고 싶어요!

아버지의 뒷모습


누구에게나 그리운 사람이 있을 겁니다.

나 에게는 생각만 해도

눈시울을 적시게 하는 분이 아버지입니다.


뜨거운 여름날 카센터에서 차를 고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단다.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일.

내가 어떻게 친정집에 갔는지 ···3일 동안 

지하 장례식장에서 평생 울어야 할 것을 다 운 것 같다. 장례식이 끝나고 지하에서 나오니 머리는 빙빙 돌고 햇볕이 따가워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나는 모든 것이 무너졌는데 세상은 아무 일도 없는 듯 똑같았다.


엄마를 지켜 드리겠다고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약속을 하고 17년이 지났다.

지금 이 순간도 아버지를 생각하면 ··· 보고 싶다!

 

아버지는 평상시에도 자기 관리를 잘하셔서 매일 목욕탕에 가시고 이발소에서 드라이로 앞머리를 올려서 기름을 바르셨다 키 180cm에 90kg이 넘은 체격으로 슈트가 잘 어울리고 얼굴도 갸름하신 편이시다. 탤런트 박근형 선생님과 아버지 모습이 비슷하다.

200평 저택에 6명 아이들을 과외 선생님을 불러서 가르치고 최고급의 승용차에 운전기사를 두고 사셨다.




85년도 흔치  않은 부도는 그 당시에 신문에 나올 만한 일이었다. 부도가 났을 때 엄마가 사치를 안 하시니 최소 3억은 가지고 있을 거라고 친척들이 오해를 해서 우리 가족은 더 힘들었다. 엄마는 자존심이 강해서 누구한테도 힘들다는 얘기를 안 하시고 기도로 하루를 마무리하시니 그럴 만도 했다. 한 번은 여름에 친척 한 분이 우리 집에 실사를 오셨다 진짜 부도가 맞는지를 확인하려고.

냉장고가 고장 나서 열무김치가 시어져 볶음밥을 해서 먹었던 때인 것 같다.

평소에 무엇 이든 잘 베푸시는 아버지에게 도움을 주신 분들은 가족이 아닌 친구분 들 이셨다.


아버지의 뒷모습


어느 날 운전을 하고 가다가 우연히 아버지가 걸어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아버지가 운동복 차림에 내려와 있는 앞머리를 쓸어 올리면서 검정 비닐봉지를 들고 걸어가고 계셨다.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고 아버지! 하고 부르지를 못했다. 아버지의 등이 너무나도 초라하고 쓸쓸해 보였다.

나는 그런 아버지에게 아무것도 해 드릴 수 없는 6남매의 큰 딸이었다. 아버지에게 성공한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었는데 ···차를 세워놓고 한참을 울었다. 지금도 아버지의 뒷모습이 생각난다.


사업 실패로 부도가 나면 대부분은 밤 봇짐을 싸고 떠나서 살게 된다. 아버지는 자식들 때문에 살고 있는 곳에서 그대로 살기로 하셨다.

잘 살다가 못 사는 것도 힘들 텐데 ···

살고 있는 지역 사람들을 계속 만나면서 살아야 했는데 얼마나 힘드셨을까?라는 생각을 하면 자식으로서 못 이뤄 드린 부분들이 세월이 지나도 한없이 죄송하고 죄송할 따름이다.


오늘은 마음껏 아버지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그때는 몰랐었다.  이제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런 마음 이셨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큰아이를 친정에서 5살 될 때까지 키워 주셨다. 우리 아이들에게 외할아버지 하면? 짜장면, 붕어싸만코가 생각난다고 한다. 아이들이 갔을 때 언제든지 짜장면을 시켜 주셨고 , 아이들이 간다고 하면 , 붕어싸만코 아이스크림을 사서 냉장고에 넣어 두셨다.


큰아이가 어린이집에 갈 때 다리가 통통해서 타이즈를 힘들게 신고 가방 메고 어린이집을 가는 모습이

"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 " 하시며 학교로 전화를 하셨다. 근무하고 있으니 아들이 어린이집 가는 것을 못 보는 딸에게 전해 주고 싶은 마음이 크셨나 보다.




방학이 되면 큰아이를 집에 데려와서 살다 보니

아버지가 큰 아이와 매일 통화를 하셨다.

한 번은 전해줄 것이 있다고 , 지나는 길에 들리신다 

하셨다. 큰아이 옷을 한 벌 사 가지고 오셔서 딱 손자 얼굴

 한 번만 보시고 가셨다. 사돈집이라 불편하실까 봐,

차 한 잔도 안 하시고 , 얼마나 보고 싶은 마음이 크셨으면···

 

살면서 6남매가 아버지에게 욕을 먹고 매를 맞아본 적이 없다. 단 한 번도 부도가 나서 경제적으로 힘들어도 자식이 많아서 힘들다고 하신 적이 없다.

인정과 자식 사랑이 많으신 분이셨다.


아버지는 유머감각이 좋으셨다.

 큰아이에게 전화하시면

신랄라~~ 오늘 아침에도 행복하게! ~

신랄라는 큰아이를 부르는 아버지의 애칭.

냅 두지 마시오.- 내버려 두지 마시오.

모녀 기타는 오늘 비가 오냐 , 햇살이 비추냐

조카들에게 아침마다 매일 전화로 안부를 묻는 말씀.

아파도 입은 안 아프제?

그럼 밥은 묵을 수 있것제~


평소에 늘 말씀하시길 , 시집가면 아버지가 좋아하는 것 알제?밥을 날 ~상하게 해서(진밥) 소고기 넣고 김치찌개 끓여주면 된다. –알것제~ 잉!

갈비로 하면 더 좋고.


바쁘다는 핑계로, 시댁에 함께 산다는 이유로, 한 번도 아버지가 말씀하신 식사를 못 해 드렸습니다. 두고두고 그리워하면서 살기를 원하셔서 그렇게 빨리 세상을 떠나셨나요? 아버지가 안 계신 지금 가족들은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잘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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